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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Jan 03. 2020

06. 수면장애가 나에게 미친 영향-1

대중교통 속에서 기절하듯 잠드는 것

수면장애는 사춘기부터 30대까지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기절하듯 잠이 드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대중교통 이용하면서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질 지경이다. 친구들은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같은 곳에 사연을 보내라고들 했었다. 버스든 지하철이든 두 코스 이상이면 잠들었다. 심지어 서서도 잠드는데 20대였던 어느 날, 순간적으로 잠들어 내 무릎이 꺾이면서 내 앞에 서 있던 어떤 남자분의 무릎을 치게 되었다. 죄송하다고 인사드리고 두 코스도 가지 않아 또 무릎이 꺾였다. 부끄러워서 자리를 옮겼는데 곧 또 꺾여서 이번엔 다른 승객의 무릎을 쳤다. 도저히 잠이 안 깨겠다 싶어 결국 버스를 내렸다가 다시 타고 갔다.


대학생 때는 집이 학교와 멀어 버스를 거의 종점에서 타서 의자에 앉아 반대쪽 종점 가까이 가서 내려야 했는데 그 내내 머리를 헤드뱅잉을 하며 갔다. 어느 해 겨울, 코트에 모조 털이 있는 것을 입었었는데 입술 화장이 새빨간 것이 유행했다. 그 외투를 입은 첫날 버스에서 내린 뒤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았다. 이상해서 거울을 보니 내 입 주변에 온통 붉은 립스틱 자국이 번져있었다. 자는 내내 모조 털에 문질러져 생긴 일이었다. 그 이후로는 버스에서 내리기 전 잠이 깨면 항상 고개를 숙인 채로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입을 확인했다. 거의 매일 그 사단이라 나중에는 립스틱을 바르지 않고 학교에 와서 발랐다.


역시 대학생일 때 학교 등교를 못 하는 날이 가끔 있었는데 어이없는 이유였다. 집에서 타면 학교를 종점으로 다시 돌아서 집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눈을 떠보니 집 앞 정류소였다. 눈을 의심했다. 거의 3시간을 버스에서 눈 한 번 안 뜨고 잔 것이었다. 오후 수업이라도 듣겠다며 다시 도전했으나 또 집 앞에서 눈을 떴다. 이젠 다시 버스를 타도 수업이 끝날 때 도착할 지경이었다. 집 근처 만화방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야 했다. 부모님께 사정을 도저히 말해드릴 수가 없었다. 똑같은 일이 또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회사에서 필요한 서류를 집에 두고 출근하셨다고 가져 다 달라고 하셨다. 토요일 오후라 내가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는 아버지 회사를 지나 한참 더 가다가 종점에서 돌아서 집 쪽으로 오는 버스였다. 갑자기 잠이 번쩍 깨어 눈을 뜨니 종점을 돌아 아버지 근무회사에서 20분도 더 지나있었다. 황급히 내려 다시 타고 가서 전해드리니 아버지께서 왜 이리 늦었냐고 하셨다. 차가 밀렸다는 식상한 변명을 하고 말았다.


가장 황당했던 사고는 버스에서 날았던 일이다. 집으로 가는 중 굉장히 많이 꺾인 코너를 도는 구간이 있었는데 하루는 버스 뒷바퀴 위에 앉게 되었다. 대학 다니던 당시 시내버스의 뒷바퀴 위 좌석은 다른 좌석보다 높았지만 팔걸이가 없었다. 평소처럼 기절해서 자다가 갑자기 아래로 향하던 중력이 나의 오른쪽을 향한듯한 이상한 느낌에 눈을 번쩍 떴다.

나는 날고 있었다!

반대편 뒷바퀴 좌석 밑의 딱딱한 모서리에 얼굴을 찧고 말았다. 너무나 부끄러운 나머지 고개를 숙인 채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 얼굴을 파묻었다. 앞 좌석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괜찮냐고 하셨지만 대답도 못했다. 이마가 꽤나 아파서 다시 잠들진 않고 버스에서 내린 뒤 거울을 보니 벌겋게 쓸리듯이 찍혀 있었다. 부모님의 걱정에는 낡은 학교 건물 계단 손잡이를 못 보고 걷다가 찍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야 했다.


대중교통 관련해서 웃어넘길 수 있는 사연들을 적어보았다. 다음에는 웃어넘길 수 없는 사연들을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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