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림골, 원점 회귀
눈을 뜬다. 어느새 눈가에는 촉촉이 눈물이 고여 있다. 나는 눈물을 대충 닦고 다시 내려갈 채비를 한다.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 쉬었으니 다시 내려가 보자.
십이 선녀탕을 따라 놓인 계단을 내려간다. 눈이 와도 무너지지 않도록 철조망으로 엮인 지붕이 있다.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그러다가 잠시 멈춘다. 이젠 뭐라도 먹지 않으면 토할 것 같다. 먹은 거라곤 어젯밤에 먹은 라면밥이 다니까. 다리를 건너다 급하게 초콜릿을 꺼내 먹는다. 잠시 쉰 걸론 부족한지 허리와 다리가 너무 아프고 저린다. 배도 무척 고프다. 초콜릿을 입안에서 녹이며 잠시 다리에서 경치를 내려다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는 서울에서 온 공무원을 따라 떠났다고 한다. 그 직원이 정말 서울 사람인지 아니면 우리 엄마를 속인 건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둘 사이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역시도. 그러나 엄마가 순박한 농사꾼인 아버지에 대해 늘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건 확실하다.
처음엔 외할아버지의 뜻으로 결혼했고, 마을 사람들이 칭찬하는 성실한 농사꾼이던 아버지가 나름 마음에 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고 서울도 가지 못한 채로 할아버지와 동생들을 돌보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나를 키워야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졌고, 그 불만은 엉뚱하게도 아버지를 향하곤 했다. 서울 사람도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닌 아무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순진하기만 한 농사꾼을 만나 이렇게 산다고 말이다. 게다가 엄마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지원해 줄 만큼 형편이 좋지 못한 것 역시 엄마의 주된 불만 사항이었다.
엄마는 방문판매일을 하며 자유를 느꼈다. 사람들을 만나며 이곳저곳 다니는 것도 재밌었고 자기 돈을 벌어 비상금을 모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그 돈으로 언젠간 다시 상경해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미래를 꿈꾸는 일이 참 달콤했다.
그런 엄마의 눈앞에 그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엄마가 원하는 걸 모두 채워줄 수 있는 남자.
서울에서 살다가 여기 면사무소로 1년 정도 파견근무를 온 공무원 박 씨였다. 엄마 말론 박 씨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고 똑똑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가끔 집에 왔을 때 박 씨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사람이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는지, 서울에 땅과 집이 얼마만큼 있는지, 셔츠는 얼마나 깨끗하고 구두는 깔끔한지, 서울 말씨가 얼마나 다정한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버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엄마의 표정은 사랑이라기보단 동경이었다. 그 남자가 온 서울이라는 도시는 엄마의 젊음과 꿈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엄마는 박 씨에게서 서울에서 살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지친 현실 속에서 잠시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서울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또 박 씨는 생계를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야만 했던 엄마와는 달리 느긋하고 여유가 있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엄마 말대로 서울에 땅과 집이 있다면 그에게 면사무소 일은 그저 취미와 같았을 것이다.
다리 밑에는 위의 샘들이 모두 모여 만들어진 제법 큰 폭포가 있다. 하나였던 물줄기가 바위를 두고 두 개로 나뉘어 양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하나가 되어 쏟아진다. 쏴아아 하는 물소리가 무척 시원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축하고 뜨거운 몸을 저 물에 풍덩 담가 식히고 싶은 충동이 든다.
작게 파여 있던 선녀탕의 물들이 모여 낙차가 큰 폭포가 되고, 그 물이 바닥을 깎아서 만들어진 큰 웅덩이가 폭포 아래에 자리한다. 여기서 끝인가 하고 보니 웅덩이 밑에는 그 물이 떨어져 만들어진 더 큰 웅덩이가 있다. 이 역시 오색으로 찬란하게 빛난다. '선녀가 목욕할 만하구나.' 선녀는 아니지만 나도 몸을 담그고 싶다.
폭포를 지나자 하류가 시작된다. 웅덩이에 모여 있던 물이 자유를 찾듯 암반 위로 넓고 얕게 쏟아진다. 물은 바위의 결을 따라 춤을 추듯 흐른다. 동시에 물결치는 듯한 바위의 표면 역시 수없이 스쳐 지나간 저 물살에 의해 생겼으리라. 물과 바위가 서로를 타고 흐르는 모습이 ‘자연’ 그 자체를 보여주는 듯하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이젠과 스틱도 없이 편한 차림으로 느긋하게 산책을 오신다. 내가 내려가는 방향에서 오시는 걸 보니 거꾸로 산행을 하려는 모양이다. 저런 차림으로 올라가시면 큰일 나는데 하는 괜한 걱정이 생긴다. 쉽게 볼 코스가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꾹 참는다. 알아서 하시겠지. 오지랖 부리지 말자.
신경 쓰지 않고 내려가는데 다정하게 서로를 기다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노부부를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에 박 씨가 없었다면, 우리 부모님도 저렇게 함께 늙어갔을까?’
갑자기 떠오른 질문에 나조차도 당황스럽다. 이미 벌어진 일을 계속 생각해서 무엇할까. 고개를 저으며 떨쳐내려 하지만 다시 그 일이 떠오른다.
계곡에 갔을 때보다 더 전의 일이다. 아마 초여름이었을 거다. 아버지를 찾으러 가던 길이었다. 아버지가 점심 먹으러 집에 오겠다고 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괜히 걱정되는 마음에 아버지가 자주 일하던 이장님 밭으로 간식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이장님 밭을 가려면 면사무소를 지나가야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 옆 마을로 가서 들어오지 못할 거라던 엄마가 면사무소 창가에 보이는 것이다.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면사무소 창문 아래에 몸을 숨기고 고개만 쏘옥 빼서 엄마 얼굴을 좇았다. 점심시간이라 다들 자리를 비웠는데 박 씨와 엄마만 남아 있었다. 엄마는 박 씨의 말에 까르르 웃기도 하고 박 씨의 어깨를 톡톡 치기도 하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박 씨도 엄마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기도 했다.
'저렇게 웃는 엄마 얼굴을 본 게 언제였더라.'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쌉쌀하고 찌르르한 감정이었다. 분명한 건 엄마는 거짓말을 했고, 우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환한 미소를 모르는 사람에게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씩씩대며 창문을 두드리려던 그때, 누군가 뒤에서 내 손을 잡았다.
“태완아.”
아버지였다.
“어, 아부지! 아부지 찾으러 가던 길이었는데 딱 만났네요? 나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려 오늘은 맛있는 점심을 사 먹자고 했다. 냉국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외식 메뉴였다. 나는 신이 나서 앞서 있던 일을 다 잊어버리고 아버지 팔에 매달려 냉국수를 먹으러 갔다. 더운 여름날에 먹는 냉국수는 꿀처럼 달콤했다.
'아버지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왜 그동안 모르는 척했을까. 화를 내도 모자랐을 텐데.'
그 질문을 곱씹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용소 폭포 입구에 도착했다. 지금 용소 폭포는 점검으로 들어갈 수 없다. 나는 들어갈 수 없어서 내심 다행이라 생각한다. 너무 힘들어서 어차피 나도 들어갈 수 없으니까. 용소 폭포 탐방 안내소에서 직원분이 문을 열고 인사를 건넨다.
“고생하셨습니다.”
여기 직원분들은 있는 듯 없는 듯 계시는 게 특징인가 보다.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안내소는 사람 한 명 딱 들어갈 정도로 비좁아 보였다. 하루 종일 저기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좋은 건가.
“감사합니다.”
고생은 했지만 아직 안 끝났다. 오색 약수터는 한참 더 가야 한다. 한숨이 나온다. 다른 일이라면 진작에 포기했을 내 성격에, 힘들어도 그만 둘 수 없는 상황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산행이 딱 그렇다.
출구처럼 보이는 곳을 지나자 이제 평평한 길이 나온다. 제법 길고 지루하다. 경치를 보기엔 이미 더 아름다운 것을 너무 많이 봤고, 또 지쳐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내려올 때 미끄러지지 않게 온 신경을 집중하며 발목에 힘을 줘야 했던 탓에 아랫다리가 잔뜩 부어 욱신거린다.
아마 여기가 조사하며 보았던 ‘무장애 탐방길’인가 보다. 휠체어를 타거나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편히 산책할 수 있도록 만든 길이라고 했던 것 같다. 무장애길을 지나고 나자 어떤 절이 나오고, 그 절을 따라 쭉 내려오자 나무가 듬성듬성한 소림이 나온다. 얕은 숲을 지나자 드디어, 드디어 끝이다.
작은 시냇물과 다리, 산채비빔밥 가게를 보니 아까 차를 타고 잘못 들어섰던 길이 맞다. 주차장까진 여기서부터 차로 3분이었으니 또 꽤나 걸어가야 한다.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고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져 있다. 다리에는 알이 단단히 배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눈이 없는 길에서 아이젠은 그저 방해가 될 뿐이다. 무릎 굽히기가 힘들어 겨우겨우 아이젠을 벗어 들고 터덜터덜 걷는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기까지 총 두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오랜 시간 추위에 떨었더니 뜨끈한 국물 생각이 간절하다.
너무 배가 고파 그냥 라면을 먹기로 한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주차장에 가 짐을 놓은 뒤, 아까 택시를 탔던 그 편의점에 간다. 택시 기사님이 계시면 왠지 어색할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다른 기사님이 계신다.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라면에 물을 부어 야외 좌석에 앉는다. 이제야 앉아 보는구나. 그리고 드디어 끝났구나.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편해진다.
물이 분명 뜨거웠는데 면이 잘 익지 않는다. '맞다, 여기 산이지.' 면이 설익었지만 원래 불은 라면을 좋아하지 않아 그냥 먹는다.
'크.. 맛있다.'
고된 산행을 끝내고 먹는 겨울 라면보다 맛있는 게 있을까.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국물 한 입에 몸이 풀린다. 그러나 너무 힘들면 입맛이 없나 보다. 잘 들어가지 않아 반 정도 먹고 정리를 한다.
여기서부터 온천까지는 다시 차로 30분. 내려올 때는 온천물에 몸을 담글 생각으로 버텨왔다지만 지금은 30분을 더 운전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다. 너무 힘들어 이대로 차에서 한숨 자고 싶지만 흥건하게 난 땀이 식기 시작하며 몸이 으슬으슬 추워진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최대한 빨리 씻고 일찍 자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목적지를 입력한다. 잔뜩 부어 종아리 등이 아파오는 걸 참으며 다시 숙소를 향해 엑셀을 밟는다.
잠시 신호가 걸린다. 갑자기 무릎에서 통증이 느껴져 바지를 걷어보니 커다란 피멍이 들어 있다. 산행 중 무릎을 부딪힌 일이 있나 생각해 보지만 그런 적이 없다. 너무 힘들어서 멍이 생길 수도 있나 생각하다가 문득 그저께 잡화점에서 상품 진열을 위해 놓아져 있던 카드에 무릎을 박은 생각이 난다. 맞다, 그때 진짜 아파서 무릎에 금 간 거 아닌가 했는데. 산행을 하면서 멍이 피멍으로 바뀌었나 보다.
진짜 아픈 상처는 생겼을 때 모르는 법이다. 종이에 베여 바로 피가 나는 건 알아보기 쉬우면서 금세 낫기도 한다. 그러나 심한 상처는 그보다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표면으로 드러나는 피멍 같은 것이다. 부딪힌 당시에는 아프긴 하지만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또는 괜찮은 줄 알고 무리해서 움직이면 어느새 새어나온 피가 살을 타고 번지고 고이며 검푸른 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제서야 알게 된다. 내가 많이 다쳤구나 하고. 오랫동안 남아 지그시 느껴지는 통증 역시 매번 그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