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해지고 싶지 않으나 늘 함께 살아가야 하는 너를.
[헤르만 헤세 / 클라인과 바그너]
= 만약 지금 불안하다면, 불안의 정체가 보일 때까지 불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아라. 그대는 더없이 익숙하고 안전한 장소에서 몸을 일으켜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을 두려워한다.
누구든 그렇다.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그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
그러니 자신을 버릴 각오로 뛰어들어라.
혹은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기고 나아가라.
앞으로 한 걸음, 단 한 걸음만.
평범한 일상 속에는 작은 기쁨에서 점진적으로 크기가 커져 기쁨이 두 배 세배로 표현할 수 있는 '기적' 또는 '행운'이 있다.
무심하게 길을 걸어가다가 따사로운 햇살 아래 무장해제하고 늘어져있는 길고양이를 만나면 단지 그 모습에 미소가 번지고 걸음을 멈추어 잠시 머릿속이 '노랑 노랑' '핑크 핑크'해 지고 만다.
달콤하고 시원한 실크 한 아이스크림을 입안에 넣었을 때도 비슷한 기쁨의 강도가 아닐까 싶다.
생각만 해도 차가운데 한없이 부드러운 것이 입안의 온기에 '아르르' 녹아내리는 그 느낌이 그대로 느껴진다.
딱히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덜컥 이루어지거나, 간절했으나 명확하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일에서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게 되는 일을 '운이 좋았다' '기적을 만난 것 같다' '행운의 여신이 온 것이다' 등으로 가끔 인생이 살만한 이유를 가끔 던져 주고 가는 신의 선물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별일 아니지만 작은 선택을 앞두고도 불안해하고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잘하고 있는 것인지, 계속 나아가도 되는 것인지, 멈추어야 하는지, 갈등으로 불안을 키워가기도 한다.
일상에서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불현듯 무엇인가 잊은 건 없는지 혹시 내가 뭔가 잘못했나, 사소하고 사소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불씨를 살려내어 불안을 키워내기도 한다.
살아있는 한 함께 가지고 가야 하는 이 감정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자주 있다.
가까이하고 싶지 않으나 웬만한 친구보다 더 가까이 더 자주 마주하게 되는 감정.
최선을 다해 피해 가고 싶지만, 그날의 정서가 안정적이라면 당당히 마주 보며 달래거나 단호하게 밀어내고 '획~' 돌아서기도 한다.
하지만 그날 컨디션 최저, 해바라기씨만큼 작아진 정서적 안정감 초예민이라면, 불안은 활화산처럼 번지고 뜨겁게 달궈지고 만다. 그날은 여지없이 마음에 심한 화상을 입는 날이다.
요가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간단한 기본 동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시원하고 기분 좋은 자극으로 전해져 관절관절의 공간이 생긴 것 같다며 좋아하고, 별다른 자극을 느끼지 못하고 어떻게 시원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분도 있다.
개인마다 생활습관적인 자세도 다르고 신체적 조건들이 다르기 때문에 비슷한 효과를 내는 동작이지만 다양한 자세로 접근해 다르게 전달되는 감각을 확인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진행하게 된다.
불안이라는 녀석도 조건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가볍게 대처할 수도 온 힘을 다해 맞서 본다 해도 쉽게 떨어뜨려 놓을 수 없을 때도 종종 있다. 더욱이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던져버릴 각오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자주 회피를 선택하고 도망 다니기 바빴다.
살아온 해가 얼마인데 뚝심 있게 덤덤하게 마주해 물러가있게 설득도 하고 타협도 하는 노하우가 생겼구나 싶다가도 그 불씨를 바로 확인하고 꺼버리지 못하면 무서운 속도로 타들어 가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런 나를 돌아보며 "아직 멀었구나. 한참 멀었어"라고 구시렁거리면서 옆방에 자고 있는 딸아이를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진다. "뭐가 무서운 거야. 왜! 두려워하냐. 일단 시작해 보거라" 등등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데이터들이 빠르게 움직여 입속에서 서로 튀어나와 질서 없는 말을 전할까 봐 오늘도 한참을 벽에 시선을 고정하고 명치에 힘을 주어 호흡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불안도 내가 살아 있기에 만들어지는 다양한 감정들을 관찰하고 통제해 가려면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운동을 지혜를 만들어 낼 자료 공급을 위한 독서를 성실하게 밥먹듯이 해야겠다 오늘도 두 손 모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