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족의 노동 없는 월수익 3.
부산에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전, 단기 임대 숙소를 빌려 2주 정도 부산에 있었다. 숙소 근처 주택가 골목 사이에 아담한 무인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자주 가게 되더라. 그러니까 단순히 내가 직접 이용해 보니 좋아서 무인카페 창업을 알아보게 되었다.
내내 직장인으로만 살아봤으니, 장사나 창업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유튜브 영상과 인터넷 검색으로 최대한 알아보고, 체인점이 방식이 아니라 혼자서 개인카페를 열었다. 상권 분석과 자리 찾기, 사업자 등록과 영업신고, 인테리어 등 하나하나 다 찾아가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가게를 열었다. 5평이 안 되는 아주 작은 가게이지만 이를 통해 창업의 기본 프로세스는 어느 정도 익힌 샘이다.
고민을 짧고 깊게 하는 편이라, 가게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고 가게 오픈까지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생각의 끝자락을 너무 오래 잡고 있다 보면, 꼬이거나 무거워져 종국에는 원래 하려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헷갈리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최대한 많이 알아보고 고민해 본 뒤 빠르게 가게자리를 계약했다. 계약금이 일단 들어가면 구속력이 생긴다. 돌연 누가 뒤에서 미는 듯한 추진력이 생겨 가게 문을 열기까지의 그 수많은 일들을 바로 찾아보고 처리하게 된다.
그렇게 구한 자리는 보증금 8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의 아파트 단지 내 상가였다. 좁은 공간에 고심해서 커피머신을 고르고 가구를 놓았다. 그렇게 2년 가까이 큰 일 없이 무인카페를 운영해 오고 있다. 처음 상상한 것만큼 장사가 잘 되지는 않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 적자가 아니라 계속 운영가능하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리라. 내가 무인카페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오랫동안 은행일을 하며 사람을 응대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첫 가게이니 작게 시작해서 리스크를 줄이고 싶었다. 아무래도 인건비가 들지 않고 월세도 아주 작으니까 적자가 나기 어려운 구조이긴 하다.
그럼에도 하루에 한 번씩 청소를 하러 가기에 손님을 마주치는 일이 아예 없지는 않다. 가끔씩 그 전 직장에서 익힌 손님 응대 기술을 써먹고 있다. 웃으며 손님 대하기. 기분 나쁘지 않게 안된다고 말하기. 컴플레인에 대처하기. 등등. 무엇보다 24시간, 365일 문을 닫지 않고 운영되기에 의외의 이벤트들도 가끔 발생하여 나의 은퇴생활의 지루함을 달래준다. 타인의 시선이 없다고 생각되는 곳(사실은 CCTV로 모든 게 녹화되고 있는 곳)에서 보이는 일부 사람들의 행동은 신선했다. 음료를 구매하지 않고서 카페 테이블을 이용하는 일은 그중 흔하고 별일 아닌 일이었다. 가게에 비치된 물건을 가져가거나, 카페 안에서 배달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일도 왕왕 일어났다. 가게를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CCTV영상을 끊임없이 보았다. 마치 가게 천장에 달린 카메라의 눈이 나의 눈이 된 것 같았다. 이래서는 무인가게를 운영하는 의미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모든 일이 그렇듯, 나에게도 익숙함과 평화가 찾아왔다. 이제는 가게의 영상을 그때만큼 자주 보지 않는다. 영상을 보고 있던 아니던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말썽을 일으키는 일부 사람보다, 질서를 가지고 가게를 이용해 주는 보통의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거리를 밝혀주는 작은 가게의 존재를 반가워하고 기꺼이 이용해 주는 다수의 손님들은 이 사장 없는 카페가 문 닫지 않고 지속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작은 가게를 내 손으로 열어 본 경험으로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꿈꾼다. 작고 지속가능한 가게. 모든 것을 온라인에서 구매하고, 대기업 브랜드의 대형 가게만 살아남는 세상에서도 골목 가게는 여전히 필요하다. 획일적이고 화려한 인테리어 공사대신, 기존 가게의 구조물을 최대한 이용해서 자신만의 소담한 스타일로 꾸민 가게. 마치 나의 은퇴생활처럼 큰 수익 없이도 계속되는 자립가능한 가게를 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