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 많은 게으른 인간이 맞습니다.

위험 회피자의 작은 세상 그리고 작고 소중한 만족.

by 오늘의 바다 보다

줄곧 심플하고 간단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동시대를 살고 있어도,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마음의 창으로 세계를 보고, 이해하고 소화한다. 내 마음의 창으로 본 세상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혼란했다.


대학에서 배웠던 수 많은 개념들이 이제는 희미하지만 하나 뇌리에 새겨진 것이 있다.


[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 로우리스크 로우리턴 ]

이것은 위험과 수익의 상충관계를 나타내는 공식이다. 투자에 있어 기대하는 수익이 클 수록, 위험도 커진다.

예를 들어 주식에 투자하면, 원금이 두배가 될 수도 있지만, 반토막이 날 수도 있다. 예금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자를 주지만 원금이 안전한 것과 다르게 말이다.


이렇게 이 개념은 단순히 위험과 수익의 관계만이 아니라, 인생의 전반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위험부담을 지는 방식도 잘 설명해 준다.


나는 태생적으로 안분지족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인지라, 하이리스크와 하이리턴 쪽을 세-트로 큰 고민 없이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로우 리턴도 리턴이다. 쌓이면 보배가 되더라.


지금 이렇게 평일 낮에 혼자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란 사람은 결국 이런 위험 회피 성향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5세에 회사를 그만둔 것도, 이 정도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기 싫은 일도 10년쯤 참고했으면 충분하고, 모은 돈도 이 정도면 되었다고 간단히 만족했다. 회사를 더 다닌다면 얻게 될 금전적 보상(리턴)들이 많을 터이지만, 내 삶의 만족도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남편도 아이도 없는 혈혈단신의 삶도 그러하다. 나라고 가족과 사랑, 행복과 같은 DNA에 새겨진 가치들이 귀하지 않겠는가. 다만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에게 전부를 거는 일이 어쩌면 가장 위험도가 높은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의 거대한 세계를 만나, 열리고 깨어지고, 그렇게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 두려운 나는 겁쟁이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1인 은퇴생활자의 삶은 거창하고 멋있는 것이 아니라, 고독하고 소심한 것에 가깝다. 그들은 하기 싫은 일은 억지로 하기 싫은 게으름뱅이이며, 혼자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은둔자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예민하게 느껴, 사랑과 회사마저 소거해 버린 겁쟁이. 아, 그래.. 구더기가 무서우면 장을 담그지 않아 버리는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적당히 게으르고 겁이 많은 나 자신이 좋다. 내가 원하던 대로 심플하고 간단한 삶을 살고 있으니 만족도가 높은 것이다. 싫어하는 것들을 소거해버리고 나니, 남은 것들이 더 소중해졌다. 나에게 남은 사람들과 의무들을 버겁지 않은 마음으로 기꺼이 책임지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젊다. 버겁지 않은 이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싶다. 혹시 아는가. 애초에 리스크라고 느껴지지 않을 또 하나의 세계가 나에게 은근히 스며들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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