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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Dec 30. 2019

04. 생리양과 삶의 질

생리양이 많다면 얼마나 많기에

생리양이 많다는 정도에 개인차가 크다는 것은 안다. 그 누구도 생리혈이나 사용한 생리대를 남에게 보여주진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유달리 양이 많았다는 것은 몇 번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증거는 학창 시절 생리기간이라고 하여 나처럼 4~5일 내내 쉬는 시간마다 생리대를 갈러 화장실에 가는 애는 없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생리기간 밤중에 1~2시간마다 생리대 갈기 위해 화장실에 가야 해서 못 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어머니께서 당시를 떠올리며 하혈 같다고 산부인과에 데려가 봐야 하나 고민하셨다고 한 것이다.
네 번째는 매번 변기에 가득 깔리는 생리혈을 보면 책에서 얘기하는 반 컵 정도의 양은 정말 적게 잡아 이틀이면 나왔을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고등학생 때 어머니께서 너무나 딱해 보이셨는지 화장실 가는 횟수라도 줄여보라고 두툼하여 치마 교복 밑에만 착용이 가능한 산모용(혹은 애기용) 일회용 일자 기저귀를 사주신 적이 있었다. 그거 믿고 양 많은 날 3시간 수업 후 화장실에 가보니 그 큰 기저귀가 빈 곳이 거의 없이 생리혈로 차서 큰일이 날 뻔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이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이었다. 직장 선배분이 산부인과에서 치료를 받게 된 계기가 생리양이 갑자기 늘었기 때문이라며 말씀하신 증상이 내가 생리를 시작한 이래 30대 초반까지 매 생리 때마다 겪었던 일상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리 때마다 겪었던 지옥 같은 일이 평범한 생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갑자기 생겼다는 그 증상은 다음과 같았다.
앉았다 일어나면 생리혈이 쏟아져 생리대에 흡수될 여유가 없을 정도라 새어나간다. 큰 소리나 기침, 재채기에도 마찬가지다. 한 시간이면 생리대가 생리혈로 가득 찬다. 체내형 생리대는 30분마다 갈아주어야 할 정도라 사용할 수 없다. 생리대 교체를 위해 화장실에서 속옷을 내리거나 올리는 순간에도 생리혈이 쏟아지기 일쑤라 옷을 자주 버린다. 재래식 변기 바닥이 생리혈로 흰 곳이 없게 덮인다. 밤에 누워 잘 수가 없다.
그래서 병원에 갔고 미레나를 처방받아 새 인생이 열렸다고 했다.

나는 30대 초순까지 계속 그렇게 살았고 40이 지나 자연스레 좀 줄어 지금은 생리기간 내내 누워 잘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자는 시간이 긴 것이 여전히 불안해서 1시 정도까지 억지로 폰을 보며 쏟아지는 잠을 이기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잔다.

생리양이 많다는 것은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얼마나 많은 것을 관리해야 하는지. 또한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없는지.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오는 시간에는 생리대에 혈이 흡수될 시간도 없다. 생리혈로 속옷을 버리면 다음 생리대를 붙이기도 힘들고 냄새도 신경 쓰인다. 바지를 입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밖까지 보이는 것은 시간문제다. 수업 시간 중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여학생은 속는 한이 있어도 다녀오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10대. 처음이라 생리양이 많을 시기다. 여학생, 아니 여자들을 볼 때마다 대견한 이유이다. 세상의 수많은 여자들이 생리를 하지만 조용히 표 나지 않게 자신을 관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 달마다 짧게는 3일, 길게는 7~8일을 의지와 관계없이 쏟아지는 피를 처리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살면서 가장 부러웠던 여자들은 생리기간이 3일 이라거나 생리통을 모른다거나 양이 너무 적어 팬티라이너로 넘긴다는 이들이다. 왜 생리가 여성으로 사는데 그렇게나 저주스럽냐고 되묻는 그들. 복 받았다. 진정 복 받았다. 인생에서 적어도 5년간 복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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