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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Nov 27. 2022

꼬리 자르기 연습

자신 챙겨주기

수많은 날들을 살아왔다. 어느샌가 나이도 중년에 다다랐다. 세수하고 나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런 중년의 시대에 도달해버린 것이다.

조금 꽤 젊었던 시절을 타국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귀국 후 다시 이어지는 관계와 얼굴들 속에서도 긴 세월이 보인다. 상대의 얼굴에 있는 그 세월의 흔적이 내 얼굴에도 고스란히 그대로 남는 걸 어찌 막을 수 있으랴.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친구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10년을 훌쩍 지나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에서도 세월을 보았다.


친구 엄마가 소천하셔서 장례식장에 갔을 때 나는 수없는 한탄의 말들을 들어야만 했다.


"옛날에 정말 예뻤는데... 세상에..."

"어머, 너 정말 예뻤었는데..."

"너 맞아? 전혀 몰라보겠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슬픈 장소에서 다시 만나야만 하는 것도 속상하고 아쉬운 그 순간. 언니와 오빠들은 이미 나이 들어 중년이 된 나를 보며 충격에 빠져 할 말을 잃으셨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가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실체와 본질까지도 말이다.

때론 역광도 아름답다. 산책길에서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스스로 묻기도 하고, 기도하며,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며, 때론 조언도 구하고, 기도를 부탁하기도 하며 한참 동안을 생각에 빠져있다가 나오곤 한다.

나 스스로 해답을 찾고 방향과 해결점을 찾은 후에야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처럼 쓰윽 일어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보이는 나의 패턴이다.


중년의 얼굴과 몸매를 마주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면의 깊은 냄새나는 쓰레기통을 드러내면서도 수치스럽지 않기로 자신에게 작지만 단호하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더 이상 필요 이상의 가짜 감정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불필요한 생각의 꼬리를 싹둑 자르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아이의 작은 한 마디를 통해 일어나지도 않을 심히 불필요한 상상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해, 결국에는 눈물을 펑펑 쏟아낼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가지고 있는 한계치를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내 힘으로 친구와 지인들을 위해 모든 괴로움을 받아주고 들어주며, 도와주고, 해결책을 줄 수 있다고 자신을 과신했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에너지가 고갈되기도 하고, 때론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후유증과 사나운 화살은 남편과 아이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되어버렸다.

내게는 포근하고 산뜻한 아내의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못하고 말았다. 아이에게는 어느새 말을 가리고, 조심하며, 혼나지 않는 궁리를 해야 하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엄마는 아이의 부족함을 느긋하게 바라보기에  충분한 에너지가 이미 고갈된 상태였다.

지치고 힘든 아내는 남편에게 도와주지 않는다며 짜증과 분노를 불태워야만 했다.


돌아보아야 할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은 뒤로 한채, 집 밖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마땅히 해야 할 나의 의무라고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같이 걷는 길

꼬리 자르기 연습을 시작했다.

감당하지 못할 관계의 꼬리도 자르고, 가짜 감정이 불러오는 일어나지 않은 미래와 일에 대한 생각의 꼬리 자르기가 필요하다.


겉으론 가면을 쓰고, 속에는 악취가 나는 쓰레기를 꺼내어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미안하게도 결국은 가까운 가족들에게 내 몸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를 억지로 맡게 만들고 말아 버렸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얼마나 후회되는 일인가?

얼마나 가슴 답답한 일이었는가?


나 자신에게 정직해지자.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미우면 밉다고.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부정적인 감정을 감추지 않고, 지혜롭고 간결하게 드러내 보자.


기쁘면 기쁘다고.

좋으면 좋다고.

솔직하게 표현하자.


너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인간이니 그저 인간  자체로 만족하며 감사하자.

스스로 신이 되려 하지 말자.


예수님처럼, 하나님처럼.

주님의 마음을 품겠다는 욕심도 이제는 내려놓으련다. 이렇듯 허망한 나의 불타는 욕구에 대해서도 꼬리를 자르는 연습을 시작한다. 나는 그저 한계치를 가진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시작이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아간다.

낙심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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