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학기 동안 성남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코딩강의를 하였다. 코딩융합전문가 과정을 밟고 나간 첫 정식계약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학년 과정이 될 줄은 몰랐지만! 허덕허덕 진행하다보니 어느덧 종강을 맞이하였다. 대충 존버에 성공하였다고 보면 되겠다.
첫 강의 치고는 규모가 컸고, 계약 후에 강의 시작까지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 그래서 처음이 유독 힘들었다. 짧은 시간에 교안을 만들자니 육퇴 후에 새벽 2~3시에 자는 날이 예사였다. 마이크 없이 수업하다 목소리를 잃는 줄 알았다. 그래도 6학년과 5학년 두어바퀴를 도니, 아이들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4학년 정도까지 내려오니 나름 여유롭게 수업을 준비했다. 기어코 적응해낸 내 자신을 매우 칭찬한다.
코딩수업의 묘미는 실습에 있다. 목표작품을 예시로 보여주어 흥미를 갖게 하고, 아이들이 따라할 수 있게 한다. 와중에 블럭의 기능을 아는 몇 몇 친구들은 자기가 더 만들고 싶은 기능을 확장할 수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본인이 상상한 것을 코드블럭으로 통해 현실로 구현한다. (나 역시 코딩수업을 받으며 이 점에 희열을 느꼈던 것이고 ^^!)
헌데, 모든 아이들이 이 과정에 흥미를 느끼지는 않는다. 어떤 친구는 이해가 잘 안 된다며 엎어져 있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적당히 코드를 짜고 곁다리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지금 진행하는 수업이 '게임 만들기'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어서, 남들이 만든 게임을 체험하는 메뉴가 따로 있다.) 어떤 학생은 이해에 기반을 둔 게 아니라 그저 보고 베끼기로 허덕허덕 따라오기도 한다. 이런 친구들은 어딘가 코드블럭을 잘못 짜놓아 실행하면 동작을 안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내 입장에서는 혼자서 스물 두세명의 학생을 혼자 이끌어 나가야 하기에 난이도를 높이면 수업 전체가 폭망이다. 질문이 너무 많이 쏟아지는 수업은 진도를 나갈 수 없기에, 여럿이 같이 해도 어느 정도 따라올 수 있는 난이도를 맞춰야만 한다. 해서 조금 쉽다는 느낌이 드는 강의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설계를 해도 못따라 오는 친구들이 생기는 한편, 너무 쉬워서 시시해 하는 학생 역시 생긴다.
이렇게 되면 내 입장에서는 상상의 구현이고 뭐고 일단 잘 따라오게끔 하는데 촛점을 맞춘다. 딴짓을 하는 학생에게 주의를 준다. 허덕허덕 따라오는 아이에게는 '이게 정답이야' 식으로 설명하는 때가 생긴다. 마음 같아서는 잘 따라오지 못하는 친구에게 한 단계 한 단계 씩 어떻게 접근하는지 알려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려거든 코딩 과외를 했어야겠지. 여러 명을 이끄는 수업에서는 아이들 개개별 문제에 따른 맞춤형 지도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다. (이는 학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때문에 학원에서 공부습관과 사고력을 기르겠다는 것은 기대하기 힘든 것...)
또한 같은 6학년이라도, 같은 5학년이라도 학생들의 인지발달 수준은 비슷한 듯 제각각이다. 한 번에 쭉쭉 이해하는 학생도 있지만, 이해에 시간이 필요한 학생도 있다. 성품 자체나 지금까지의 습관이 천천히 생각하는 경향의 학생도 있다. 반대로 너무 잘 이해하고 알려주기 좋아하는 학생이 너무 자기 혼자만 내 질문에 정답을 맞추면 그것도 그거대로 곤란하다. 다른 아이들이 말할 엄두를 못낸다. (물론 이는 잘 하는 학생탓을 할 수도 없다.)
수업은 어느 정도의 속도가 필요하기에 속도가 낮은 학생에게 맞춰줄 수만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시간이 필요한 친구에게 단계별 설명을 제공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들이 이 수업을 쫓아오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면 별도로 학습을 해 오거나 제 3자(학원이나 과외)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천천히 생각하는 친구도, 허덕허덕 쫓아오는 친구도 적당한 시간이 흐르면 쭉쭉 이해하는 머리로 어느 정도 바뀔테지만, '지금 이 순간'이 그들의 역량을 보여주기에 최적의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
모르긴 몰라도 초등학교 때 시험을 없앤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부모님이 꽤 있을 것이다. 나조차도 시험이 없어진 것에 대해 갸웃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보면, 초등학교 시기는 아이들마다 발달분야나 속도가 제각각이라 일괄적인 시험으로 줄세우기를 하는 게 이익이 크게 안 된다는 판단이 앞섰을 거라고 이해됐다. 아이들 개별 차원에서 스스로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한 미니 테스트 정도는 유효한 것같은데, 등수를 가리는 시험의 의의가 크지 않을 것같다. 더하여 경쟁보다는 협동을 이루는 교육이 목표라면 굳이 초등학생 때 시험에 휘말리게 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싶고.
비록 강사이지만, 이 나라의 교육현장에 몸담고 있는 자로서 현실적인 고민에 휩싸이곤 한다. 반 단위로 진행하는 수업이나 시험은 어느 정도의 '수월성'을 놓칠 수 없다. 수월성을 위해 다 품고 가지 못하는 친구들은 안타깝지만, 학교생활 인생의 축소판이라 했을 때 좌절해도 일어서는 경험을 하는 시험장으로 치고 너무 쓰지 않은 실패를 겪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성장은 실패를 극복하는 경험으로부터 나오게 마련이니까. 문제는 그 시련을 극복하려는 개인의 동기와 주변의 격려겠지만.
하여 돌고돌아 내가 가장 신경쓰게 되는 것이 동기부여이다. 늬들이 내 말에 집중하면 게임을 만들어 놀 수 있어~ 늬들이 사전설명을 잘 들어야 코드블럭을 잘 짤 수 있어~를 명시적으로든 넛지스럽게든 계속 전달한다. 와중에 아이들과 사소하게라도 소통할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무서워서 따르는 게 아니라 좋아해서 따르는 거니까. 때문에 학생과의 소통의 순간순간을 좋은 기억으로 남겨서 충분한 라포를 쌓으면 수업이 더욱 수월해진다. (그러다 보면 어떤 날은 학생에게 간식도 받고 팬아트도 받는다!)
물론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힘든 수업이 있다. 그것은 초등학교 1-2학년 수업. 아직은 집중하는 시간이 짧고 사회적 동물로서 쌓은 레벨이 낮아서 함께하는 활동이 쪼금 어려운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특출나게 교사의 지도를 따르지 않는 제멋대로인 친구들이 있다. 그 아이의 기질인 탓도 있고, 부모님께서 기본적인 훈육을 수행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요즘 훈육이 아이에게 맞추는 게 대세가 된 탓에 (더하여 아이를 지도하는 측면은 살짝 소홀히 한 탓에) 저학년 친구들의 전반적인 산만함이 이전 세대보다 올라간 건 덤이고 말이다.
그래도 1-2학년들은 참으로 유연한 시기라 개선의 가능성도 높다. 해서, 책임을 다하는 교사와 부모가 꾸준히 이끈다면 어느 정도 나아질 수 있다고 본다. (적어도 그렇다고 믿고싶다.) 아이가 과잉 행동을 보이는 때마다 교정의 '기회'라 생각하고 끊임없이 길을 제시하는 공들임을, 부모에게는 기대하고 싶다.
내 첫 사회생활로서 4년 9개월 동안 학원선생으로 지내본 바, 망가지다시피 한 학생 치고 부모가 제대로 된 경우를 보지 못하였다. 고등학생 정도 자란 인간은 자기 생각도 강해져서 교정마저 쉽지 않다. 그러니 어릴 적부터 가정이라는 첫 사회에서 적절한 사회성 교육이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그게 나에게도 좋고 그 아이에게도 좋다. 기껏 뒷바라지 한 자식이 사회 나가서 누군가의 빌런이 되길 바라는 부모가 있겠는가. 아이가 본인 인생의 트로피까지는 아니지만, 자식농사의 결과를 두고 잘 산 인생/잘 못 산 인생을 운운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이유가 있기는 하다.
그러니 부모님들이여, 나름대로의 사명감을 갖고 아이가 크게 엇나가지 않게 돌봐주소서. 개입해야 할 때와 아닌 때를 구분하는 게 꽤 어렵다는 것도, 감정을 추스리고 훈육을 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은 잘 압니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저같은 강사의 도움도 기꺼히 얹겠습니다. 다같이 힘을 내서 인간을 만들어 봅시다. 아자!!!!!!!
* 글은 매주 수요일에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