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물열전] 즐거운 여행자 파인만

by 힙스터보살


요즘 리처드 파인만이 그렇게 좋아 보이더라. 그의 천재성은 말할 것도 없고 유쾌한 모습, 교육에 대한 열정, 상황을 정확히 꿰뚫는 통찰이 좋아보인다. 그래서 많은 물리학자들이 애정한 물리학자가 파인만이었나보다. 김상옥 교수님도 존경하는 과학자 말고, 사랑하는 과학자를 하나만 꼽으라면 파인만이라고 했다. 가만 보면 나도 파인만에 빠진 듯하다. 그래서 유튜브를 열었을 때 리처드 파인만 영상이 뜨면 홀리듯 클릭을 하고 만다.


내 나름대로 파인만의 좋은 영상을 이것저것 봤다 생각했는데, 이 영상은 그 중 압도적으로 내용이 좋다. 단순히 좋다는 것을 뛰어넘어 어떤 '울림'을 주는 것같다. 해서 독자분들도 함께 공명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당 영상의 전문을 아래에 남겨놓는다.


우리 남편도 파인만 씨 못지 않게 웃음이 이쁜 사람입니다~!


파인만 이야기 스타트 :


"과학이 모든 아름다운 질문들에 답을 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 것이며, 우주의 의미는 무엇인가'같은 질문들. 내 생각에는 바로 당신이 문제의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러한 문제들의 신비로운 해답을 찾으십시오.


당신은 탐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만큼 세계를 밝혀내려고 시도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내게 말하죠. '당신은 물리학의 궁극적인 법칙을 찾고 있군요' 아뇨, 난 아닙니다. 나는 단지 세계에 대해 더 알아내고 있는 것 뿐입니다. 만일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간단하고 궁극적인 법칙으로 밝혀졌다 해도요. 그것은 아주 멋진 발견일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수백만 개의 층을 가진 양파와 같아서 우리가 그 층들을 보는 데 번거롭고 피곤할지라도 말이죠. 그런데 그게 곧 탐구의 방법이죠! (That's the way it is!)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은 그 본질을 드러내며 그 자체의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사를 하러갈 때 더 많은 것을 찾아내려는 것 외에,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미리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와 우주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만들어진 특별한 이야기들을 대체로 믿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너무 국소적으로 보여요. 그래, 지구! 그가 지구로 강림한다니, 신의 수많은 양태 중 하나가 지구로 강림한다니. 하지만 우리 세상 밖(=우주)을 한 번 바라보세요. 균형이 안 맞아요. (It's impropotion.)


그리고 하나 더, 무언가가 사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질문 말이죠. 만일 당신이 사물에 대한 서로 다른 이론들을 가진 서로 다른 종교들의 모든 이론들을 취했다 칩시다. 그 상태에서 한 번 의심을 시작하면 계속 '궁금해'집니다. 나는 그것이 나에 게 매우 근본적인 속성, 영혼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당신이 '의심하고 질문'하면 '믿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참고 : 그는 무신론자임 // 근데 신을 믿는 것 이상으로 강력한 믿음을 갖고 있어보이는데? 나만 그리 보이나? ㅎㅎㅎ)


나는 의심, 불확실성, 무지(無知)와 함께 살 수 있습니다. (I can live with doubt and uncertainty and not knowing.) 나는 더 오래 걸릴지라도 답을 가지고 사는 것보다 모르는 채로 사는 것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거의 정확한 대답과, 가능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한 다른 정도의 확실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떤 것에도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전혀 모르는 많은 것들도 있습니다. 가령 물어도 의미없는 질문들이요, '우리는 왜 여기있는가?'와 같은.


그럼 어떤 질문이 의미있을 수 있을까요? 나는 조금 생각 해 봤지만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뭔가 하기로 했죠. 그러나 나는 답을 알아야만 하지 않습니다.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요. (I don't feel frightened by not knowing.) 미스테리한 우주에서 방법과 목적 없이 길을 잃는다는 느낌을 갖지 않아요. 정말로 내가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It doesn't frighten me.)


나는 이미 상을 받았습니다. 상이란 알아가는 재미, 발견하는 기쁨, 또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는 것, 그것들이 진정한 것입니다!"


(참고 : 파인만은 1965년 양자 전기역학 분야의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낙점됨. 그가 수상자로 선정됐드는 소식을 알리려 스웨덴 학술원에서 새벽에 걺. 전화를 받은 파인만의 반응은 '꼭 새벽에 알려야겠소? 나는 자고 있었는데 다시 전화하시죠'라고. 상도 안 받으려고 했었음. 그런데 아내 그위네스의 설득에 넘어가서 상을 받고옴. 아내가 뭐라했냐고? '노벨상을 거절하면 그 때문에 더 유명해질 걸요?' // 아내 분도 훌륭하네~)


GD야 너도 초인이 되고 싶니?


비트겐슈타인은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다. 침묵하라고 했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은 안 했다. 그것을 왜 말할 수 없는지 이해한 자가,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그것의 실체를 탐구하고자 용기를 갖추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간다. 그 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알지 못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걷고 있는 자를 멈추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질문을 던져본다. 두려움 없이 계속 묻고 탐구하는 자는 이미 초인일까? 끊임없이 묻고 탐구하는 와중에 초인이 되어가는 걸까? 전자가 되었든 후자가 되었든 니체는 (Übermensch, 초인)라며 좋아라 했겠지? 나는 위버멘쉬의 삶이 쉽지만은 않을 거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길을 가고 싶어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바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여러분들 ^^....)


미적미적 위버멘시를 향해 걸어가는 중에, 가끔 찐이다 싶은 분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초월한 긍정심을 지니고 고통마저도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아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그런 사람들. 그 중에 한 사람이 파인만은 아니었을까.


니체가 1900년에 눈을 감은 게 조금 아쉽다. 그가 한 30년 정도만 더 살았다면 청년 리처드 파인만에게 '위버멘시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 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법도 한데. 다행인 건, 파인만이 살았던 시대에는 미디어가 꽤 발전하여 그의 말이 영상과 책으로 남았다는 것? 그리하여 누군가에게 그의 말을 듣고 마음이 울렸다는 것? 그래서 김상옥 교수님이 쓴 책의 이름이 <떨림과 울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오늘은 파인만의 말에 전율을 느끼며 내 마음이 떨림♡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감정 사용법과 사성제(四聖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