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의 윤리의식

by 힙스터보살


* 이 책은 <넛지>를 읽고 남기는 독후감입니다.



<넛지>라는 책이 한때 대유행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을 도서목록에 있었다는 점, 인지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행동경제학이 주목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랬지 싶다. 나도 한창 저 책이 유행이던 당시에 읽어봐야지~ 생각만 하고 결국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전에도 썼지만... 독서모임까지 하고 있음에도 책 읽는 건 썩 좋아하지 않음 ㅎㅎㅎ)


그러한 그 책이 지난 번 추천도서로 올라왔다. 마침 책이 M리의 서재에도 있겠다, 머언 출퇴근길을 알차게 채우자는 좋은 의도로 읽기를 시작했다.


다행히 책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내용은 다소 식상했다. 어떤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이 책이 나온지는 벌써 10여 년이 되었고, 그 사이 인지심리학은 많이도 발전하였다. 책 초반부에 넛지가 마치 대단한 발견인양 다소 고조된 어조로 글을 푸는 구간이 있는데. 그 때 당시에는 그럴 수 있을런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뇌과학에 대한 내용도 그렇다. 예전에는 파충류의 뇌-인간의 뇌 이런 식으로 발전을 했고 부위에 따라 역할이 나누어져 있다는 식의 접근을 했지만 이제는 뇌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든 전 부위를 쓴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책은 전자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긍정적으로 보는 한 가닥은, 이 책의 이론적 기반이 '인지심리학'에 있다는 데에 있다.



일전에도 말한 바 있듯 나는 경영학 출신의 사람이다. 덕분에 경제학을 공부했고 이성적인 인간을 가정한 학문적 기풍을 경험하며 살았다. 하지만 근래 경제학의 핫한 기류는 역시나 행동경제학이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인고 찾아보니 이게 웬 걸, 인지심리학이 그 안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렇다면 인지심리학은 무엇을 다룰까. 당연히 심리학인데, 인간이 외부를 인식하고 그에 반응하는 심리적 체계를 다룬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발견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복잡한 것은 기피하고 쉬운 것을 선호하는 경향)'라는 점에 있다.


이 말은 듣자마자 '아 그렇지~'하고 직관적으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뜻풀이가 필요하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복잡하게 고려하는 것을 쉽게 즐기지 않는 존재이다'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인간은 확보한 에너지 중에 약 20~25%의 에너지를 오로지 두뇌를 가동시키는 데 쓴다. 신체에는 두뇌 말고도 생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이 많을진대, 두뇌가 차지하는 에너지량이 압도적인 게 다소 놀라웠다.


두뇌는 인간 신체의 비효율을 초래할 수도 있는 리스크가 있다. 생각을 많이 할 수록(= 두뇌를 많이 쓸 수록) 소모하는 에너지가 총량이 너무 커진다. 생각한다는 건 꽤 위대한 기능이지마는, 섭취할 에너지가 제한적인 환경에서는 두뇌는 예산을 잡아먹는 하얀 코끼리 취급을 받음직 하다. 때문에 깊이 생각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성향은 결과적으로는 꽤 '경제적'이고,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을 발견했다는 공로로 행동경제학이 노벨상을 차지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사람에게 단순하게 생각하기를 바라는 욕구가 있는 데 반면에 세상은 복잡하다. 굉장히도 혼란의 도가니이다. (a.k.a. 세상은 요지경~~) 이 세상을 받아들여서 나에게 필요한 그 무언가를 뽑아내는 과정이, 때로는 너무 복잡하고 심지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때문에 이 지점에서 넛지가 빛을 발한다. 강압적이지 않게, 하지만 우리의 인지적 욕구가 바라는 대로 정보를 단순화시켜 그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게 한다. 여기에 덧붙여 이러한 행동설계가 공공의 선에 기여하게끔 설계되어 있다면 사회적 비용은 줄이면서 편익을 창출하는 '경제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장점에 포커스를 빡시게 맞춰 쓴 책이 <넛지>라고 보여지는 바, 책 앞부분에서 넛지를 찬양하는 듯한 어조가 등장하는 것도 일견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나는 넛지를 그 자체로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게 본다. 행동을 설계하는 사람이 그 의도가 공공의 선에 있다는 걸 어떻게 장담하는가?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악마화시키거나 계층간 반목을 시키는 행위도 얼마든지 넛지스럽게 유도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댓글부대도 넛지효과를 발휘한다. 아무리 개소리라도 일단 베댓이 되면 싫어요를 같이 받을지언정 여론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리박스쿨 같은 단체가 댓글로 여론을 만들려고 그렇게 노력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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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넛지를 기획 및 실행하는 자들의 윤리의식이다. 우리는 넛지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을 기대하지만, 그들이 기대에 부응하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특정인의 이익에 합하고자 설계된 넛지는 대중의 이익에 반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자기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적합하지 못한 행동으로 이어질 리스크에 대한 대비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깊이 관찰하는 것이다. (= 현재에 깨어있기, Awareness...)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생각을 아끼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생각을 더 하게 만든다는 게? 나무를 베지 않고도 포장을 하기 위해 비닐봉투를 개발했으나 그 비닐에 의해 자연이 또 다시 오염되는 현상이 연상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의 인지적 구두쇠 성향은 개개인마다 표출되는 정도가 다르다. 누군가는 악의가 포함된 넛지에 불만을 표할 수 있다. 그는 뭇 대중으로부터 '불편러'라고 불릴 수도 있다. (우리는 손쉽게 언어로 누군가를 규정지으려 하니까.) 하지만 정견을 갖고 있는 그대로 보자면 논란일 것이 별로 없다. 세상은 그리 돌아가고, 그런 혼란함 속에서 자신의 방향을 찾으며 앞을 밝히는 게 인간의 삶 아니던가. 그렇게 살 필요가 있고, 또한 그리 살면 된다. 지금도 깨어있어 보자, 이얍!



*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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