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물 틀었나? 따뜻한 물이 안 나온다”
몸에 비누칠을 하고 씻어내려고
샤워기를 밑으로 들어갔다가 급히 피했다.
얼음 같은 찬물이 나왔다.
레버를 따뜻한 물 쪽으로 최대한
돌려서 한참을 기다려도 마찬가지였다.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
부산 영하 10도로 올 들어
제일 추운 날이었다.
몸을 떨면서 칼날 같은
찬물로 샤워했다.
얼어 죽는 줄 알았다.
보일러 기사가 왔다.
“보일러 수명이 다 되었네요.
통째로 교체하는 게 좋겠어요.”
교체비가 많이 들어 부품만 교체했다.
한동안 보일러 작동이 잘 되었다.
어제는 아내가 샤워하다가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곤욕을 치렀다.
아내는 목욕탕에 가서 씻었다고 했다.
무음이라 못 봤는데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와 있었다.
아내가 사무실로 왔다.
“왜 보일러 새것으로 안 바꾸었냐고......,”
아내 앞에 두 손 모으고 서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
한 달 전부터 충치치료 중이다.
치료를 오늘 4번째 방문했다.
치조골 이식수술을 했단다.
입에 거즈를 물려주면서 1시간 동안
입을 벌리지 말고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침도 삼키라고.
기계는 고장 나면 수리해서 쓸 수 있고
통째로 교체할 수 있다.
치아도 충치치료해서 덮어 씌울 수도
있고 이를 다 빼서 임플란트로 심을 수 있다.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술에 절어 허랑방탕하게 살았다.
아들 재롱잔치 한 번 가지 못했다.
졸업식도, 군대 입대 때나 훈련소 마쳤을 때
제대할 때까지 면회 한 번 가지 않았다.
다른 부모들 다 오는 데
혼자 두리번거리면 엄마, 아빠를
찾았을 아들을 생각하니
칼날을 도려내는 것처럼 마음이 아린다.
그 아들이 아빠가 되었다.
손자에 이어 다음 달 중순에
손녀가 우리 집안으로 온다.
이번 연휴 때 서산에 있는 아들 집에 간다.
꽃집에 꽃을 주문했다.
그동안 못다 했던 꽃을 다 주기 위해
꽃집에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제일 좋은 꽃으로 풍성하고
아름답게 준비해 달라고 했다.
꽃 가격을 수십만 원 지불했다.
“리본은 뭐라고 쓸까요?”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어 고민됐다.
“아들아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
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늘 오후에 찾아 내일 아들네 집으로 간다.
이걸로 그 상처가 치유될리 없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마음에 상처받은 것은
보일러나 치아처럼 수리하거나 통째로 바꿀 수 없다.
어루만지고 이해하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회복해야 한다.
때로는 흉터가 남기도 하고,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마음의 상처는 겨울날 찬물로
샤워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 아픔은 갑자기 찾아와 오래도록
남아있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상처 위에 따뜻한 이해와
사랑이라는 거즈를 덮고,
시간이라는 약을 바르면 조금씩 나아진다.
상처 난 마음은 부서진 보일러처럼 완전히
새것으로 교체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꽃을 백만 송이를 안겨 준들 아들
상처가 치료될리 없다.
꽃을 준비해서 주려는 마음이
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에게 상처 준 죄를 감추기 위한
이기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