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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Dec 30. 2019

03. 한 달에 5일, 제대로 잠 못 자는 지옥

편히 누워 깨지 않고 자는 것이 불가능한 시기

결혼하고 첫 생리일, 남편은 자다가 깜짝 놀라 다.

"왜 그래요? 괜찮아요?"

나는 대답도 잘 못했다. 너무나 아파서 침대 옆 바닥에 앉아 침대에 기대어 끙끙거리며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만나서 3개월 만에 결혼한지라 서로 좋아하기는 해도 아직은 어색하기 그지없는 사이였다. 생리통이 심해서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두라고 대답했지만 남편은 몹시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약이 잘 듣지 않아 밤새 침대에 기댄 채 30분 정도씩 선잠을 잤다. 그 사이 1~2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서 20~30분씩 배를 움켜잡고 앉아 있었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양이 워낙 많아 누워서 푹 자버리면 생리혈이 다 샐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출근 준비를 시작하면 겨우 출근시간을 맞춰 준비가 가능했다.

13살부터 한 달에 5일을 그렇게 사는 것이 내 생활이었다.


국민학교 6학년 중순이었다. 성교육시간에 말로만 들어본 생리를 시작했다. 단 한 번도 그게 그렇게나 힘들고 아프다고 들은 적이 없었다. 첫날 저녁부터 살살 아프기 시작한 배는 한밤중에 진통제를 먹고서야 조금 나아졌지만 처음 겪는 내장을 쥐어뜯는 듯한 아랫배의 고통은 너무나 공포스럽고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바로 그 첫날부터 나는 바닥에 앉아서 침대에 기대어 선잠을 자야 했다. 그리고 그런 고통이 5일을 갔다.


나는 남자애들과 노는 말괄량이였다. 고무줄 뛰기나 공기놀이는 재능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혹성탈출(미끄럼틀 위에서 눈감고 주변을 탐색하는 술래를 피해 미끄럼틀을 올라가서 내려가는 놀이), 다방구(술래잡기의 일종), 구름사다리 매달려 한 번에 많이 가기, 긴 철봉 먼저 오르기, 계단 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를 하며 놀았다. 순딩이 남자 짝지가 당시 유행하던 고무딱지를 잃고 울면 나서서 도로 빼앗아 주곤 했다. 방과 후엔 공터에 가서 공사장 자재들이 쌓인 곳을 위험한 줄도 모르고 남자애들과 오르내리며 놀았다. 그런 내가 하루아침에 바뀌었던 것이다.


양도 많아서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을 가야 했고 금방 새는 생리혈이 두려워 그 어떤 자세도 편하지 않았다. 배는 끊임없이 아팠고 진통제도 그다지 잘 듣지 않았다. 변비 한 번 없었고, 배탈 한 번 안 나던 내가 이 기간엔 무른 변을 보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첫날부터 양이 많은 편이었고 셋째 날에는 화장실에 앉으면 질에서 생리혈이 순간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소변처럼 보일 정도였다. 옷을 벗고 입는 사이에도 생리혈이 쏟아져 옷을 버리기 일쑤였다. 넷째 날까지도 양이 꽤 많았다가 차차 줄기 시작하여 일주일을 꽉 채우고 생리기간이 끝났다. 나의 생리통은 생리혈의 양과 비례했다. 5일은 아팠고, 그중 3일은 정말 세상과 나 자신과 자궁을 저주하며 지냈다. 낮 생활도 저주스러웠지만 밤이 되면 더 끔찍했다. 베개에 머리를 대기만 하면 아침 눈뜰 때까지 숙면하던 내가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다가도 배가 쥐어뜯기는 아픔에 깨어났고 화장실에 가서 생리혈을 쏟아내어야 했다. 생리혈은 나오는 것이 완전히 조절되는 것이 아닌 만큼 누워 자는 것은 사치였다. 10대~20대 시기에는 정말 1~2시간이면 생리대가 생리혈로 가득 차는 기간이 3일은 되었다. 늘 빈혈에 시달렸다.


나는 지금도 내가 대견하다. 규칙적으로 찾아오는 죽음 같은 시간을 악으로 깡으로 이겨내며 학창 시절 12년 개근을 하고 공부하고 시험 쳐서 대학 가고 직장생활과 결혼생활, 육아를 해내었다는 것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한 달에 7일, 그중 정말 힘든 5일. 13세 이후 인생의 1/6이 지옥이었다. 40세까지 생각해보면 27년*(1/6)=4.05년의 지옥. 이제는 끝났다.


너무 힘들어서 45살에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받았고 내막증과 선근종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치료에 대해 듣고 나서 나는 딱 한 가지를 물었다.

"치료받으면 안 아프게 지낼 수 있나요?"

"줄긴 하겠지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전 더 이상 생리기간에 아프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지긋지긋합니다."

"그럼 적출해야지요."

천국의 종소리를 들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생리 없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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