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바라보기

by 힙스터보살


나는 추위를 싫어한다. 살을 에일듯한 칼바람을 맞고 서 있노라면, 고난과 시련을 왜 하필 겨울에 비유했는지 200% 알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그 '겨울'이다. 추위와 고통에 시달리는 겨울이 되어야만이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온기를 나는 사랑한다.


삭막한 듯한 길가에 피어오르는 하얀 김, 평소에는 잘 찾아먹지 않는 찐빵과 만두가 겨울에는 유독 맛있어보인다. 따끈한 오뎅탕 국물을 한 숟가락 들이키면, 목을 타고 찌르르 흘러가는 국물의 온기에 온몸의 긴장이 풀린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 그늘을 찾아다니던 나는,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양지바른 곳에 서 있는 행복함을 느낀다. 폐부까지 시리게 만드는 겨울공기를 한참 마신 다음 실내로 들어갔을 때 나를 감싸안는 따뜻한 공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 생각난 김에 따뜻한 물 한 잔 마셔야지.



예전에 슈카월드에서 재밌는 통계를 하나 접했다. 17개 국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이 인생에서 무엇을 값어치 있게 생각하는가?' (What do people value in life?) 서구권을 중심으로 한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가장 가치있는 것을 '가족'으로 꼽았다. (14개국) 여기서 눈에 띄는 국가는 바로 한국이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가장 값어치 있게 하는 가치가 무엇이냐? 다들 예상하셨을런지 모르지만 1위는 '돈(Material well being)'이었다. 이는 17개국 중에 유일한 나라라고. 혹자는 이를 두고 한국은 물질 만능주의에 찌들어 있는 나라라 비판하기도 한다. 나도 그 의견에 특별히 반대하지는 않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면 이런 면도 보인다. 가족이 인생을 값어치있게 만들어준다는 서양인들 치고 그들의 가족원들이 살아가는 모습 자체를 보면, 가족 이전에 각자의 삶이 존중받는다는 인상이 강하다. 자녀의 방문을 쳐들어오듯 열어재끼는 서양의 부모를 상상하는 건 다소 어렵다. 본인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홀랑 데려온 후에 'Mom, I'll marry her~'하고 통보하는 건 꽤 자연스럽다고 한다. 반면에 한국은 부모와 자식이 지나치게 결합되어 있다는 인상이 있다. 아이의 삶이 마치 내 삶인 것처럼 사는 부모가 적지 않고, 사랑하는 이가 있어도 부모님이 반대하여 갈등을 이루는 게 드라마의 한장면으로 심심찮게 나온다. 그렇게 보면 서양인들이 추구하는 가족이라는 가치는 개인의 독립성 존중이 채우지 못한 여집합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경우에는 근대를 거치면서 조선 말기에는 백성들이 관아의 향리들에게 수탈당하고, 나가서는 나라가 왜놈들에게 수탈당하며 탈탈 털리는 경험을 해봤다. 그 시발점도 왜란을 겪고 신분제가 흔들리면서 세금이 덜 걷히니 국가재정은 악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라에서 경제적 처우를 향리들에게 해주지 못하니 '나부터 살자'는 마음으로 아랫것들 재물을 수탈하기 시작하고. 나라는 행정의 효율이 떨어지니 마땅히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와중에 열강의 침입으로 이제는 왜놈들이 조선에 빨대를 꼽고. 극동아시아를 제외한 곳에서는 저 통계의 14개국에 해당하는 나라 위주로 식민지에 빨대를 꼽았더랬지. 이런 경험을 해봤다면 물질적인 안정을 중요한 가치로 여겨도 딱히 이상하지는 않은 것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돈만을 추구하는 것은 뭔가 아니다 싶다. 하지만, 돈이 무슨 더러운 것인 것마냥 취급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 돈이 있어야 내 가족과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유흥거리도 즐길 수 있지 않던가. 돈을 모아서 내가 살 공간을 마련했을 때의 행복을 누려봤어야 말이지. 근대사에서 유일무이하게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전환해 본 대한민국이라면 너무도 잘 알 것이다. 돈이 없을 때의 고통을 견디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그 고통을 없앤 과정이 너무도 큰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각 나라마다 '가족'이나 '돈'이 최고의 가치로 꼽아진 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나는 이 통계에 대한 해석을 특정 가치가 더 우월하다는 데에 두고싶지 않아져버렸다. 오히려 해당 자료는 그 사회가 경험한 결핍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반문 해 보고 싶다.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서양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말하는 것만큼 밀접한 유대감을 부모와 자식 사이에 누리고 사는지 의문이 든다. 일찍이 독립을 하는 문화, 결혼하는 사람도 내 멋대로 데려와서 'I'll marry her~'하고 통보하면 끝인 문화, 자녀의 사생활을 굉장히 존중하는 문화를 보면 관계보다도 가족원의 존재 자체를 중요시여긴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에 한국은 태어나면서 가족과 친척, 사회적 커뮤니티가 나와 촘촘하게 엮여져 있다. 아이는 태어나면서 부모와 여러 가지 면에서 밀착되어 있다. 때문에 부모 역시 아이의 인생이 마치 내 인생인 것같이 살아간다. 친인척을 부를 때의 말은 놀랄만큼 세분화되어 있다. 결혼을 했냐/안했냐, 남자냐 여자냐, 친가쪽이나 외가쪽이냐 등등. 관계를 분류하는 단어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관계에 대한 문화가 발전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결핍은 필연적으로 불편감을 낳는다. 하지만 결핍이 만들어내는 불편감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누군가는 실패를, 누군가는 성공을 마주한다. 실패를 마주해도 다시 도전하는 자도 있고, 성공해 안주하여 발전을 멈추는 자도 있다. 결핍은 그냥 그러할 뿐이다. 누군가가 결핍을 발판삼아 자신만의 성공을 일군다면, 그 자에게는 결핍이 인생의 축복이 된다. 누군가는 결핍은 척결해야 하는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런 태도도 십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결핍이 악하다고만 바라보는 일방적인 관점이다. 결핍을 척결해야하는 대상으로 삼은 것은 결핍을 대하는 자의 관점을 반영한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배척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할 때, 배척받는 대상이 응당 배척받아 마땅한 것이냐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당위성을 가지느냐 아니냐는 건 맥락을 이해하고 방향을 점검하는 숙고가 필요가 있다. 숙고 없는 배척은 혐오로 빠지게 마련이다. 무언가를 꺼리는 마음작용이 자연스러울지라도, 세상의 다면적인 면을 적절히 고려하여 싫어하는 행위를 조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때에 따라서는 싫어하는 행위를 제한할지라도 말이다.


특히나 요즘같이 혐오도 과잉이고 기호도 과잉인 시대는, 뭐가 됐든 잠시 멈추고 현상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알게 모르게 나를 몰아가는 시류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내 중심이 어디 있는지 느끼기 좋다. (그래서 스님들이 세상에서 떨어져서 수행을 하는 건가?ㅎㅎ) 세상의 바람에 휩쓸려 중심을 놓치는 순간, 누군가가 내 혐오(또는 기호)를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내 삶을 사는 듯 보이나 조금만 까보면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산다. 내 인생을 남의 손에 쥐락펴락 하게 만드는 건 취향이 아닌데 말이지.


글을 쓰다보니 미묘하게 손끝이 차가워진다. 겨울은 겨울인가보다. 따뜻한 물 한 잔을 다시 떠와야겠다. 물 마시는 김에 비타민C도 좀 먹어야지. 따뜻하면서 시큼털털하게 생각을 되돌아보는 내가 오늘의 승자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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