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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Dec 07. 2022

희망의 시선

함박눈과 함께 온 희망 보따리

시들시들, 내 심신이 그렇게 풀이 죽어있었다. 기운을 내려고 애를 쓰며 겨우 지나온 절인 배추 같았던 시간들이었다.

그 와중에 해야 할 일들을 하려고 부단히도 힘을 썼다.


아이를 챙겨서 학교에 보내고,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고, 빨래를 하고, 커피를 내리며, 강아지들 밥과 물도 챙겨주고, 그들의 배설물을 치우고 빗자루를 들고 쓸고 닦고, 손님들이 남기고 간 컵들을 씻으며, 샌드위치를 만들고, 곧 출간하게 될 원고도 정리했다.


그저 이렇게 하루하루를 견디어 내는 게 신기하리만큼 내 마음은 시들시들해져 풀이 죽어 있었다.


아무리 힘을 내고 기운을 차리려 해도 마음속에서 불끈 기운을 차리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불가능하리만큼 어려워 보이기만 했다.


16강 진출이 확정되던 포르투갈 전에서 손흥민과 황희찬 선수가 슈퍼볼을 만들어 골대를 흔들어 놓았던 그 순간. 그때는 남편과 손을 맞잡고 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서 그렇게 날뛰며 기운을 차리는 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브라질과의 16강전을 보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왠지 패배할 거 같아 보지 않기로 하고, 안방에서 남편의 탄식 소리로 응원을 대신했다.


"왜 하필이면 브라질이야."

애꿎은 브라질을 탓하며 탈락의 쓴맛을 느끼던 그날 아침이다. 함박눈이 내렸다.

얼마 만에 보는 함박눈인가? 보기만 해도 달콤한 솜사탕 같은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선물이다.


지난 토요일에 벌써 첫눈이 내렸다. 그 후 두 번째 내리는 흰 눈이다.

소복이 쌓인 눈

눈이 그치고, 동네 어르신들이 길거리 나오셔서 눈을 치우는 모습이 보였다. 눈 온 후의 시골 풍경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을 우선으로 눈을 치워야 했다.

눈 내리는 구경을 실컷 했으니, 우리도 장갑을 끼고 나가 눈 치우는 일에 함께 했다.

설탕 같기도 하고, 솜털 같기도 한 하얀 눈을 밟으며 길을 만드는 일도 힘들지만 큰 기쁨을 주었다.

나의 시선이 어느새 밖을 향해 빛을 보고 있다.

그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만 내면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밖으로 나오기 어려웠다.

매번 중얼거리며 앉아서도 누워서도 서서도 기도했다.


"도와주세요. 주님."

"제게 힘을 주세요."


최근 매일 이른 아침에 내게 말씀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셔서, 아침마다 말씀을 붙잡고 일어났다. 찬양을 보내주시는 분도 계셨다. 주님이 내게 사랑의 손길들을 붙여주셨다.


아이를 향한 미래를 붙잡고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남아있는 5년 동안(현재 중1) 내가 뭔가를 찾아 해결책을 주지 않으면 아이의 인생이 암흑 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

우리 부부의 나이도 있고, 아이의 형제자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떠나는 그날 아이의 인생이 끝나기라도 할 것처럼 아래로 아래로 꺼져내려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거 같아서. 어쩌면 해야 할 일들을 내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자신을 더 짓누르며 무너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하얀 눈 뭉치로 한대 쾅! 하고,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났다.

감사하게도 5년 이후의 시간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맞아, 5년 후에도, 성인이 되어도 아이는 스스로 더 성장할 수 있어. 충분히 훨씬 더 많이 배우고 성숙해질 수 있어.


평강과 미래와 희망을 주시려는 주님의 생각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난 왜 그토록 우둔하고 어리석었을까?

안다고 해서 결코 아는 게 아니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아이가 12월부터 조금이나마 부족한 부분을 통합반에서 도움을 받게 되었다.

언어 능력이 아직 해결이 되지 않는다. 아이에게 학교 생활의 스트레스를 작게나마 줄일 수 있다면야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슬퍼할 일도, 통곡할 일도 아니다.

아이가 행복하면 그만이다.


괜찮다고, 좀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좀 못해도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싶다.


그동안 내 안에 잠재된 아이를 향한 걱정이 아이에게 짜증과 분냄, 소리 지름과 슬픔의 가짜 옷을 입고 있었다.


우리 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 바라기 우리 딸인데...

이제 엄마가 힘을 내고 중심을 잡았으니, 우리 딸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생각을 이제 알잖아. 딸.

우리 손잡고 천천히 걸어 가자.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실존하는 세계.

미래를 희망으로 바라본다.

희망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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