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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파랑 Dec 31. 2016

부산행

<두장의 타임라인> 12월 31일, 그 마지막 글


2016년의 부산행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잠을 깨었습니다. 오늘은 2016년 마지막 날이군요. 아르바이트한다고 밤늦게 들어와 자고 있는 아들을 깨웠습니다. 친구들과 연말연시 졸업여행을 계획한 것 같습니다. <수원발 부산행> 7시 무궁화호를 예약했다고 하네요. 학원 보조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으로 일을 하다가 보니 한 달 내내 일을 해도 여행 한번 가는 경비 마련도 어렵거니와 시간도 많지 않아서 내심 갈등도 심한 것 같습니다. 한 달도 안돼서 그만둘까 말까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십 년을 한 직장에서 버틴 제 자신으로 돌아보면서, 그리고 가소로운 듯 아들을 바라보며 은근 과시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은 인간의 허접한 과시 본능일까요?


2006년의 부산행

 돌아보면 아내와 20년 같이 살면서 그 흔한 해외여행 한번 못하고 같이 살았습니다. 돈도 아깝고 국내도 볼 것이 많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10년 전 그러니까 결혼 10주년 기념해서 그 유명한 KTX 한번 타보겠다고 <부산행> 열차표를 예약했습니다.

 2006년은 KTX 여승무원들의 고용 분쟁이 있던 시절이지요. KTX 여승무원은 <한국철도유통>이란 회사에 소속되는 조건으로 채용되었는데, 이는 철도공사의 비용절감을 이유로 외주화 된 자매 회사와 위탁 계약한 것입니다. 2004년 4월 고속철도의 개통을 앞두고 KTX 여승무원들이 고용되었고, 당시 고속철도 여승무원은 선로 위의 스튜어디스라는 호칭을 받을 만큼 기대가 컸습니다. 처음 여승무원을 300명가량 선발에 13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는데, 고속철도 개통을 앞둔 상태에서 많은 여승무원들이 "2년 내 정규직 전환"이라는 약속을 받았고 이 때문에 그들의 기대감은 매우 컸겠지요. 그러나 코레일은 2년 넘게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법을 피하고자 2006년 이들에게 KTX 관광레저로 회사를 옮기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승무원들은 제안을 거부하고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해고되었습니다. 10여 년의 해고 무효 소송을 통해 1심과 2심에서 승소한 사건이 작년에는 최종 대법원 최종 패소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부당한 근로계약과 자본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5일 성탄절을 맞아 KTX 해고 승무원들과 함께하는 예배에 참여하며 이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사회적 불합리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 대권주자의 행보에 의해 어렴풋이 다시 기억을 하게 됩니다. 이재명 시장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예수도 이 땅에 왕도, 귀족도, 지주도 아닌 노동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자, 억울한 자, 소외된 자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며 "그래서 성탄절의 의미 중 하나는 <노동 존중> 일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2000년의 부산행

 부산의 또 다른 기억은 역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지요. 1988년은 지금처럼 여소야대의 국회가 대한민국 최초로 만들어지면서 야당의 강력한 요구에 제5공화국 정권의 비리를 조사하는 5 공비리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었습니다. 일해재단 비리,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조사, 언론기관 통폐합 문제 등의 진상 조사를 위해 열린 헌정 사상 최초의 국회 청문회였습니다. 당시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어 국민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지요. K스포츠-미르 재단 비리, 세월호 진상조사 등 30여 년이 지났어도 어떻게 역사는 이렇게 다시 미러링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최순실은 2016년 오늘까지도 청회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전두환은 1988년 마지막 날인 오늘 증인자격으로 출석했다는 것입니다. 전두환은 국회에 출석하여 질문에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증인 선서 없이 준비해온 발표문을 읽었고, 이에 대해 당시 국회의원들은 거세게 항의를 했었습니다.

 <5공 비리 청문회>의 최고 스타 노무현은 1991년 3당 합당에 반대하고 민주당의 이름으로 1992년 국회의원 낙마, 1995년 부산시장 낙마, 2000년 안정적인 종로구를 버린 뒤 만류하는 측근들을 나무라며 <부산행>을 택합니다. 남북정상회담 발표에 <반 김대중 정서>가 일어나면서 다시 당시의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에게 쓴 잔을 마시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무현, 두 도시의 이야기>로 접할 수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의 열풍은 재벌 후보 <정몽준>으로 옮겨가지 못하고 감성적 리더 노무현의 노란 풍선으로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바보 대통령>의 이미지와 정신은 오늘날의 노란 촛불로 다시 물결치고 있습니다.


천만 영화 부산행

 올해 천만을 넘었다는 영화 <부산행>. 석우(공유 역)는 딸 수안(김수안 역)의 생일선물로 부산에서 별거 중인 엄마를 찾으러 가는 KTX 열차에서 벌어지는 <좀비들>과의 쫓고 쫓기는 액션물입니다. 좀비 바이러스처럼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널리 퍼져버린 오늘의 이기심과 경쟁심. 몇 개 되지 않는 일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서로가 치열하게 공부하고, 누군가는 여행을 하지만 누군가는 또 재수하겠다고 기숙학원으로 짐을 챙겨서 들어가는 아이들이 있는 2016년의 겨울. 회사에서 잘리면 대기업 삼성이 아니라 삼성의 할아버지라도 10년 내 극빈자로 전락하고, 부당해고를 당해도 대권후보나 움직여야 겨우 몇 줄 보도하는 부역형 언론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식지 않은 분노가 쌓이고 쌓여 폭발한 2016년.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선장은 가장 먼저 튀어나왔고, 출렁이고 요동치는 광화문 촛불 바다에서 청와대 선실에 남아있는 대통령은 끝까지 민심에 수장 당하겠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하늘에 빛나는 304개의 별이 이제 다시 광화문의 촛불과 빛을 모아서 2017년의 희망의 태양으로 솟아오르겠지요.


부산행 세월호

 <부산행> 하고 있을 우리 아이 <무궁화호> 열차에 타고 있는 것이 아니고, 2017년에 또 다시 반성 없이 출발하는 <세월호> 선박이겠지요. 아직도 흐리고 바람이 잦아들지 않는 대한민국의 바다이지만 그렇게 마지못해 떠나야 하는 여객선을 타고 시작하는 청소년의 여행입니다. 내일의 신년의 태양이 밝으면 당당히 주민등록증 내고 편의점에서 소주를 구입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아이랍니다. '자리에 있어라' ' 영상 찍어서 보내라'  '미용사 보내라'라고 하는 미친 짓하는 소수의 좀비들만 다시금 빛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건강한 대부분의 시민들의 상식과 양심의 촛불만 지속된다면, 우리의 아이들이 아직도 타고 있는 세월호는 3000톤 아니고 3톤 선박이어도 안전하게 향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에필로그

 올해 <두장의 타임라인>이란 제목으로 회사에서 쓰는 <주간보고서>도 아니고,  <일기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칼럼>도 아닌 애매모호한 글을 지난 1년 동안 써 보았습니다. 회사 내 메일로 시작했다가 페이스북으로 옮기고 다시 브런치카페로 옮겨가며 끄적거렸습니다. 왜 글을 썼는지 생각해 봅니다.

  1) 그냥 시국이 답답해서 스트레스 풀려고.

  2) 주변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아서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3) 아들이랑 대화할 시간이 없어서 꼰대의 옛날이야기를 언젠가는 이해를 해 줄 것 같아서...


그동안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응원을 해 주신 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오늘로서 그 어설펐던 <늙은 군인의 노래>를 마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좀 더 성숙하고 성찰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고 사는 성숙한 중년의 되어야겠습니다.

 그 뜨거웠던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새해 모든 분들의 희망이 현실이 되었으면 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영화 <부산행> OST,  알로아하에.


2006년 부산행


영화 <부산행> 2016년.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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