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다 Jan 03. 2020

09. 수면장애가 나에게 미친 영향 - 4

수면장애와 일상생활

그 날은 내가 운전하여 시댁에 갔다.

조수석의 남편에게 물었다.

"여기서 어느 IC로 들어가야 하죠?"

"10년도 넘게 다닌 길인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요?"

"제가 차 안에서 깨어 있는 거 보셨어요?"


잠이 지나치게 많은 증상은 일상생활을 힘들게 한다.

내비게이션이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어릴 때부터 자다가 누가 내 이름을 부르면 한 번만에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도 자는 동안 알람이나 벨소리는 듣지 못했다. 10대가 되어서는 결국 시장에서 파는 시끄럽게 따르릉 거리는 시계를 샀다. 그 시계는 각기 다른 방에 자는 온 식구를 다 깨운 뒤에도 나를 깨우지 못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어떨 때는 다시 엎드려 잠시 쉬려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그럴 때면 접힌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일어날 때 종종 다리를 헛디디거나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그럴 때는 다리에 피가 통해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디든 머리만 대면 잠드는 능력은 육아 기간에 빛을 발했다. 애가 2시간마다 젖이나 분유를 먹는 것을 만 2년을 했는데 직장 생활으로 피곤한 중에도 애가 울면 번쩍 눈이 떠졌고, 수유 후 다시 바로 잠에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여행을 가면 어떤 종류의 교통편을 이용하던 이동 중에는 기절하듯 잠들어 있었기에 지리에 약했다. 남편은 여행을 좋아해서 풍경이 좋은 길로 운전하는 계획을 자주 짰지만 나는 40대가 되기 전까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할 수 없었다. 고등학생 때 전교 1등을 하던 짝지가 자기는 누워서 하루를 정리하고 다음 날 할 일을 생각한다고 했다. 나도 따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누워서 잠들기 전에 하루를 정리하거나 심각한 고민을 하는 것은 사치였다. 속상해서 울면서 누워도 1분도 안되어 잠이 들었다. 그 어떤 고민도 누워서는 할 수 없었다.


20대에 운전을 하면서는 졸음운전이 심각한 문제였다. 낮이고 밤이고 없이 졸음이 덮칠 때가 있었다. 밤에는 더 심했기에 밤 운전을 삼가야 했다. 직장을 다닌 후 대학원을 다녔는데 1시간이 넘게 운전을 해야 했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악을 쓰고 노래 부르면서 버텨야 했다. 30대 중반까지는 되도록 밤에 운전하지 않았다. 어느 날에는 아침 출근길에 터널 앞에서 순간적으로 잠이 쏟아졌다. 차가 밀리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눈을 뜨니 앞 차가 코 앞에 와있었고,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그때만 해도 나에게 수면 장애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잠이 많았다고 생각했다. 전날도 많이 잤는데 왜 또 졸았나 자책만 했다. 결혼하고 남편은 이런 말도 했다. "운전을 하는데 잠이 어떻게 오나요? 신경 쓰이는데 잠이 와요?" 그때 처음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집중하거나 신경을 쓰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황당했던 일 중 하나는 교사가 된 뒤 과학 수업 중 잠시 졸았던 일이다. 20대 중반에 딱 한 번 있었는데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서서 무엇인가를 설명하던 중이었는데 안개가 개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학생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내가 뭐라고 하더냐고 물어보니 유에프오에 대해 잠시 얘기했다고 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람이 서서 말하던 중에 잘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었다. 이후 한 번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30대가 지나가면서 수면 장애가 없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궁금한 증상 한 가지가 있는데 일반 사람들도 이런지 모르겠다. 가끔 다리, 특히 종아리와 그 아래쪽으로 내가 조절할 수 없는 흔들림이 나타난다. 기절하듯 잠들지 않고 잠이 쏟아지지만 잠이 들지 않거나 잠을 참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발을 움찔거린다. 이 증상은 연수받다가 잠이 올 때, 누워 자려고 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등 언제든 잠이 쏟아지지만 금방 잠들지 않는 특이한 때 나타난다. 다행스럽게도 40대가 되면서 수면 장애는 현저히 줄었고, 이런 발 떨림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수면 장애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잠을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이다. 일상생활이 힘들다. 사춘기 이래 내 삶은 잠과의 전쟁이었다. 생리통과 생리양으로 인한 삶의 변화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수면장애를 초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삶은 불공평한 거다. 힘든 것이 다른 힘든 것을 불러온다.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다음 문장은 가끔씩 힘든 삶을 견디게 해 준다.


"Life is not fair. Get used to it."


난 불공평한 상황에서 견뎌냈다. 10대부터 30대까지 생리통과 생리양과 수면장애를 견디고 어쨌거나 대학을 갔고, 임용을 보았고, 교사가 되었고, 직장 생활과 결혼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전 08화 08. 수면장애가 나에게 미친 영향 -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