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신뢰'야

by 힙스터보살


* 이번 글은 '대한민국 정치'를 소재로 합니다. 정치 얘기만 나오면 골이 아프신 분은 어서 탈출하십시오.



2024년 12월, 대한민국에 계엄령이 떨어졌다. 우스갯소리 아니고 가짜뉴스 아니고 진짜로 계엄령이 떨어졌다. 다행히도 계엄령은 국회의 반대로 6시간 만에 좌절되었다. (계엄해제를 위한 국회의 표결과정을 보면서 가슴 떨렸던 그때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계엄이 정당하였다는 주장과 더불어 계엄에 동조한 이들이 반성의 ㅂ도 보이지 않는 행태를 봐 왔다. 더하여 계엄에 뜻을 같이 한 당을 여전히 지지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 모든 행태를 보면서 이게 맞나 싶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모아 말을 내뱉었다 : "물건이 별로면 거래를 관두는 게 기본인데, 저 지경이 됐는데도 지지를 하는 자들은 사고(思考)의 기본이 안되어 있는 거 아닌가?" 내 말에 어떻게 정치가 상품과 같냐며 비판을 들이대는 자가 있었다. 그런데 정치와 상품이 그렇게 다를 게 뭐지? 우리가 모두 정치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대리인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인데.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외주 맡겨서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지? 내가 낸 세금과 보낸 지지가 그들의 월급에 일조하는 것이 자명한데, 이게 거래가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가 합이 잘 맞는 이유 중에 하나가 대안을 평가하고 선택하는 개인 및 국민의 시스템 형태가 같기 때문이지 않던가?


감히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앞에 계엄을 들이밀어?


거래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만약 그중 필수적인 '전제조건'을 꼽는다면, 그것은 단연 '신뢰'일 것이다. 신뢰는 기대가 실현되는 순간 생기는 결과임을 감안하면, 소비자나 유권자가 대상에게 갖는 신뢰의 형태는 그들이 갖는 기대부터 살펴봐야 한다. 소비자는 내가 구매하는 재화가 합당한 품질을 갖는 것을 기대한다. 유권자는 특정 정당의 정책이 공익에 이바지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돈 주고 산 물건의 품질이 쓰레기라면? 투표를 해서 집권을 시켜놨더니 나라를 말아먹을 것 같다면? 전자라면 거래를 끊을 것이고, 후자라면 지지의 철회부터 적극적인 퇴진지지까지 이어질 일이다.


국민의 힘이든 더불어 민주당이든 가릴 것 없이, 그들 중 누군가가 욕을 먹는다면 그들이 '신뢰'를 저버리는 짓을 했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이가 취임하면서 정부 요직에 검찰출신을 배치했다? 물론 이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위협하는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꽃아 넣은 인사들이 국가경쟁력을 키우는데 공로가 있다면 그들을 욕하겠는가? 관직에 오르려 금거북이를 영부인에게 전해줬다는 의혹에 관한 기사를 보고 조선시대인 줄 알았다. 초등학교 입학시기를 5세로 낮출까 간을 보질 않나, 코로나 끝나고 이태원에 사람들 우루루 쏟아져 나올 것도 예상하지 못하고 압사사건이 일어나질 않나. 거기다가 막타로 계엄을 선포해놓고서 뻔뻔한 변명을?


이재명이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민주당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배치되는 일이 있었다. 이 역시 삼권분립의 원칙이 위협되는 요인이 된다는 점은 같다. 그런데 적어도 이재명이가 보여주는 스탠스와 정책의 방향이 꽤 긍정적으로 보이는 점이 많다. 민간인들과 함께 대담을 하면서 어떤 부분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는 게 좋은지 이야기 나누는 내용이 좋았다. 최근에는 국무회의를 공개로 중계하던데, 이로 인해 공무원들은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하게 되고 국민들은 나랏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해 준 것도 괜찮아 보인다. (쑈라고 비난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쑈라도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다만 통화량 정책은 납득이 안 간다. 원화의 유통량이 많아져서 올라간 환율을 해외투자하는 개미들에게 돌려?


그렇다면 이번에는 눈을 돌려 서울시를 보자. 오랜만에 오세훈이가 뜨겁게 여론을 탔다. 종묘지구 일대를 개발하는 사안에 대하여 밀어붙이겠다는 서울시, 유네스코에 등재된 종묘와 그 일대를 보존해야 한다는 국가유산청. 두둘 다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주장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뭐다? '신뢰'다. 서울시가 종묘 근방을 개발하겠다는 것에 대하여 유네스코 자문기관이 보낸 공문을 받고 보낸다는 회신 내용이, '영어 원문이라 의미를 파악할 수 없어 대응방안을 마련할 수 없다'더라. 요즘 공무원은 시험 볼 때 영어성적 말고도 뻔뻔할 수 있는 능력도 점수에 넣나 보다.




간만에 정치얘기를 하다 보니, 소위 '애국보수'를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의식되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여러 가지로 이전 세대보다 살기 어려워지고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그들은 본인들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당에 지지를 보내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들의 이해관계가 보수당의 정책과 합(合)하는가 자문해 보면? 썩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윤어게인을 외치며 시내 몇 바퀴 도는 영상을 올리면 도네를 쏴주시는 분들이 적지 않아서 그런 건가?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자가 정면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들이받았는데도 지지를 한다는 그들의 사랑은 '신뢰'에서 거리가 멀다는 것만큼은 잘 알겠다.


와중에 김정훈의 지식한방에서 들은 이야기가 그들의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만들어 주었다 : 앞으로 인구구조상 젊은층은 줄어들고 노년층이 투표권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젊은층보다 노년층이 자산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정책은 자산가들 위주의 정책이 될 여지가 크다. 이 말을 들으니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들은 비록 본인의 이해관계에서는 다소 벗어날지라도, 다수의 편이 되는 게 낫다는 본능적인 판단을 하고 있구나. 노예가 되더라도 대감님 댁 노예가 좋다는 말이 떠오른다. 생존을 위해 있는 자들과 함께하겠다는 청년들의 선택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


심지어 영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유네스코 권고사항을 무시한 그들 조차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신뢰를 싹 다 깎아먹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신뢰를 팔아먹어도 남는 장사라고 계산이 섰으니까 개발을 하는 건가? 하~ 아깝네. 케데헌에 종묘가 나왔더라면 종묘의 가치가 대중에게 더 어필되어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꽤 줄어들었을 텐데. 종묘가 운이 좋았다. 적어도 당분간 남한산성 쯤은 안 건드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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