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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보인다
나의 파란 피아노
인도에 두고 온 피아노를 생각하며
by
샨띠정
Dec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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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사랑한다. 어디든 피아노가 있으면 안심이다. 피아노를 치지 않은 채 그냥 붙박이로 둘지라도 피아노의 존재 자체만으로 마음의 위안을 준다.
2011년, 부산항에서 인도 뭄바이항으로 떠나는 컨테이너 안에도 나의 파란색 피아노가 든든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선이 인도 뭄바이에 도착해서 다시 기차에 이끌려 델리로 왔다. 델리 세관에서 우리의 이삿짐이 통과해 다시 큰 트럭에 실렸다. 그리고 우리가 거주하고 있던, 델리 사켓의 아누팜아파트에 마침내 도착했다.
한 달이 걸렸다. 짐보다 우리가 먼저 델리에 도착해서 아무것도 없었다. 신문지를 깔고 바닥에 앉아 밥을 먹고, 인도 침대를 사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LG 세탁기를 사서 빨래를 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한국에 유학하여 일찌감치 ACTS에서 공부하신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의자랑 컵과 접시를 빌려주셔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다.
한국에서 보낸 짐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반가웠다.
마침내 열 명의 짐을 나르는 일꾼들이 짐을 실은 트럭과 동시에 도착했다. 동네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단연 최고의 관심사는 우리 피아노였다.
당시만 해도 인도에서 피아노를 구경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거실에 놓인 파란색 삼익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인도에서 누리는 나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나의 파란 삼익 피아노
얼마 후, 동네 분이 나한테 질문이 있다고 했다.
"당신은 한국의 가수지요?"
"네?"
"노랫소리를
들었어요. 우리는 매번 당신의 노래를 들어요. 맞지요?"
"아니에요. 저는 가수가 아니지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요."
한국에서 피아노를 가져와서 피아노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내가 분명히 가수일 거라고 생각했단다.
지금도 돌아보면 절로 미소 짓게 하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 시절에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참 따스하고 행복한 시간을 누렸다.
8년이 넘는 세월을 짐과 함께 정리했다.
다시 돌아올 거라는 희망으로 필요한 짐들을 창고에 두고 왔다.
내가 아끼던 파란색 피아노는 델리의 벧엘
한인
교회 성가대실에 맡기기로 했다. 잠시 그곳에서 성가대가 연습할 때 사용하도록 드렸다. 다시 인도로 돌아가는 그날에 찾아오기로 하고 잠시 작별을 고했다.
가끔 그립다. 내 파란색 피아노가.
인도로
못 가게 된 후, 피아노를 교회에 드리려 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다른 집사님께서 피아노를 기증하시게 되며, 더 이상 교회에 나의 파란색 피아노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필요한 분에게 팔 생각도 있었지만, 조이 선생님이 떠올랐다. 암으로 투병하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조이 선생님께 선물로 드리고 싶었다. 너무나 기뻐하셨다.
조이 선생님은 델리에서 나와 줄곧 피아노를 치며 같이 노래를 많이 불렀던 친구다. 내 파란 피아노가 나 대신 조이 선생님의 친구가 되어 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마침 항암 치료도 잘 되고, 수술도 잘 마쳤다. 계속되는 항암치료를 감당해야 하지만 감사했다. 거기에다 사춘기 두 남매를 위해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방이 3개 있는 집으로 이사하면, 바로 피아노를 가져갈게요."
그렇게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할 때까지 기다려드리기로 했다. 피아노는 여전히 델리 벧엘교회에 성가대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아무래도 이사한 집이 좁아서 피아노를 놓을 공간이 없어요. 너무 가져오고 싶은데
못 가져올 거 같아요."
엊그제 조이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얼마나 피아노를 원하는지 알기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나의 피아노가 갈 곳이 아니었구나.'
기도하며, 피아노가 필요한 분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혼자 두고 와서 미안한데, 좋은 주인을 만나게 해줘야
할 텐데.'
역시나 인도 목사님과 결혼하신 혜정 사모님이 떠올랐다. 당장 연락을 드렸더니 너무 기뻐하셨다.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쁨의 탄성이다.
딸이 셋이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교회가 넓은 곳으로 이사하면 피아노를 교회에 두고 싶어요."
"그냥 댁에서 사용하면 좋겠어요. 교회도 좋지만요."
마침내 우리가 없는 인도땅에서 홀로 지내던 파란색 피아노가
새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내가 영국에 처음 갔을 때도 막 한국으로 귀국하시는 한 사모님께서 내게 피아노를 주셨다. 그 피아노는 처음 외롭고 고독한 영국 생활에 큰 위안이 되었던 친구였다.
다시 내가 영국 시티로드밥티스트 교회 사택으로 이사했을 때는 이미 100년 된 피아노가 그곳에 있었다. 내가 받아서 사랑을 담았던 피아노는 이웃집 시우네에 드리고 올 수 있었다.
다시 내가 영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할 때는 가까이 지내던 현경 사모님께 사택을 소개해 드렸다. 사택에 있던 100년 된 피아노는 딸 서*이가 물려받아서 치게 되었다.
그렇게 피아노가 돌고 돌아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앞으로도 나의 이 파란색 삼익 피아노는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줄 것이다.
내가 없는 인도 땅에서.
오래 전 피아노 치는 조카와 딸
어린 시절 내게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린다.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음으로 내가 누릴 수 있었던 너무나 많은 것들에 감사한다.
'안녕, 나의 피아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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