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여 잘 있거라

by 힙스터보살


한국은 지리적으로 참 쉽지 않은 위치에 있다. 위로는 중국과 러시아, 옆으로는 일본이 이웃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미국과 정치적 군사적 동맹을 맺고 있다. 지리적으로 정치적으로 월등히 복잡한 관계를 컨트롤해야 하는 나라다. 단군 할아버지를 원망할 바는 아니지만, 태어날 때부터 난이도 상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이 다소 피곤하긴 하다.


심지어 한국은 종전국가가 아니라 '휴전국가'이다. 우리는 싸움을 쉬고 있는 중이지 끝낸 게 아니다. 즉슨 얼마든지 싸움이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1945년에는 때아닌 남침을 받아봤고, 정말 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잃어본 자만이 지키는 것의 소중함을 알기에, 대한민국 국방부는 화력을 키우는데 참 많은 공을 들였다. 많은 예산이 군사비로 지출되었다. 비록 USB 하나가 100만원 대의 고가품으로 변신하는 촌극이 있었지마는, 와중에 방위산업에 대한 꾸준한 투자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K-방산이 성장 해왔다. (불곰사업 어서오고~) 한국 특유의 칼같은 납기일 준수, 품질주의가 결합한 덕분에 한국산 무기와 전차는 세계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게다가 트럼프 집권 이후에 보호무역과 군비증강 트렌드(?)에 발맞춰 한국의 방산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덩달아 K-방산 ETF 수익률도 치솟고.


더워도 잘 달리고 추워도 잘 달리고 진탕에서도 잘 달리고 울퉁불퉁해도 잘 달리는 K전차... 와우....!


좋은데. 기뻐할 일인데. 하지만 마음 한켠이 좀 무거운 건 어쩔 수 없는 것같다. 한국산 무기를 도입하는 그 어느 나라든 자국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 아닌 곳이 없으리라. 심지어 침공하는 쪽 또한 자국의 번영을 위해 내리는 결단이라는 큰 명분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가운데 어떤 나라는 군비 증강을 바탕으로 한 평화를 이룩하기도 하지만, 어떤 나라는 오히려 더 큰 전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최근 대한민국은 계엄과 정권교체 때문에 내부가 시끄러워서 상대적으로 외신이 덜 조명받은 것 같은데. 근래 들어 꽤 큰 전쟁이 두 건이나 있었다. 정치가 불안정한 나라의 내전 이런 수준이 아니라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전쟁을 일으킨 자들도 소싯적이든 현시점이든 세계적으로 한 가닥 하는 나라들이다. 전쟁은 실로 어마어마한 물자를 소요하는 이벤트이니, 일단 저질렀을 때 손해가 나서는 안될 일이다. 전쟁을 준비하며 많은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주판알을 튕겼을 것이다. 각종 여론전이 난무했을 것이다. 무수한 메시지가 오가고 부딪히는 과정을 상상하노라면 벌써 머리가 아프다.


경제? 좋다. 정치? 좋다, 다 좋다. 다 좋은데 이 하나만은 눈길이 떠나지 못하겠더라. 그것은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의 모습이었다. 그렇지, 전쟁이란 이런 거지. 분명 저 건물 중 하나는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했을 곳일텐데. 또 어떤 건물은 지인을 만니서 차 한잔을 마셨던 곳일텐데. 지금의 가자지구는 돌덩어리와 폐자재가 사람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그 자리를 메우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도망가거나 다치거나 죽었겠지. 또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비통에 잠겼겠지. 그리고 질문을 던져본다 : 이런 댓가를 치르고도 얻는 이익이 과연 이익인가?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모습


만일 이 전장에 한국의 자주포와 전차가 돌아다녔다면, 그것을 여전히 자랑스러운 K-방산이라고 부름직할까? 물론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것이다. 적어도 나는 선뜻 자랑스럽지 못할 것같다. 내가 만일 방산업체 관계자라 이 사업으로 돈을 벌어 내 처자식을 먹여살린다 하여도 말이다. 그래도 무기의 수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수출품 항목에 평화를 위한 기원이 있었으면 좋을듯 싶다. (뭐... 팔고자 하는 것과 사고자 하는 것이 불일치할 수는 있겠지만...)


과학자 김상옥 교수님이 그리 말씀하셨다. 이 우주의 대부분은 죽어있다고. 생명반응이 있다는 것이 굉장히 희소한 일이라고. 우리가 사람이라서 사람의 목숨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거니와, 이 우주에서 지극히 희소한 생명을 함부로 건드리는 건 다시 생각 해보고 또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살기 위해 동물을 잡아먹는 동물이 있지만, 최소한 동물은 배가 부르면 다른 동물을 잡아먹지 않는다. 스스로 충분히 살아나갈 수 있는 국가가 이러저러한 명분을 들어 타국을 침공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눈살이 찌뿌려진다. (말 그대로 동물만도 못한 거다.) 전쟁의 상흔으로 더 깊어진 복수의 감정은 어찌 다스릴 것이란 말인가.


팔린 무기들이여, 그대로 잘 있거라. 어디 쓰일 일 없이 쌓이는 먼지에 빛이 바라길 바란다. 이따금씩 기름칠 당하며 반짝이는 순간이 있겠지마는, 그 순간만 반짝이기를 바란다. 너의 존재로 인해 전쟁이 억제되기까지만을 바란다. 사람들의 계산에 놀아나서 세상의 빛을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너의 존재가 다른 존재를 밟고 일어서기 위함이 아니기를. 너를 다루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기를.




* 글은 매주 수요일에 발행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신데레라 요정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