"아빠, 집에 도착했어? 엄마는..."
명절 후 친척 집에서 돌아오는 길, 카카오톡 알림이 연이어 울렸다. 가족 단체 채팅방에는 손자 사진들이 줄줄이 올라왔고, 이내 영상통화 요청이 왔다. "이도야, 할아버지 해 봐~" 이틀 사이 네 번이나 연락이 왔다. (평소엔 일주일에 한두 번)
이번엔 아내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왜 화상 통화가 아닐까? 스피커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생기가 없었다. 무언가 망설이는 듯한 말투였다.
"다운아, 무슨 일 있니?"
답답해진 아내가 물었다.
"응, 그게... 다음 달 나라(며느리)가 둘째를 낳는데, 차가 작아서 큰 차로 바꾸려고 해. 2천만 원만 빌려 달라고, 나머지는 은행 대출로 충당할 거라고."
아들은 대화 중간중간 "나중에 꼭 갚을게"라는 말을 반복했다.
전화를 끊은 아내는 바삐 머리를 굴리느라 연기가 나는 것 같았다. 둘째 아들의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적금을 깰까, 주식을 정리할까 고민하는 듯했다. 지난번에도 주택 자금을 지원했는데, 이러다 계속 손 벌리는 거 아냐? 나도 머리 열 개를 동원해 본다.
아들 월급은 4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 둘째 손녀가 태어나면 4인 가족, 애견까지 합치면 5인 가족이 된다. 생활비와 대출금까지 버거운 상황이다. 요즘은 마트에 가서 몇 개 안 되는 물건값도 10만 원을 훌쩍 넘긴다.
지난번 아들네 집에 갔을 때 본 수척해진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들 생각만 하면 가슴에 쥐가 난다. 허구한 날 술 처마신다고 따뜻이 안아주지 못하고, 함께 놀아주지 못하고,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던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로서 빵점이었다.
"여보, 좀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아내도 같은 마음이었다. 모든 선택은 아내의 손에 달려 있었다.
아내는 우체국에 가서 이번 달 25일부터 받게 된 만기 된 연금을 찾아왔다. 그동안 연말정산으로 공제했던 8백만 원을 꺼내놓았다.
똑똑한 열 개의 머리는 결국 따뜻한 가슴 하나를 이기지 못한다. 지금은 가슴으로 사랑해야 할 때다.
"아들아, 가만히 아빠 어깨에 기대라. 어릴 때 못 기대었던 그 어깨, 이제라도 내어주마!"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