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오키나와 다이빙 가이드가 아니다”
다이빙을 가는 날은 아침 일찍부터 움직인다. 차를 타고 이동하고 슈트와 장비를 챙겨 입수준비를 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지난다. 밀물 시간은 바다마다, 날짜마다 다르지만, 경험상 바다는 매번 오후보다 오전이 좋았다. 여행지에서의 귀한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아침 일찍 움직이는 것은 필수적이다. 밤 도깨비같이 사는 데다 깨어나 정신을 차리기까지 시간이 필요하지만, 다이빙 나가는 날만큼은 일찍부터 분주해진다.
오키나와 본섬은 산호가 많이 죽어있고 볼 것이 없다는 후기들이 있었지만, 혹등고래를 보는 일정상 본섬에 머물러야 했던 우리는 가볼 만한 본섬의 다이빙 포인트를 여러 곳 수집했다. 그중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오키나와 남부의 오도 비치(John man beach)였다. 오키나와에 도착한 첫날은 매우 흐렸고 다음 날부터차츰 날씨가 맑아졌는데, 오도 비치에 갔던 여행 둘째 날도 구름과 바람이 많던 날이었다.
가장 수온이 낮은 3월, 해는 없고 바람까지 불어 우리는 바다에 들어가도 될지 잠시 고민했다. 일찍 다이빙을 마친 스쿠버 다이버들을 붙들고 수온을 물었으나 그들은 영어를 전혀 못 했고 우리는 일본어를 몰랐다. 여기까지 왔으니 물에는 들어가 보자며 입수를 결정, 슈트를 갈아입고 해변으로 향했다. 관광객에게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해변이라고 생각했으나 몇 팀의 일본인 스쿠버다이버와 서퍼들이 보였다. 주차장에는 화장실과 유료샤워장이 있었고 낡았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몸에 빈틈이 없게 맞는 고무 소재 슈트는 입는 데 요령이 필요하다. 이전에 몸을 죄는 슈트와 싸우느라 (입느라) 여러 번 고생한 전적이 있는 나는 정해진 규격으로 나오는 기성 슈트 대신 내 몸에 꼭 맞춘 맞춤 슈트를 장만했고 이날 처음으로 개시했다. 작은 생수병에 담아온 비눗물을 슈트 안에 넣어 고루 묻혔더니 각오했던 것이 무색하게 너무나 간단하게 입을 수 있었다. 이렇게 쉬운 것을 그동안 왜 그 고생을 한 것인가. 잠시 허무해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해변으로 이동했다.
버디를 정하고 장비를 착용하고 드디어 입수. 맨살이 드러난 얼굴에 차가운 물이 닿았지만, 몸은 춥지 않았다. 낮은 수온을 걱정했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몇 미터나 헤엄쳐 나갔을까, 백사장이 끝나고 다양한 산호와 물고기들이 보였다. 지형이 독특하고 어종이 다양해 예쁘고 재미있는 바다였다. 한참을 입수하고, 입수하고, 입수하고, 영상과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바다 환경이나 지형은 12월에 다녀온 케라마 제도와 비슷했지만 오도 비치의 다이빙이 더 좋았다. 케라마 제도에서는 3곳의 포인트를 갔는데, 배를 타고 이동한 시간만 세시간이 넘었고 포인트에 따라 황량한 곳도, 조류와 너울이 심한 곳도 있었다. 오도 비치에서 한참을 놀고 있는데 조금씩 해가 났다. 햇빛은 그 어떤 보정에 비교할 수 없이 바다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물속으로 드리워지는 빛 커튼, 수면의 반짝임, 물은 유리처럼 투명하고 눈부시다. 물에 취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준다. 구름에 따라 햇빛을 비추다, 가리워지는 것을 반복했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다이빙을 마무리했다.
해변에 샤워장이 있었지만 우리는 슈트만 벗고 숙소로 직행했다. 커다란 탕이 있는 목욕탕에서 몸을 데우고 목욕을 했다. 방으로 돌아와 머리를 말리고 핸드폰을 보기도 하면서 느릿하게 움직이다가 자연스럽게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낮잠 한 시간만 자고 움직일까?
전원 동의. 불을 끄고 커튼을 치고 침대로 들어가서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두툼하고 푹신한 이불에 파묻혔다. 아늑했다. 이불을 침낭처럼 몸에 돌돌 말아 꼬옥 감싸면 안정감이 느껴진다. 예전 그레이 아나토미라는 미드에서 불안증을 가지고 있는 전문의가 자신의 불안증세가 발발하면 주변 인턴들에게 자신을 꽈악 껴안으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몸 외부를 감싸 안고 압력을 가하면 신경이 안정되고 불안증세가 완화된다 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포옹이다. 포옹. 인턴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 틈에서 숨을 내쉬며 안정을 되찾는 여의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몸이 쉽게 차가워져 잠잘 때 옷과 수면 양말을 꼼꼼하게 챙겨 입는 편인데, 이 드라마의 기억으로 이불을 돌돌 말고 자는 습관이 추가됐다. 따뜻하고 불안하지 않게 잠들고 싶다.
방은 정적이 흐르고 뒤척이는 소리도 잦아들었다. 다들 잠들었지만 난 잠들 수 없었다. 잠자리가 바뀌거나 곁에 누가 있으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다이빙 후의 낮잠은 꿀 같다. 아침 일찍 부지런 떨어 바다에 들어갔다 보송하게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자는 낮잠, 상상만 해도 달콤하다. 몸은 나른하고 머리속은 맑았다. 부자연스럽게 각성한 상태로 초 단위로 흐르는 시간을 세며 한 시간 넘게 누워있었다. ‘자면서 뒤척이는 사람이 없네.’, ‘한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도 안 일어난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모두 잠든 방에서 혼자 말똥이 깨어 있었다. 꿀을 퍼담아 숟가락을 쥐여주었는데 먹을 수가 없네. 김 첨지의 심정으로 가만히 누워 사람들의 숨소리를 들었다.
여행 중 쪽잠은 컨디션 회복에 아주 효과적이다. 깨어있는 채로 쉬는 것보다 몇 배는 확실하게 피로가 회복된다. 어느 쪽도 괜찮은 무던한 성격이라 말하고 다녔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여러모로 까다롭고 예민한 유리몸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어느 곳에서든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적응력 좋은 몸을 가지고 싶다. 차에서도 잠자리에서도 잠들지 못한 퀭한 상태로 며칠을 보내고 마지막 날, 숙소를 옮기고는 기절한 듯이 잠들었고 그 날 나는 코를 골았다고 전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