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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Jan 03. 2020

07. 수면장애가 나에게 미친 영향 - 2

대중교통 속에서 여성의 틈을 노리는 치한들

기절하듯 잠드는 증상은 사춘기부터 심각하게 나를 힘들게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내릴 곳을 놓치는 것은 일상이었고, 치한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문제가 가장 나를 힘들 게 했다.


좌석버스를 타게 되면 아니나 다를까 잠이 든다. 하루는 과외를 가는 길에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는데 옆좌석의 4~5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내 허벅지에 손을 얹고 있는 것이었다. 긴 청바지를 입었지만 소름이 돋고 화가 치밀어 째려보면서 손을 탁 쳐냈다. 좌석버스는 만석이었고 과외 장소는 아직 멀었기에 할 수 없이 그냥 앉아있었는데 이 정도로 화가 나고 몇 코스 안 남은 상태면 당연히 잠이 들지 않을 줄 알았다. 나를 과신했던 것이다. 조금 뒤 다시 같은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었고 "뭐하시는 거예요!" 하면서 또 손을 쳐냈다. 이번에는 일어섰다.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니 증거도 없다. 화는 났지만 그냥 과외 집 있는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나를 따라 내려서는 슬금슬금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무섭기보다는 화가 났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왜 따라오시는데요!" 화를 벌컥 내자 의외라는 표정으로 잠시 더 따라오다가 한 번 더 화를 내자 돌아서 가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웬 처자가 버스에서 내내 자는 데다 허벅지에 손을 얹어도 손만 쳐내고는 또 자니 쉬운 여자로 보였나 싶긴 하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모르는 여자 허벅지에 손을 올린 것은 분명 아저씨가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멋진 남자가 옆에 앉아서 잔다고 허벅지에 손을 얹을 생각을 않는 것을 보면.

이후 비슷한 경험을 한 번 더 했고 나는 그 이후로 좌석버스, 시외버스는 반드시 복도 쪽 자리에 앉았다.


더 끔찍한 경험은 일반 시내버스에서 겪었다. 승객이 많이 없던 어느 겨울이었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출입구 근처 좌석에 앉아 여지없이 잠들어 있었다. 당시 패딩점퍼는 매우 두꺼웠다. 빈 좌석을 놔두고 굳이 내 옆에 서서 자꾸 패딩에 몸이 닿는 승객이 느껴져서 몇 번 얼핏 잠이 깨다가 다시 잠들기를 몇 번. 갑자기 버스 안이 시끌시끌해서 눈이 떠졌다. 내 뒤쪽에 앉거나 서 있던 몇 명의 남자 승객들이 화를 내며 내 옆에 서 있던 남자를 나로부터 떼어내며 "아가씨, 괜찮아요?", "놀랬죠!", "이 새끼 미쳤나!", "안 집어넣나!", "내리라!" 마구 외쳤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대담하게도 바지 지퍼를 열고 자신의 성기를 꺼내어  두꺼운 패딩을 방패 삼아 안 보이게 하고는 내 오른팔에 연신 부딪히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하는 당사자는 모르는 사이 주변 남자들이 상황을 파악한 것이었다. 난 막 잠에서 깨어 정신이 없었고 남자들은 그 황당한 사건을 자기 일처럼 화를 내며 기사님께 상황설명을 했다. 기사님은 "요 앞에 파출소가 있다"며 차를 세워 파출소에 인계하고 다시 출발했다. 몹시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나의 안전을 위해서 내가 따라 내려 진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들을 하셨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자주 그 버스에서 추행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이라 기사님이 아셨던 걸까? 하여간 버스가 출발하고 다들 괜찮냐고 물어주셨고 나는 얼떨떨하게 괜찮다고 하면서 남자의 성기를 못 본 것에 대해 호기심 반, 안심 반의 심정을 갖고 곧 내리게 되었다. 집에 도착해 식구들에게 말하자 아버지는 그 이름 모를 치한에 대해 엄청나게 화를 내셨고, 어머니는 더러워하셨다. 그리고 그제야 기분이 몹시 더럽고 무서워졌다.


수면장애를 겪는 여성-혹은 대중교통 이용 중 잠든 여성- 관련한 내가 직접 경험한 가장 파렴치했던 두 명의 치한에 대해 적어보았다. 물론 더 있었지만 이 둘이 가장 끔찍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잠과 관계없이 내가 지금껏 만난 이상한 치한들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평범한 남자들은 자신은 치한을 본 적 없다며 유난 떤다고 해서 속상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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