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을 위한 유랑의 첫 번째 장소, 울릉도

은퇴자의 거주지 정하기 1.

by 오늘의 바다 보다

더 이상 회사에 매어있지 않으니 전국, 아니 전 세계 어디에서든 살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회사 근처에서만 살다가 정작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어느 곳에든 살 수 있는 자유가 생기자 오히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어느 정도 제약이 주어져야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르는 조건하 최적화에 특히 재능을 보이던 나였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고민에 끝이 없을 것 같아서 한 달씩 살아보기로 했다. 사실 힘겹게 하루하루 요일을 세어가며 회사를 다닐 때 가장 소원하던 것이 장기여행이었다. 너무 촉박하지 않게, 그래서 휴양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 오히려 피곤이 쌓이지 않게, 그렇게 시간을 넉넉하게 그러쥐고 가고 싶었다. 유튜브에서 귀촌한 사람들의 영상을 많이 보던 때라 정부에서 지원하는 시골에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친구들과 즐겁게 다녀왔던 울릉도에서의 추억이 떠올라 울릉도의 통구미마을에 지원했고 이내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 프로그램의 정확한 명칭은 ‘농촌에서 살아보기’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귀농귀촌에 관심이 있고, 이주를 고려 중인 도시민에게 숙소와 체험프로그램 그리고 소정의 연수비를 제공해 준다. 새로운 삶을 탐색하러 간 그곳에서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여러 참가자를 만났다. 은퇴 후에 귀촌을 준비하는 노부부, 건강을 찾지 위해 자연에서의 삶을 꿈꾸는 가족들. 여자 혼자 온 참가자는 나와 20대의 어린 친구뿐이라 자연스럽게 둘이 룸메이트가 되었다.


숙소에서 가장 작은 원룸을 배정받은 터라, 작은 공간에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가만가만 조심하고 배려하며 지냈다. 이불 두 개를 펼치면 겹쳐지는 정도로 작은 공간이라, 바닥에 까는 이불은 반으로 접어서 고이 누웠다. 그 반으로 접은 이불처럼 그동안 맘대로 살았던 마음은 반으로 접었고, 대신 손이 닿는 공간만큼 빠르게 가까워졌다. 돌아보니 은퇴 직후에 아무런 제약 없이 흐트러져 풀어질 수도 있는 나의 생활을 잡아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크기는 정말 작았지만, 통구미마을의 명소 거북바위가 엎어지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숙소는 정말 좋았다. 바닷바람 머금은 바람과 햇살이 가득 내리쬐는 방. 매일의 울릉바다의 표정과 거북바위가 어우러진 뷰를 마주 볼 수 있는 작은 창도 맘에 들었다. 울릉도는 화산지형이라 바다를 품은 풍경과 지형이 특히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날씨와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눈물이 나게 아름다운 바다를 넘치게 보고 또 보던 한 달이었다.


자유시간에는 챙겨 온 캠핑의자를 달랑 들고 발길 닿는 대로 산책을 다니다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유로이 앉아 멍하니 감상하곤 했다. 파도가 거세고 날씨가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곳이라 음악이나 책이 따로 필요 없었다. 그 순간의 파도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형형색색 바뀌는 바다와 하늘의 조화를 넋을 놓고 보고 있다 보면, 이내 복잡하던 머리 속도 씻기고, 가슴에도 바람이 가득 차 부풀어 올랐다. 이 시기에 느낀 무아지경의 감각이 울릉도 자연의 고유한 힘인지, 퇴사를 한지 얼마 안 된 후련함인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다.


한 달 동안의 울릉도 살이로 조금은 알게 된 것이 있다. 일단, 나는 바다를 참 좋아한다는 것. 그냥 관광지로 어쩌다 다녀올 정도가 아니라, 근처에 두고 자주 보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그동안 사람에 치이고 부대껴 한적한 시골살이를 원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고립되고 싶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조금만 파고가 높아져도 육지로 닿는 유일한 수단인 여객선이 취소되는 울릉도는 내가 아끼는 몇 안 되는 육지의 사람들과의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따듯했다. 특히 룸메이트였던 친구는 나와 10살 넘게 차이나는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 삶을 개척하려는 생각을 하고 또 행동에 옮긴 용감한 아이였다. 지금은 한 달간의 꿈같던 시간을 뒤로하고, 살던 곳으로 돌아가 원래 전공했던 육아교육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결국 귀촌을 하지 않았다면, 이 시간은 무용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삶다가 보면 삶이 자신을 지나치게 몰아세울 때, 이 길이 내가 원하던 길이 아니었다고 통째로 부정하고 싶을 때, 그럴 때마다 다시 눈을 돌려 나를 옮겨 놓을 수 있는 인생의 선택지를 깊게 심어 저장해 둔 것이다. 물론 이건 나의 삶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또 하나의 알아챔은 나와 공간과 물건에 대한 관계였다. 한 달 살이가 처음이라 대형캐리어에 꽉꽉 채워간 물건은 절반 정도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들고 돌아왔다. 집이 크고 물건이 많아야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작은 방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수의 물건과 살아도, 답답하거나 부족하지 않았다. 삶이 내가 소유한 보잘것 없는 것에만 머물다 울릉도의 아름다운 자연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이 느낌은 이내 앞으로의 소박한 자유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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