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습득의 어려움

아이의 언어 교육

by 샨띠정

누구나 살면서 피해 가고 싶지만, 꼭 넘어야 할 높은 산을 만날 때가 있는 거 같다. 내게도 그랬다.

6개월 때부터 마더구스와 영어 동요 책과 CD를 사서 딸아이에게 들려줄 때만 해도, 앞으로 얼마나 큰 고통이 내게 닥쳐올지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영국에서 살았으니 기본적으로 아이가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 해외생활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더욱 그러했다.

거기에다 아이에 대한 기대도 컸던 거 같다. 조카들처럼 서 너 살이 되면 한글을 떼고 책을 줄줄 읽을 수 읽을 거라는 엄청난 기대가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막연히 아이들이 언어나 지식을 어른들보다도 쉽게 쉽게 흡수하고 배울 거라 생각했다.

인도 언니들과 샤이니

그래서 인도에 처음 갈 때, 당연히 샤이니는 영어, 힌디어, 한국어에 능통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나의 부푼 기대는 서서히 불안과 초조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문화원에서 인도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딸아이의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갖고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단어만 말을 하고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는 샤이니를 위해 나는 계속 완성된 문장을 들려줬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샤이니가 문장을 완성하지 못해도, 발음이 정확하지 못해도 그냥 넘어갈 때가 많았다. 아이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탓도 있고, 내가 다시 말해보라고 시키면 샤이니는 울면서 다시 말을 하려고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나를 훌륭한 선생님이라며 존경했지만, 정작 샤이니에게는 부족한 선생님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스러웠다.

샤이니의 한국어 발음은 영어도 아닌 힌디어도 아닌 세 가지 언어가 합쳐진 발음처럼 들렸다. 특히나 경음이나 격음의 발음이 되지 않았다. 한국어 문장을 완성하는 건 둘째치고 발음 자체가 부정확했다. '한국'을 '하구'라고 밖에 할 수 없었고, 결국은 '코리아 (Korea)'가 익숙한 발음이 되어 버렸다. 물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은 샤이니의 한국어 발음이 아주 많이 좋아졌다.

일, 이, 삼, 사... 하나, 둘, 셋, 넷을 가르쳐주다가 원, 투, 쓰리, 포로 바꿔서 가르쳐야만 했다. 그렇게 샤이니는 숫자를 영어로 먼저 배웠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어보다 영어로 더 쉽게 학습할 수 있었다. 영국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는 영어가 한국어보다 쉬워서, 영어를 배우고 나면 한국어로 말하기를 싫어한다'라고 하시며 아이들의 한국어 발화를 걱정하던 분들의 말씀이 떠올랐다.

샤이니도 영어가 한국어보다 조금 더 습득하기 쉬웠는지, 영어와 한국어를 같이 병행하며 거기에 힌디어까지 섞어서 한 문장 안에 3 개 국어를 사용했다.

"엄마, 빠니~."(" 엄마, 물~")

힌디어가 나왔다가, "엄마, 빠니가 cold 안 해.“("엄마, 물이 안 차가워.") 영어가 나왔다가, 한국어가 나왔다가 했다. 사실 지금도 완벽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

엄마니까 알아듣지 누가 알아듣겠나 싶었다.

어린 샤이니

어느덧, 샤이니가 학교에 가야 해서 한국어 자음과 모음을 가르치다가 일단 잠시 보류했다. 영어 알파벳을 가르치는 게 더 급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샤이니의 한국어 실력(?)은 점입가경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런 고민으로 나 혼자 끙끙 앓았고, 한국에 있던 엄마와 동생, 친구에게 전화해 펑펑 울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아이가 이러다가 원만한 의사소통을 못하면 어떡할까?‘

‘한국어로 읽고 쓰기도 못하면 어떡하지?’

나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샤이니가 MDIS에서 KG에 다닐 때는 영어와 한국어가 둘 다 미숙해서 의사소통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피난처로 화장실을 가며, 목이 아프다는 샤이니에게 스트레스를 조금은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이렇게 해 봐. 숨을 크게 세 번 쉬는 거야. 하나, 둘 , 셋! 천천히~”

“이렇게, 엄마? 흠..... 하....”

“응, 맞아~ 학교에서 힘들고 답답할 때 이렇게 해 봐. 세 번.”

“응.”

“알았지? 자, 연습해 보자.”

혹여 마음의 병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염려되어 심호흡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꼭 세 번을 하라고 했다. 그 뒤로 감사하게도 샤이니는 심호흡 연습을 하고, 한동안 그 방법을 잘 써먹었다.


다행히 샤이니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으로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해 냈다. 인도 학교에서도 샤이니가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칭찬을 하시곤 할 정도였다.

지금도 샤이니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집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한다. 나도 수업 중에 그림을 그리며 학생들에게 설명할 때가 많이 있었는데,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샤이니도 그림을 그리면 훨씬 쉽고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인 거 같다.

샤이니는 그림을 그릴 때 정확하게 포인트를 잘 잡아내서 표현하는 기술을 지니고 있다. 가끔 나도 샤이니가 그린 그림을 보며 깜짝 놀랄 때도 많이 있곤 했다.

이렇듯 아이는 자신의 욕구와 스트레스의 분출구를 찾아가며 나름대로 느리지만 천천히 계속 성장해가고 있어서, 다행히 나도 조금씩 마음을 놓게 되었다.


나의 우선 과제는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한국어를 배우던 학생에게 샤이니 과외를 부탁해보기도 했고, 학교 선생님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며 샤이니의 학교 적응을 도왔다.

그저 나는 샤이니가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지 않고, 학교에서 재미있게 친구들도 사귀고, 선생님을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기만을 기도했다. 그리고 나의 기도대로 샤이니는 비록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즐거워하며 베스트 프렌드와 마음에 드는 인도 젠틀맨 남자아이 '아유쉬'를 신경 쓸 정도로 활기찬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특히, 1, 2학년을 연속해서 담임 선생님으로 샤이니를 잘 가르쳐주시고 돌봐주신 ‘미즈 스미리 띠 맘’은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선생님이시다.

샤이니가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에 올라갈 때, 새로운 선생님과 다시 잘 적응하고 공부할 수 있을지 염려를 많이 했던 차였다. 그런데 같은 선생님께서 2학년 때도 담임이 되어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후에 알고 보니 학교에서 일부러 샤이니를 위해 같은 선생님을 2학년에 배치해주셨다고 해서 너무나 깜짝 놀랐다.

학교의 큰 행사 때마다 샤이니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애써주시고 챙겨주신 선생님들이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나는 그 해, 인도 스승의 날에,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선생님과 교감, 교장 선생님을 위한 꽃다발을 여러 개 사 한 아름 안고 학교에 갔었다.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많이 부족했지만, 샤이니는 그렇게 인도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선생님을 너무너무 사랑하며, 학교생활을 행복하게 잘 보내고, 지금은 다시 한국 학교에서 새로운 학교생활을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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