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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스터보살


돌이켜보면 내 인생 커리어의 대부분은 직장인이었다. 물론 어느 영리조직이든 이익을 쫓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고객의 요구를 반영하고 서비스를 개선하고 효율성을 높히는 게 당연하겠으나. '직장'이라는 조직 내부의 역학관계라는 게 있어서, 최종고객의 요구와는 별개로 바로 내 옆에 계신 '상사'라는 고객님의 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아무래도 목표가 2개 이상이 되다보면 (둘이 한 방향으로 가면 좋을텐데) 어느 목표에 집중해야 할지 선택한다는 테스크가 추가되어서리 일이 힘들어지는 것같다.


와중에 기업에서 뭘 또 새로 한다고 목표를 추가로 던져주면, 목표의 갯수가 계속 늘어난다. 1개에 집중해도 될까말까하는데 다른 문제까지 겹치면 직장생활이 힘들어질 수밖에. 그러니 회사에서 '뭔가 하겠다!!!' 깃발을 내걸면 사원들은 '어? 어어어....'하는 반응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나보다. 과학자들도 삼체문제(三體問題, three-body problem, 변수가 3개 이상 상호작용하는 문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네같은 일반인들이 3개 이상의 목표를 동시달성해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테지 암만~


사업의 삼체 문제를 풀려다 갈려나간 직장인들을 애도하며....


그렇게 치면 전업주부는 비교적 목표가 분명하다 : 'Home management' 그 안에는 육아와 가사가 포함되어 있는데, 둘의 업무반경이 그래도 겹치는 게 많아서 (별개의 목표로 두자면 두겠는데) 어느 정도는 같이 봐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목표가 분명한 데 비해서 쪼개지는 태스크는 겁나게도 많아서 일이 도무지 끝나지 않는 맹점이 있다. 심지어 하는 일이 '가치생산'보다는 '가치소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 쉽게 말하자면 '돈을 안벌어오니까' 약간 2등시민 취급하는 분위기를 견뎌야 한다는 점도 있다. (거기다가 사회랑 유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있고?!)


그래서이기도 하고, 다른 이유들도 많이 있으시겠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 만 3세 이상) 크게 되면 어떻게든 일을 시작하시는 엄마들이 있다. 내 주변에도 적지 않은 엄마들이 블로그를 운영하신다. 인스타를 보면 인플루언서가 되겠다고 그동안 모아놓은 정보를 게재하고 퍼뜨리는데 열심히이신 분들이 계신다. 나도 브런치에다가 글을 쓰고, 강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블로거, 인플루언서 분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직장이라는 공간으로부터 유리된 상황에서 쌓인 에너지를 분출할 기회를 찾으려 했음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또 이게 상황이 약간 다르다. 블로거도, 인플루언서도, 에세이스트도, 강사도 웬만해서는 대개 '프리랜서'이다. 직장인은 기업이라는 중간유통망을 통해 나의 시간과 재능을 판다고 치면, 프리랜서는 직접 영업을 뛰어 내 가치를 파는 식의 구조를 지닌다. 때문에 직장인으로서의 개인은 직원마인드에 가깝다면 프리랜서로서 개인은 좀 더 사장마인드에 근접해 있는 것같다. 그래서 코로나가 터졌을 때에도 직장인은 '와~ 코로나 덕분에 출근 안 하고 쉴 수 있네?', 프리랜서는 '헉 코로나 덕분에 일 다 끊기겠다'라고 한 거지 싶다.


어떤 사람들은 '놀면서 일도 하려고' 프리랜서를 택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게 참 난감한 것이, 내 주변에 일 방문객 1000명을 넘겨본 블로거 엄마의 삶을 가만히 보면 과히 열정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고객들과 직거래(?)를 하다보니까 일 한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은가. 사람의 인정욕구는 강려크한 것이라서 그 달콤함을 맛보게 되면 더 갈구하게 되기 마련이다.


나도 좀 그렇다. 이번에 헬로우 메이플 선도강사가 된 것과 별개로, 우리 동아리는 ◇◇시 관내 40여개 돌봄센터에 단기특강을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주 금요일까지 나를 갈아넣어 제안서를 만들고, 지금까지 (또한 나를 갈아넣어 ㅠㅠ) 교안을 제작하고 있다. 이걸 나혼자 다 하기에는 조금 벅차기에 다른 선생님들에게 일을 분배 해 드리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분배를 해도 '요청사항을 명확히하여 전달하는 것'이라는 일이 생기고, '결과물을 확인하고 피드백을 드리는 것'이라는 일이 또 생긴다. 목을 내려치면 목이 두 개로 늘어나는 괴물을 상대하는 기분! (머리가 늘어나는 괴물을 처치하는 영웅의 이야기는 심오한 메타포를 포함한 것이였어!!!!!)


그 말 하면 안된다는 거 알고 있지? 마치 볼드모트처럼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아니되....


프리랜서는 직장인에 비해 한 만큼 성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그 성과에 취해서 오는 제안마다 다 받고 받고 받으려 한다면, 늘어난 고무줄이 탄성을 아예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번아웃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줄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끊어지는지 아닌지를 시험 해 볼 수는 있다는 게 난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말도 있어서, 지금 빡세게 해두면 다음번 빡센 상황도 이겨낼 것같은 기대감에 이 빡셈을 잘 내려놓지 않으려고 하는 심리가 있는 듯하고. (아닌 분들도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다... ^^;)


그렇게 대학교 때 공부도 열심히 하고, 교내 봉사장학생(..이름이 그렇지 학교 내에서 작은 일을 받고 작을 월급을 받는 거임)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공모전도 하다가 과로로 인해 결핵이 걸렸드랬지. 참 미련하게 일을 한 거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폭주기관차마냥 에너지를 불태웠구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나의 모습을 보면 슬슬 폭주기관차가 되어가려는 낌새가 보인다. 강사직 수락, 제안서에 에너지 갈아넣기, 교안에 에너지 갈아넣기...에 이어서 창업경진대회에 사업계획서를 넣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있는데...! 이러다가 사고치고 실수하고 현타오는 건 아닐까 걱정도 괜스레 되긴 한다. (이미 아이 키즈노트 제대로 안 읽어서 물놀이 하는 날인데 물놀이옷 안 입히고 등원시킬뻔 함...) 좀 더 정신차리고,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처리할 건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내가 되어야 하지 싶다.


아 어쨌든 힙스터보살 프리랜서 모드 부스터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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