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회사 다닐 나이에 하릴없이 팽팽 놀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불안감은 내 마음 구석진 곳에 늘 깔려있는 모양인지 이상한 꿈을 이따금씩 꾼다.
보통 정말 중요한 일이나 숨겨둔 돈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채 바보처럼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스스로 허공에서 바라보는 느낌의 꿈인데, 이런 꿈을 꾸고 나서는 기분이 찝찝하기가 이를 때가 없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대로 무의식이 꿈속에서 흘러나오는 과정인 것인가. 아마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불안감이 드는 모양이다. 평온한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요지의 말들을 책이나 방송에서 찾아 아무리 주워 삼켜도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 언제든 생각에 빠지면 다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자꾸 비슷한 꿈을 꾸다 보니 실제로 어디 계좌에 넣어두었다 홀랑 까먹은 돈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요새야 전 금융기관 계좌를 조회할 수 있는 공공사이트가 있으니 길 잃은 돈이 없기야 하지만,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까 먹였다던가 하는 가능성들을 마음속으로 헤아려보게 된다. 시작은 별거 아닌 꿈이었지만, 계속 생각하다 보니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다 기억하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길바닥에 흘리고 다닌 물건이 꽤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내가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나에게서 상실된 것들은 얼마나 될까? 그러니 앞으로도 ‘전계좌조회’에 나오지 않을 것들은 꿍쳐놓고 살지 않기로 했다. 요새 금투자가 유행이라, 골드바는 비싸서 엄두가 안 나고, 대신 콩알만 한 금을 매달 하나씩 사는 것을 검색해 보았는데, 그만두어야겠다. 어디 옷장 구석에 숨겨두고 긴 시간 동안 계속 신경 쓰고 싶지는 않다.
모든 소유에는 끊임없는 관심이 수반된다. 비록 상하지 않는 물건이라도 가끔씩 먼지라도 털어줘야 하고, 이삿짐을 꾸릴 때마다 얘를 버릴 것인지 공들여 고민해야 하니까. 그렇게 내 내 뇌 속에서 용량을 차지하고 있는 자잘한 신경들이 모여 나를 짐을 지고 사는 사람으로 만든다. 지금 가장 가볍고 편한 배낭을 메고 나왔건만, 좋아하는 도서관에 앉아있는 지금도 눈을 감고 가만히 느껴보면 머릿속 어떠한 중량이 느껴진다. 찌꺼기처럼 끈적하게 엉긴 무언가가 뇌를 묵직하게 막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퇴사를 하며 많은 신경 쓰기가 정리되었다. 한창 은행에 다닐 때는 머리가 무겁다 못해 팽창하는 느낌이았다. 그것은 무게감뿐 아니라 약간의 부피감과 열감도 지닌 살아 움직이는 존재였다.
비단 물건의 소유뿐 아니라, 모든 관계와 책임의 소유도 뇌의 용량을 차지한다. 사랑이라던과 관계의 힘으로 이 부대낌을 충만함으로 승화시키는 이들도 있겠지만, 부족한 인간인 나는 덜어내기로 해소하는 방법만을 알고, 또 효과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물건을 줄이고, 소비를 줄이고, 책임과 관계를 줄여가고 있는 중이다. 매일 최대한 가뿐한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그리하여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았을 때, 떠오르는 걱정이나 고민이 크지 않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또 무언가를 망각하는 꿈을 꾼다면, 받아들여야지 싶다. 다 가지고 갈 수는 없지 않겠냐 하면서. 그래 나는 원래 칠칠치 못하게 잘 흘리고 다니는 사람이지 하면서.
은행을 그만둔 지도 벌써 3년이 훌쩍 지났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별로 기억에 남을 것이 없는 흐르는 삶을 살다 보니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실시간으로 기회를 잃고 있는 중이다. 월급이라든지, 성과라든지 그런 종류의 값어치 있는 것들을. 나는 돈을 퍽이나 좋아하는 사람인데 신기하다. 놓친 것들이 아쉽지는 않다. 그것들은 아주 가끔 꿈에서만 나타나 나를 생각하게 한다. 너무 잊고 살지는 말라 한다. 이것은 아주 은은하고 부드러운 알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