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작든 크든 잘못을 하곤 한다. 잠시 생각이 꼬이거나 부지불식간에 잘못된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본인 특유의 사고편향이 있을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인정하기 힘든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를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사건이 터지면 그 사건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나, 사건 자체의 잘잘못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보이는 '태도'이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잘 쓴 반성문은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애당초 그 사람이 문제를 일으킬만한 사람이라면 좋은 반성문을 쓰기 힘들 확률이 높고, 아주 괜찮은 사람이 물의를 일으켜 반성문을 쓸 일 자체가 확률이 낮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치면 미디어든 SNS든 내 주변이든 사과를 할만한 사람에게 완성도 높은 사과를 받는 일을 기대하는 건 나의 정신건강에 있어 썩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사과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과'는 대체 어떤 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진정한'이라는 수식어에 부끄럽지 않은 사과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칭찬과 사과가 사실은 같은 기전(?)으로 일어난다 생각한다. 좋은 칭찬과 좋은 사과는 그 핵심적인 요소에 '인정행위'가 필히 포함되어야 한다. 말 뿐으로 '잘했어, 칭찬해!' '사과합니다, 송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칭찬 및 사과가 아니지는 않겠으나, 딱 그 말만 했을 때에는 칭찬이나 사과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인상이 있다. 때문에 좋은 칭찬은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은지를 밝히고, 칭찬에 포함해야 한다고 한다. 사과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어떤 행위가 잘못되었는지를 명시하고, 명시한 사항에 대한 인정과 더불어 사과의 말을 전달할 때 사과는 비로소 진정성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
그렇다면 아예 반대로 구체적인 사과의 내용을 명시하지 않은 채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면 사과를 받는 당사자 혹은 주변인들은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한창 문제가 일어난 후에 '기분이 나쁘셨다면 미안합니다'라는 말만 전달되었을 때, 이 사과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문장 그대로만 보면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된다. 응당 그러한 표현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본인이 했던 잘못에 대한 인정의 행위가 포함되지 않았거나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없는 채 '기분이 나쁘셨다면 미안합니다'라는 말로 사과를 대신한다는 건 본인이 했던 잘못에 대해서는 인정과 개선을 할 의지가 없다는 걸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는 말이 된다.
특히나 사과를 하는 자가 기존에 했던 잘못을 반복하면서 '기분이 나쁘셨다면 미안합니다'라는 사과를 반복한다면 사과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 오히려 사과를 통해 사건을 일단락하고 싶은 건가? 싶을 정도의 생각이 든다. 특히나 상대방의 죄질이 적잖이 나쁘고, 물의를 일으킨 행위가 계속적으로 반복되어왔다면 사과를 받는 입장은 아주 나쁜 해석을 할 여지도 생긴다. 가령 '기분 가라앉혀, 내가 사과했으니까'와 같이.
사과도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사과를 하는 것은 사과를 하는 자의 발신행위이고 사과를 받는 것은 수신행위로 치환할 수 있다. 발신자가 사과의 메시지를 던질 시 수신자는 수신을 하지 않는 식의 답변을 할 수 있다. 마치 더 글로리(The glory)의 이도영이 '했어, 무응답으로'라고 답변한 것과 같이 말이다.
좀 더 들어가서 사과의 메시지를 일단 받는 것과, 그 후에 사과 수신자가 상대방을 '용서'하는 행위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당신이 사과를 했으니 내가 당신의 메시지를 수신했다는 제스쳐까지는 예의상 보낼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사과 수신자가 상대방을 용서해야 할 의무까지 있는 건 아니다. 사과를 받는 행위나 용서를 하는 행위 모두 수신자의 선택사항 중에 하나일 뿐이다. 때문에 '내가 사과했는데 왜 너는 안 받아주냐'라고 하는 순간 사과 발신자의 사과행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상당히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것.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일 좋은 건! 애당초 물의를 일으킬만한 행동을 안 하는 것이다. 사과를 필요로 하는 행위를 굳이 실행해야할까 싶다. 충분히 상식적인 생각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면 사과를 할 일이 생길까? 경험을 해 보니,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거나 사고의 방향이 편향되면 사과할 일을 만들더라. 때문에 사과를 하는 사람은 자문 해 보기 바란다 : 내가 옳다는 생각에 치우쳤나? 내 생각이 편협하지는 않은가?
* 이 글은 최근 저에게 발생했던 일을 계기로 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사과를 주고받는 행위의 본질은 무엇이고 사과를 했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문화가 왜 생기는지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여 내 스스로가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어떤 지침을 얻게 되었어요. 이 소중한 경험을 나 혼자만 알고싶지 않은 마음에 글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