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에도 나아지지 않는 것들,
아직 잠에 젖은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나가, 사람으로 꽉 찬 버스에 몸을 구겨 넣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꾸역꾸역 일을 하고 퇴근 시간까지 버티고 집에 돌아오니 이게 사는 것인가 싶다. 이 회사만 아니면, 나는 자유롭고 행복할 텐데.... 그렇다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퇴사'를 한 나는 꿈만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인간은 참 간사하다. 그렇게 꿈꾸던 출근 없는 삶의 황홀함은 한 달이면 사라지고 익숙해진다. 익숙함 뒤에는 권태로움이 따라온다. 회사에서 고통받던 수많은 순간들도 기억에서 희미해진다.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특히 퇴사를 하면 나아질 줄 믿었던 것은 새치와 목의 통증이었다.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 갑자기 늘어난 흰머리를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새치라고 스스로 판단했다. 퇴사 후에 기분 탓인지 잠시 줄어든 것 같았던 흰머리는 40을 눈앞에 둔 지금 맹렬하게 자라고 있다. 이제는 새치라고 우기기도 어려울 만큼 매일매일 세력을 키우는 흰머리 군단은 새싹처럼 새로 솟아나고 있어 오히려 나의 머리숱을 지켜주고 있다.
컴퓨터를 매일 사용하는 직장인이라면 하나씩 가지고 있는 일자목과 거북목 또한 여전히 나를 떠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자세로 잠을 잔 후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목의 통증과 두통으로 고통받는 중이다.
그렇다, 회사 탓이 아니었다. 그저 노화의 문제이거나, 생활습관의 문제였다. 무조건 싸잡아 잘못을 넘겼던 회사가 사라지니, 이제는 탓할 사람도 없다. 하나씩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말. 나의 문제는 내가 문제다.
그리고 완전 무결하게 아픔 없는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내 한쪽 팔이 부러진 상태라고 생각해 보자. 팔이 부러진 아픔에 손에 있는 살짝 긁힌 상처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러진 팔이 깨끗하게 나은 후에는 그 작은 상처가 하루 종일 거슬리게 된다.
거대한 크기로 나를 압박하던 회사라는 존재가 사라진 후에도, 일상의 작고 큰 걱정이나 고통은 끊임없이 나를 스쳐간다. 그렇다 사람은 언제나 그 순간의 고통은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나의 퇴사는 결론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장애물이 없이 나를 만나고 받아들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