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음악에 빠져지내던 시절, 나는 사랑노래는 썩 좋아하지 않았다. 필요 이상으로 애절하고, 구질구질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 나의 첫 연애는 애절함과 구질구질함이 정점을 찍는 연애였다. 돌이켜 생각 해 보면 애저녁에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이었는데. 그래도 나는 그이를 사랑하기로 했고 나름대로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이 위대한 것이긴 한가보다. 그렇게 지지리 못난 사람도 사랑으로 품게끔 만들었으니?
지금은 사랑노래든 뭐든 두루두루 좋다. 대신에 젊은 시절만큼 음악을 많이 듣진 않는다. 가끔 귀를 꿰뚫는 듯한 신선한 뮤지션을 발견하면 그래서 더 반갑다. 하지만 그 때 뿐이다. 이제는 묵자 선생님 말씀마냥 음악이 내 삶에 썩 도움이 되지 않나보다. 음악을 듣는 즐거움마저도 한계효용의 법칙을 마주하니, 나는 진정한 음악애호가까지는 되지 못하나보다. 그래도 나이가 드니까 사랑노래가 (예전에 비해) 좋아진다.
사랑은 놀랍다. 내 스스로가 발가벗겨진 듯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첫남친과 썸을 타는 동안 나는 그의 미니홈피(...와 고대의 유물이 등장했다...)를 구경하곤 했다. 그의 미니홈피에 어떤 여성분이 안부글을 남기면, 대체 저 분은 누구시길래? 하며 파도타기를 했다. (파도타기 = 인스타에 댓글 남기신 분 아이디 타고 들어가서 구경하고 오기) 구남친이자 현남편이 전직장 동료랑 한 잔 하고 온다길래 그러시라 했는데, 알고보니 그 전직장 동료분이 남친이 좋아했던 여성분이었기도 했을 때 충격이란. 사랑에 부침을 느껴봐야 인간이 성숙되는 것같다.
사랑은 놀랍다. 아들램은 나를 너무나도 좋아해준다. '엄마 사랑해'라며 웃는 모습을 보면 어쩜 저리도 이쁠까!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현재 우리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아 기대만큼 티키타카가 잘 안되긴 하지만, 우리의 수준이 비슷해질 시기가 도래하면 그는 내 품에서 벗어날 준비를 하겠지.... ^^ 상상만 해도 아련해진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있는 힘껏 사랑하고프다. 사랑해 아들~♡ 이런 아들을 만들어 준 남편도 사랑해~♡
사랑은 놀랍다. 변함없이 나를 바라봐주고, 응원하고, 가르침을 주시는 부모님의 사랑. 그 부모님과 다를 바 없는 하느님의 사랑, 부처님의 자비심. 그들의 사랑 안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임을 잘 아는 사람들이 간간히 있다. 영광되고 평화로우며 충만하고 기쁨이 넘친다. (내가 법륜스님보다 옥한흠 목사님을 먼저 만났더라면 교회를 다니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상황을 '사랑(Love)'라는 단어로 그리스인들은 퉁칠 수가 없었나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아가페(Agape, 무조건적이고 이타적이며 자비로운 사랑), 에로스(Eros, 육체적이고 성적이고 격정적인 사랑), 필리아(Phillia, 우정이나 동료애와 같이 포괄적이고 상호존중의 의미를 담은 애착과 친근함의 사랑), 스토르게(Storge, 유대감을 바탕으로 한 익숙하고 편한한 사랑)로 나누어 불렀나보다.
나는 요리를 즐겨한다. 부모님과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서, 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면 내 스스로 날 먹여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내가 우리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요리를 한다. 요리는 필히 집중을 해야 맛과 질감을 잘 살려낼 수 있다. 한눈 팔다 순간을 놓치면 배합이 이상해지거나 너무 익어서 아쉬운 맛이 난다. 잡념에 마음이 어지러우면 일부러 요리를 하기도 한다.
요리를 하면서 하나 알게된 것은, 맛있는 음식이 특정 재료를 때려넣는다고 다 맛있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재료간의 양, 궁합, 두께를 다듬는 정도, 익히는 시간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야 맛있는 음식이 나온다. 어쩜 요리마저도 중도의 지혜를 알려주는지. 좋은 사랑은 좋은 요리같다. 친밀함과 열정, 책임이 고루고루 있어야 한다. 그 셋이 저절한 길이로 결합하면 예쁜 정삼각형이 나온다. 눈으로도 먹고 맛으로도 먹는 고급요리는 작품 취급을 받기도 한다.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온전한 사랑도 어쩌면 작품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