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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바람바람

by 힙스터보살


그대 이름 바람바람바람.... 무시무시한 주제가 등장했다. 연애에 있어서 긴장을 놓아서는 안되는 존재, 상대방의 외도. (물론 나의 외도도 마찬가지겠지?ㅋㅋㅋ) 지금까지 많은 K-드라마, 영화의 소재가 되어주었던 외도. 지금도 무수한 커플들이 한 편의 드라마를 찍게 만드는 그놈의 외도. 요즘에는 결혼관도 예전과 달라져서 그런건지 결혼을 해도 안심이 되는 바도 아니고. 오픈 채팅방에 '40대'라는 키워드를 넣고 검색결과를 보면 한 눈에 척 봐도 '외도 파티 참가하실 분?'하는 너낌의 방이 주르륵 나온다. 이쯤되면 외도하는 것마저 인간의 본능은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도 드는데 말이야...ㅋㅋ


내 반려자가 외도를 하고 있는데 괜찮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내가 현남편과 연애 초기였던 시절, 그는 지금이나 그 때나 전/현직장 동료들과 이따끔씩 술을 마시곤 했다. 이번에도 전직장분과 영등포에서 술을 마시고 오겠노라 하셔서 그러시라 했다. 하지만 만난 지 세 번 만에 쿨하게 교제요청을 수용한 나로서는 이 남자가 대체 어떤 남자인지 궁금했고, 그의 술자리에 껴들어서 그의 친구는 어떤 자인지 탐구해야만 한다는 나름의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오빠, 나도 거기 가도 되요?'라고 물었고 그러시라 하기에 1호선을 타고 룰루루 도착했는데.


와... 도착해보니까 오빠랑 어느 여자 분이 술을 마시고 있네? 1:1로? 합석하고 나서 나도 술이 술술 들어가네? (속이 타들어갔나봐?ㅋㅋㅋㅋㅋ) 근데 분위기에도 취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눠봤더니 그 여성분은 심지어 오빠가 예전에 좋아한 적도 있던 여성 분이시라고 하네?그 여성분은 헬스가 취미이신 프로그래머로, 체지방 3% 달성하고 바디프로필도 그럴싸하게 찍으신 적도 있으시네? (번호 교환해서 내 카톡에 추가되어 있으심) 아니 심지어 그녀가 그 날 가져온 크로스백이 내가 가지고 있는 거랑 똑같은 거기도 했어! 아니 이게 뭐야 ㅋㅋㅋㅋㅋ 몰래카메라 찍는 건가?


어질어질한 술자리 시간을 마치고 집에서는 오빠를 붙잡고 폭풍같이 눈물이 흘렀다고 한다. 그 때의 내 마음은 뭐였을까 돌이며보면... 배신감은 아니었던 것같다. 어쩌면 이 오빠랑 헤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거기에서 파생한 슬픔이 결합한 감정이었던 같다. 전부터 눈물은 슬퍼서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떤 감정이 진해지면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그 사건은 오빠와의 연애에 있어서 드무리만큼 강렬하게 감정을 일으켰지 싶다.


으이그... 생각이 프리한 건 알았는데 여친을 배려할 정도로 프리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어 이 잉간아ㅋㅋㅋㅋㅋㅋㅋ


10대 때부터 나는 사랑에는 소유욕이 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확신을 하게 되었다. 사랑은 분명히 소유욕이 있다는 걸. 나 뿐만 아니라 다들 그걸 인지하고 있으니까 '교제하는 상대방이 바람을 피우면 어떨 거 같아요?'라고 할 때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등장하는 것 아닐까? (쿨하게 괜찮다고 하는 분은 모 아니면 도다. 부처님 수준으로 평정심 찾기 훈련에 성공했든가, 쿨병에 걸렸든가.)


그런데 감정은 지속시간이 짧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 화에 맨날 사로잡혀있지 않다. 상담원으로 6년을 지내보며 다양한 강도의 화를 내고 배출하는 과정에서 이 점은 아주 잘 알았다. 화 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이 그러함을 알았다. 어느 정도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 하나가 호르몬인데. 그 호르몬이 지멋대로 나오는 것도 병이리라. 그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어 자꾸 떠올라버리고 그래서 자꾸 감정에 사로잡힌다면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어서 빨리 상담 선생님을 찾기를 권장한다. 어찌 되었든 때가 되면 감정은 지나가고 그 자리에 생각이 들어찬다.


지금부터 생각 해 보자... 만일 현남편인 우리 오빠가 외도를 한다면 나는 어떨까. 일단은 예전에 겪었던 그 일 처럼 폭풍같이 눈물이 나오지 싶다. 나도 인간인데, 사랑했던 사람이 이제는 날 그만 사랑할 수도 있는 상황이 등장했는데, 심지어 이 분과는 교제한 시간도 꽤 되는데, 두렵고 슬프지 않을리 없을 것같다. 하지만 역시 안다. 그 감정도 지나가 버릴 것이다. 그럼 그 다음 단계에서는 생각을 하겠지. 무엇이 나에게도 좋을지.


1. 그가 그녀도 사랑하고 나도 사랑한다

그렇다면 최대 고려변수는 '내가 얼마나 소유욕에 사로잡히지 않느냐'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사랑의 소유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안다. 마치 인간이 식욕을 벗어날 수 없음과 같이. 하지만 나는 수행자이기에 지금까지 했던 연습 그대로 욕구에 사로잡히지 않고 평정심으로 되돌아오는 훈련을 한다.


그런데 실전상황이 와벌였네?ㅋㅋㅋㅋ 평정심에 돌아오는 시간도 너무 길고, 돌아오기까지 괴로움이 가중된다면... 고민을 좀 해볼 것같다. 이 퀘스트를 계속 받아서 불자로서 어나더 레벨로 넘어가볼지, 아님 여기까지 하고 GG칠건지. 근데 괴로움이 생각보다 견딜만하다? 그럼 나는 그와 계속 살지 싶다. 마치 웹툰 펜홀더에서 주인공이 펜홀더 그립 전진속공으로 100% 공격적 탁구를 진행할 때, 내가 잃은 점수는 1도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딸 점수만 생각하듯이 말이다. '그녀를 사랑해? 뭐 하든지 말든지. 근데 일단 나는 오빠가 너무 좋다. 그래서 더 사랑하려는데 뭣이 문제?' 정도의 포지션이랄까?


2. 그가 그녀를 더 사랑하기 시작하고 나의 사랑을 줄여간다.

슬픈 일이지만 이와 같이 된다면 그를 떠나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그를 사랑해도 그의 불행까지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도 자리이타(自利利他, 나에게도 좋고 그에게도 좋음)이어야 행복한 법이다.


하지만 그게 유지되지 못하는데 어쩌겠어. 그런데 내 마음도 아플텐데 어쩌겠어. 금융치료라도 해야지? 어찌되었든 나와 우리 남편은 법적 혼인관계로 묶여있고, 상대방의 귀책사유에 따른 위자료 요구가 가능하지 않나. 그가 이혼을 감행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를 사랑한다면 오히려 잘 된 일일 수도 있다. 이혼도장을 찍으면서 내 자산이 늘겠네. 그정도의 재산을 포기할 정도면 어느 정도는 그의 사랑도 인정 해 주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이쯤 되면 합의이혼을 하는 게 자리이타(自利利他)에 가까울 듯. 근데 그러면 울 아들램은 어케 키우나... 일단 분할받은 재산으로 키우긴 해야게땅 ㅋㅋㅋㅋ


어느 경우가 되었든 솔직히 유쾌하지는 않다. 당연히 저러한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Best of Best일 것이다. 나는 울 오빠가 좋다. 좋으니까 같이 살자고 내가 먼저 얘기하고, 아이도 만들고, 법적으로 우리 둘을 묶어서 본격적으로 살아보겠다고 한 거잖? 결혼은 사랑의 끝이 아니다. 제대로 사랑을 해 보겠노라 다짐하고 시작하기 위해 묶는 운동화의 매듭같은 것이다. 매듭을 묶었다면 이제 달려야지.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커플은 꽤 잘 달리고 있는 것같다. 가끔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서로 잘 일으켜 세워주며 또 달린다.


오빠 달려!!!!!!!!


누가 그러던데, 사랑은 마주보고 가는 게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보고 가는 거라고. 그 말이 참으로 맞다. 마주보고 있는 게 꼭 나쁜 건 아닌데, 자칫 잘못하면 쌈박질이 나더라. 그럴 바에는 같이 앞을 보고, 우리가 무엇에 다다라고 싶은지 그리면서 달려가는 게 훠얼씬 나은 것같다.


오랜 달리기의 끝, 결승선 너머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둘 다 늙어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 정도? 아니지. 그마저도 과학기술이 어음청 발전해서 죽음을 극복해버린다면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서도? 내 아이가, 본인 엄빠가 지극히 사랑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자손에게 또 그 자손에게 잘 전달해주고 그 이야기가 퍼져나가면, 생물학적인 죽음에는 이를지언정 사회적 죽음은 면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어쩌면 '영원한 사랑'은 한 사람의 생을 기준으로는 신기루와 같은 소망이지만, 한 인류를 기준으로 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인류 차원에서 '영원한 사랑'이 되려면, 사랑을 하는 자가 순도도 높고 부피도 큰 사랑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이야기로, 노래로 전해져 내려온 게 Love story, Love song이지 않던가. 울 외할머니가 나고 자란 남원의 춘향전만 봐도 그렇다. 원래 춘향이는 이쁘게 생기지도 않았고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된 후에 돌아와서 춘향이와 이어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지극한 사랑을 알아봐주었던 이웃들 덕분에 이야기 속 춘향이는 어여뻐졌고, 이몽룡과의 사랑에도 성공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잖은가.


그렇다면 지금 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사랑'이, 얼마나 높은 순도로 정제중인지. 외도라는 불순물이 섞이더라도 영향을 미치지 못할 정도 넓은 양의 매질을 끌어안고 있는지. 내 사랑의 양이 세숫대야만큼이라면 외도라는 소금을 들이부었을 때 금새 짜질 것이고, 내 사랑이 수영장만큼 넓다면 소금 한 줌 들이붓는다 한들 수영장 물이 짜지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심지어 매질이 압축되면 소금을 뿌린다 한들 녹지도 못하겠는데? 단단한 사랑 좋군?) 아 그렇다고 일부러 소금을 붓진 말구 ㅋㅋㅋㅋㅋㅋ! 어허~ 거기 들고있는 소금바가지 내려 놓으라니까? 좋을 말로 할때? ㅋㅋㅋㅋㅋ



** 미야 님, '바람'을 이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런 답이 나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만하면 답변다운 답변이 되었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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