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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Mar 26. 2022

결말은 해피엔딩

시골 전원일기

백암 장날이다. 코로나가 막바지 기승을 부려도 봄맞이 장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봄과 함께 봄꽃을 사러 나온 손님들과 나처럼 장날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봄 햇살을 맞으며 하나 둘 모여드는 장날 오전이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곳이다.

유명한 백암 순대의 고장이니 백암의 자랑인 순대 식당과 갖가지 야채와 과일들, 그리고 벌써 상추와 여러 모종들도 옹기종기 모여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장날의 풍경은 보는 이들에게 정겨움을 안겨줘서 참 좋다.


닭 장수 어르신과 수탉으로 바뀐 사건의 전말

오늘은 나도 옆집 어르신이 지난번에 사다 드린 암탉이 수탉으로 잘못 가져왔다고 하셔서 어르신 댁 닭을 상자에 담아 차에 실었다.


옆집 어르신은 곧 키워서 잡아먹으려고 하니 가서 큰 암탉으로 바꿔오고 한 마리를 더 사 오라고 하셨다. 요즘 동네에 수탉이 많아서 이웃들이 시끄러워 잠을 못 주무신다는 불평이 많다고 어서 잡아먹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조차도 앞집, 뒷집, 우리 집 수탉이 같이 돌아가면서 울어대니 자다가 수탉 알람 소리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어르신은 나와 같이 장에 가시겠다고 아침부터 전화를 주셨지만, 나 혼자서 다녀오겠노라고 말씀드리고 나름 씩씩하게 홀로 길을 나섰다.


바로 닭 장수 어르신을 찾았다. 간단히 사정을 말씀드렸다. 첫 번째 사 갔던 암탉 두 마리에 수탉이 한 마리 있었다는 것과, 두 번째 사 갔을 때는 수탉과 암탉을 한 마리씩 샀는데 두 마리가 다 수탉이었다며 의기양양하게 박스에 담아 간 닭을 꺼내 보여드리며 암탉으로 바꿔달라고 말씀을 드리며.  한 마디 덧붙였다.


"왜 저한테 잘못 주셨어요? 분명히 암탉 두 마리라고 하셨고, 이것도 암탉이라고 주셨는데 수탉이잖아요."

"아니, 이건 암탉인데? 왜 이게 수탉이야? 암탉이지."

"수탉 아니에요?"

"이거 봐요. 벼슬이 작잖아. 암탉이지. 내가 닭장사를 몇 년을 했는데, 척 보면 다 알지. 그래."

"그런데, 처음에 제가 왔을 때 청계 닭 암탉 두 마리라고 주셨는데, 수탉이 있었어요."

"아유, 알 낳게 한다고 해서 유정란 먹으라고 수탉을 같이 줬지."

"아, 그러세요? 암튼, 저한테 둘 다 암탉이라고 하셨어요."

 

바꾸려고 가져 간 암탉은 더 큰 씨암탉과 바꾸고, 덩치가 큰 햇암탉 한 마리와 우리 집에 데려갈 토종 암탉 한 마리도 같이 샀다. 청계 닭은 수탉만 많이 있고, 암탉은 모두 병아리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큰 암탉들은 한 마리에 2만 원씩이라고 하셔서 계산을 하며, 살짝 말씀을 드렸다.


"지난번에 저한테 잘못 주셨으니까 좀 깎아주세요. 일부러 바꾸러 왔잖아요."

"그래요. 이천 원 빼줄게. 다음에는 바꾸러 오지 마요."

"네, 알겠어요."


옆집 어르신의 부탁과 우리 닭들에게도 줘야 할 닭 모이를 사러 이리저리 물으며 다니다가 겨우 찾아서 닭들의 양식 닭 모이까지 싣고, 암탉 세 마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암탉 두 마리를 옆집 어르신께 드리며, 참았던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 제가 우리 장군이가 닭을 네 마리 다 죽여서 닭 사다 드린 거 아니에요. 그건 아셨으면 좋겠어요."

"장군이가 풀렸잖아. 장군이가 두 마리만 죽였다고 할 수 있어?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

"저는 장군이가 두 마리를 죽였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들고양이가 들어가게 구멍이 엄청 컸잖아요. 누가 죽였는지 아무도 모르죠. 본 사람도 없고요."

"그래도 아깝게 생각하지 말어. 장군이 짓이 아니라고 어떻게 알아? 이제 오늘로 끝이니까 잊어버려."

"어머니 마음 안 좋으시니까 닭 사다 드린 거예요. 잘 키워서 맛있게 드세요. 어머니 마음이 좋으면 저도 마음이 좋으니까요."


그렇게 닭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우리 집 청계 수탉 결혼식

청계 닭은 암탉이 없어서 일단 토종닭으로 큰 암탉을 데려와서 수탉과 함께 우리 집 닭장에 넣어줬다.


수탉은 암탉이 들어가자마자 쫓아다니며 구애를 하는 모양이고, 암탉은 겁에 질려서 도망 다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잠시 후에 닭 모이를 줬더니 둘이서 다정하게 모이를 나눠 먹으며 분위기가 좋아지는 게 아닌가? 오후 내내 닭장 속의 신혼부부는 사이가 좋아 보였다.


내 입가가 올라갔다. 이제 멀지 않아 우리 집 닭장에서도 유정란이 탄생하겠구나. 저녁 식사 후에 벌써부터 우리 세 식구는 김칫국을 마시면서 암탉이 달걀을 낳으면 누가 달걀을 꺼내올지에 대해 의논을 하며 흐뭇한 상상을 했다.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두 개씩만 낳아주면 좋겠다.

유정란 꺼내 먹을 생각에 온 식구의 얼굴에 봄볕과 함께 화색이 돌았다.

신혼 부부

봄나물 냉이를 캐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봄이 오는 것도, 밭에 냉이가 올라오고 쑥이 얼굴을 내미는 것도 모르고 지냈다.

오전에 장에 다녀오고 나서, 피곤한 몸을 풀고 낮잠을 자고 나서, 꽃순이와 퍼지를 데리고 지나다 보니, 이장님 어머니께서 냉이를 다듬고 계셨다.

냉이를 좋아하는 나를 아시고는 냉이가 있는 어머니 밭을 알려주시며, 밭에 호미를 숨겨 두신 곳도 알려주시고는, 내게 바구니를 내 손에 들려주셨다. 어서 가서 냉이를 캐오라고 재촉하셨다. 정말 세상에서 정이 최고로 많으신 이장님 댁 어머니시다.


꽃순이와 퍼지를 데리고 이장님 어머님 댁 밭으로 향했다. 호미를 찾고, 강아지 두 마리는 곁에 묶어 두고는 순식간에 냉이를 한 바구니 캐서 돌아왔더니, 아랫집 어머니도 그 사이에 냉이를 한가득 캐오셔서 나와 셋이서 둘러앉아 냉이를 다듬기 시작했다.


두런두런 어머니들의 말씀이 재미있다. 구수한 대화에 그동안의 모든 시름을 다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따스한 햇살 아래서 뿌리가 길고, 향이 가득한 냉이를 실컷 캐서 어르신들과 앉아 냉이를 다듬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자니 그동안 마음에 담고 있던 무거운 마음이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대화를 나누다가 아랫집 어머니께서 물으셨다.

"장군이가 ㅇㅇ 집에 있어?"

"네.... 어떻게 아셨어요?"

"뭐든 향기는 담을 넘어서 나가는 법이여."


흠... 뭐든 다 알게 되어 있다는 뜻이고, 숨길 수 없다는 뜻이다. 에구머니... 비밀이 들통나 버렸다.


역시, 시골은 이런 맛에 산다.

잊고 있던 냉이가 찾아와 내게 봄의 향기를 전해주고 새 힘을 주는 시골 들판이 좋다.   

힘든 일은 잊어버리고, 좋은 일들만 생각하며 기억하자. 하루에도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시골 들판, 시골 동네에서 맞는 봄은 더 싱그럽다.

봄 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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