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가 무서운 건, 단지 지구가 뜨거워져서 그런 것만이 아니다. 공룡이 살던 어느 시대에는 지금보다 지구 평균온도가 훨씬 높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럼 뭣이 문제냐? 속도다. 지구온난화는 뜨거워진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그 '빠르기'가 너무 급격하다. AI에 대한 걱정도 마찬가지다. 파급력이 큰 거야 다들 아시겠고, 그 속도는 지구온난화 못지 않다. 인류의 역사에 변화가 없던 적이 없었지만 그 속도가 전례 없이 빠르다는 점 때문에 나같은 소시민들은 쉽게 걱정에 물들어버리곤 한다.
지난 독서토론 시간에서는 AI기술의 대두와 인간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예상대로 AI의 급격한 발전을 경계하는 관점을 강하게 지니신 회원분도 계셨다. 하지만 그 대척점에 있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나에게 맞는 적당한 근로시간은 8시간이 아니며 AI의 도입으로 인해 내가 일을 덜 해도 되는 상황을 지지한다, AI가 가져오는 생산효율로 인해 경제가 성장하면 그 이득을 통해 경제논리와 상관없이 인간이 추구하고자 했지만 추구하지 못했던 가치들을 추구하자 등 여러 의견이 쏟아졌다.
나도 의견을 냈다 : 반복적이고 뻔하게 응답할 수 있는 분야의 것은 값싼 AI노동으로 대체하고 진짜 핵심이 되는 것들을 인간이 수행하자. AI는 자가학습 데이터를 쓰면 쓸 수록 출력데이터의 품질이 저하된다. (= Model Collapse) 때문에 인간이 AI에 의존하듯이 AI도 인간에게 의존할 동기가 있다.
경제학에는 비교우위이론(Theory of Comparative Advantage)이라는 게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A랑 B가 있다고 쳤을 때. A는 구두를 잘 만들고 B는 옷을 잘 지으면 당연히 A가 구두를 생산하고 B가 옷을 생산하여 교환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 그런데 A가 구두도 잘 만들고 옷도 잘 만든다. 다만 구두를 만들 때 들이는 에너지와 시간이 옷을 지을 때보다 훨씬 적다. B는 A보다는 구두도 잘 만들지 못하고 옷도 잘 짓지 못한다. 하지만 B가 구두와 옷만 비교 해 봤을 때에는 옷을 짓는 게 본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훨씬 덜 들인다. 이럴 때 A와 B는 교역을 하는 게 이득인가? 그렇다.
이 이론도 추가적인 가정을 통해 수정/보완된 걸로 보이는데. 어찌되었던 리카르도의 비교우위이론은 논리적 타당성 뿐만 아니라 실증분석에서도 일치하는 강력한 이론임은 틀림이 없다. 이 이론 덕분에 지금 전세계 국가들이 국제무역을 하고 있고, 그 이익이 소비주체의 후생증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트럼프가 갑자기 무역장벽을 120% 올리겠다고 해서 '아아, 그렇구나~'했던 노멀한 미국시민들이, 막상 그 관세장벽 때문에 당장 내가 입고 먹고 쓸 제품들의 가격이 확 올라간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만 해도........)
AI는 분명히 인간들보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상대우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인간이 했을 때 더 가치롭다고 믿는 고유한 분야가 존재한다.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것, 연인을 만나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 가족과 함께 같은 일을 경험하고 감흥을 나누는 것, 보석같은 지식을 기쁜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전달하는 것 등. AI가 한다고 상상하면 그 빛이 바래보이는 것이 있다. (그게 내 착각이 아니길 바란다.) 이런 부분들은 인간이 더 집중할 수 있게끔, AI의 도입을 적절히 해보는 게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례로, StarCluster 작가님의 글에서도 주장했지만, 일선 학교에 AI 고객센터를 도입하였으면 한다. 인간을 갈아넣어야 하는 민원업무는 AI에게 맡기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고 지혜의 정수를 나누는 것은 인간 교사의 몫으로 남겨두려는 취지이다. 감정적 대응을 하지 않는 AI야말로 민원업무에 최적화된 도구이다. 또한 교사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은 달리 말하면 인간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AI는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인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AGI 이전의 AI들은 AI들끼리 만든 데이터를 공유하여 서로 학습했을 때 그 결과물의 품질이 떨어지는 한계를 가진다. (Model Collapes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 아시는 전문가 분이 계시다면,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때문에 인간이 AI를 이용하며 AI가 내어오는 결과물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AI에게 데이터를 제공할 수 밖에 없다. 실로 미묘한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AI들끼리 각자 역할을 분담하여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데이터를 재가공하는 능력을 갖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AI는 인간에 의존할 필요가 없을테니까. 혹은 AGI의 등장으로 AGI가 기존 데이터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능력이 월등히 향상된다면 이 또한 인간이 AI에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경우의 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쯤되면 AI의 발전을 환영해야 할지 멀리해야 할지 감도 안 온다...)
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영화 <터미네이터> 2탄의 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한밤중에 바이크를 타고 정처없이 이동하는 주인공. 바이크는 딱 눈 앞 영역만큼의 헤드라이트를 비추고 바이크는 앞을 향해 달린다. 우리 인류도 이 밤중에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모른 채 달린다. 하지만 이 빛에 의존하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간다.
인간의 좁은 시야로 먼 미래를 예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불세출의 천재들도 쉽지 않았던 것을 나같은 소시민이 어찌해 볼 도리가 있으랴. 하지만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비록 바이크 앞의 작은 라이트에 의지할 뿐일지라도 우리는 앞으로 달릴 수 밖에 없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적어도 그 라이트가 비추는 그 구간만큼은 인류가 발전과 보존을 고민하여 달려온 덕분에 지금의 우리도 있는 것이다.
혹여 인간이 기존 방식으로 그 숙명을 다할 수 없다면 색다른 방법으로 고안 해 낼지도 모른다. 뇌에 칩을 박아서 데이터를 더욱 적극적으로 제공하든지(뉴럴링크?), AI를 오히려 딥하게 활용하여 내 한몸과 같이 이용한다든가(마스터INTJ님?) 말이다.
그 어떤 경우가 되었든지 인류의 발전은 냉소적인 사람들 덕분에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기억하자. 긍정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이게 될까'를 고민했던 자들의 희생과 성공 덕분에 지금의 인류가 이만큼 걸어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 보이겠는가? 그리고 지금 어떤 인간으로 비춰질만한가? AI라는 거센 폭풍 앞에서도 잔잔한 호수를 거니는 명상가처럼 자아성찰은 필요한 법이다.
** AI에 대한 소회 시리즈
1화. AI시대의 도래
2화. 관세음보살과 AGI
3화. GPT로 분칠한 사진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