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와 자기결정력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단단히 살아가기

by 오늘의 바다 보다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온 신경을 쏟고, 정작 자신이 바꿀 수 있는 일에는 무심하여 스스로 고통받는다고 한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하나하나 자신에게 맞게 바꿔간다면 삶이 조금씩 쾌적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 자기 자신에 관련된 일이지 싶다. 친구도 가족도 자식도 내 맘 같지 않다. 한 톨의 마음이라도 타인의 마음을 돌리는 일은 기적과 같은 일. 옛 지식인들이 입을 모아 '세상사 다 마음먹기 달린 일'이라 하는 것도, 세상은 내가 바꿀 수 없으니,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가짐을 바꿔보자는 이야기 일 것이다.


오랫동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는 과정에서도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일은 아주 중요했다. 퇴사를 마음에 먹은 후 자그마한 빨간 책 하나를 늘 들고 다녔다. 점심시간에도 팀원들과 함께 식사하러 가는 대신에 간단한 도시락을 가져와 그 책을 읽거나 조용히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그 책은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이라는 책인데, 삶의 존엄성을 위한 자기 결정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철학서이다. 작고 얇지만 중요한 문장으로 꽉꽉 채워진 책이라 들고 다니며, 조금씩 읽고 필사하며 조금씩 내 것으로 소화하는 중이었다. 나중에 팀원들에게 퇴사의사를 밝히며 커피 한잔을 하는 중에도, 퇴사를 부르는 '빨간책'을 조심하자는 우스갯소리도 했다. 우연히 팀의 막내도 그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진다. 뭐, 당연히 자기 결정의 결론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이 책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나의 자립심에 대한 상념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구조를 세워 주었다. 타인의 시선이나 말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 혼자 사유하고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준 것이다. 퇴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의 결정을 설명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을 수십 번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의아해하고, 걱정하고, 만류하고 혹은 무시하는 여러 말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의 결정을 지켜냈다.

나는 파이어족란, 의존을 줄여 자립을 이루어낸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 의존의 대상은 다양하다. 일단, 회사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을 꾸려 나간다. 그리고 절약을 통해 돈과 소비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퇴사를 하고 파이어 족으로서 사는 지금도, 절약과 자립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지독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 실연으로 인해 삶의 의지를 놓은 사람, 오랜 기간 동안의 수험생활이나 구직생활의 실패로 세상에서 숨는 사람들.... 이 복잡하고 괴로운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힘인 것 같다.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지나친 의존은 위험하다. 그게 무엇이든지 그것을 나를 떠나가더라도 내가 무너지지는 않아야 한다. 가장 소중한 가치는 나. 나 하나만 지켜낸다면 어떤 태풍이 몰아쳐도, 그것이 지나간 후에 다시 오롯이 시작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렇다. 어느 정도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 퇴사를 했지만, 아직 고작 30대 애송이. 나의 앞길에 무슨 일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자만하지 않고 지나치게 확신하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고마운 마음으로 보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특히나 고집이 세고 주도적인 성격을 지닌 나에게는, 계획과 다른 일들이 생겨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이 중요하다. 당장 다음 달이라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나를 세게 후려쳐 퇴사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면?


뭐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는가. 혹여 내 소중한 이들이 뒤돌아선다고 해도, 고생해서 모아둔 돈이 사라진대도, 나는 여전히 나의 편으로 남아있다. 변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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