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 반려견 꽃순이가 새끼 강아지들을 낳았다. 얼마나 예쁘던지 아직도 눈에 삼삼하다.
고이고이 잘 길러서 앙증맞은 강아지들을 입양 보낼 곳을 발품을 팔아 찾아다녔다. 각각 아기 강아지들을 보냈다. 일곱 마리 아기 강아지 꼬물이들 중에 제일 똘똘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 자스민은 영월로 입양을 보냈다. 그 후로도 영월에서 내게 종종 연락을 주셨다.
"영월로 놀러 오세요."
"네, 자스민 보러 가고 싶어요."
사실 자스민이 영월로 가기 전에 일찌감치 두 번이나 입양을 보내려고 했는데, 도무지 우리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한 번은 일부러 자스민을 데리러 오신 분이 계셨다. 자스민이 앞으로 살 곳이 보고 싶기도 하고, 직접 데려다주고 싶어서 차를 타고 음성까지 함께 따라간 적이 있었다. 딸아이의 품에 안겨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던 자스민은 평소에 좋아하던 간식을 줘도 아예 먹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도착지에 내려서도 입양하실 아주머니 품 안에서 발버둥 치며, 싫다는 표현을 거세게 보였다.
아이를 기르겠다고 기대를 갖고 계시던 예비 보호자도 자스민이 강하게 거부하니 몹시 당황해하셨다.
"아유, 못 키우겠어요. 안기질 않으니 어떡해요."
움츠리고 몸을 숨기는 자스민을 두고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딸아이와 나는 다시 자스민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는 몸이 약한 막둥이 로즈와 자스민만 남게 되었다. 로즈는 우리가 책임지고 끝까지 기르자며 아예 보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여차하면 자스민도 우리가 키워야 할지도 모른다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몸이 약하고 겁이 많은 로즈와 자스민은 다정한 자매로 끈끈한 유대감을 키워갔다. 자스민은 뭐든 늦고, 잘못하여 어리숙하게 보이는 로즈를 쉼 없이 챙기고 돌보며 같이 했다. 우리는 자스민을 '천사'라고 불렀다. 얼마나 살갑고 따뜻하게 로즈를 살피는지 사람보다 더 사람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마치 로즈를 위한 천사를 이 땅에 보내주신 것만 같았다.
"자스민은 정말 천사야. 그렇지?"
"응, 마음이 너무 따뜻해."
그렇게 마지막 남은 꼬물이 두 마리가 사이좋게 자라 가던 어느 날, 내게 연락이 왔다.
"강아지 두 마리를 제가 입양하고 싶어요. 혼자는 외로울 거 같아서요. 괜찮을까요?"
"한 마리는 저희가 기르려고 해요. 자스민을 데려가세요."
그렇게 우리 집에 오셔서 자스민을 데리고 영월로 떠나셨다. 자스민은 데크에서 가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며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억지로 자동차 뒷좌석에 자스민을 앉히고, 간식을 챙겨주던 내 손도 부들부들 떨렸다.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차에서 내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스민을 달래며 차문을 닫으며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삼키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잘 가, 자스민.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해."
달리는 자동차의 뒷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얼른 집안으로 들어와 목놓아 통곡하며 울음을 쏟아냈다. 가기 싫어하던 아이를 보내는 마음이 너무 아팠고, 책임지지 못하고 떠나보내야만 하는 자신이 한스러웠다. 다시는 그토록 아픈 마음의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영월 숲 속으로 간 자스민은 먹지도 않을뿐더러 잠도 자지 않았다고 한다. 새로운 보호자 엄마가 자스민 곁에 같이 누워 밤을 지새우며 애써 달래줬다고 한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밤을 보냈을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힘들었다. 차차 자스민은 영월 생활에 익숙해가는 듯 보였다. '가비'라는 새로운 이름도 얻었다. 정성껏 사랑으로 돌봐주시며 종종 자스민의 사진도 보내주시며, 근황을 전해주셨다. 마음에 위안과 안심을 얻었다. 예쁘고 튼튼하게 자라는 자스민(가비)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보고 싶은 그리움도 쌓여갔다.
어느 여름날 8월 11일, 금요일, 너무나 갑자기 사랑하는 막내 로즈가 생을 마감하고 떠나고 말았다. 멀리 떠나버린 로즈를 보고 싶어도 이제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로즈를 살뜰히 보살피던 자스민이 생각났다. 실례가 되는 줄 알지만, 영월에 놀러 오라고 하셨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아 용기를 내어 연락을 드렸다. 마침 8.15 광복절 연휴가 겹쳐서 온 가족이 영월에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다행히도 흔쾌히 오라고 초대해 주셔서 자스민(가비)를 만나기 위한 영월행 외출을 떠났다.
멀게만 느껴졌던 영월은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아서 놀랐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라 그저 멀고 먼 곳이라고만 여겼던 곳이 충청북도 제천시 바로 옆에 붙어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마음까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굽이굽이 산을 넘어 키 큰 옥수수가 즐비한 밭과 들판을 지났다. 온통 초록빛 세상이었다. 우리 집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던 걸리적거리는 공장이나 창고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전원 숲 속의 작은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강원도가 더 좋아졌다. 푸르른 곳이 마음까지 맑게 했다. 막판에 살짝 헤매다가 움찔하던 순간 한 남성분이 다가오셨다.
"혹시 자스민 만나러 오신 분인가요?"
"안녕하세요? 맞아요."
그렇게 안내를 따라 들어선 산속의 드넓은 마당에서 자스민(가비)과 사모님이 우리를 맞이했다.
처음에는 자스민(가비)가 짖는가 싶더니 바로 다가와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챙겨간 간식을 주니 앉아서 받아먹기도 했다. 살짝 긴장한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우리의 냄새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오면 야단이에요. 누가 먹을 것을 줘도 절대로 안 먹어요. 확실히 기억하고 알아보네요."
자스민(가비)는 두 보호자를 무한 신뢰하며 잘 따르고 있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행복해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감사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곡선을 그려놓은 듯 산들이 겹겹이 서있는 전망 좋은 데크에 앉아 삶은 옥수수를 함께 먹으면서, 가비(자스민)가 그곳에서 얼마나 신나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지 힘주어 이야기를 풀어내주셨다.
"가비(자스민)는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아주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용감하고 아주 영리해요. 산짐승들과 싸워서 다 이겨요. 우리 집 마당에는 가비(자스민)때문에 아무도 못 와요. 가끔 산 닭도 잡아와요. 동네 닭은 아닌데 참 신기해요."
"용감한 사냥개가 되었고, 운동선수처럼 강한 아이로 성장했네요. 자스민(가비) 얼굴은 엄마를 닮았어요. 너무 듬직하게 잘 컸어요. 감사해요."
"가비(자스민)는 옥수수를 잘 먹어요. 고구마도 잘 먹고요. 시골에 사니까 시골 간식을 많이 먹고 있어요."
나도 옥수수 알을 떼어서 자스민(가비)에게 먹여주었다. 우리 집 반려견들은 옥수수를 못 먹던데, 자스민(가비)은 강원도에 살다 보니 옥수수도 잘 먹는 아이로 잘 적응하고 있었다. 그렇게 앉아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옛날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스민(가비)가 로즈를 얼마나 잘 돌봐주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로즈가 이 세상에 없다는 얘기도 힘겹게 꺼내어 나눴다.
"가비야, 너는 이제 가비니까.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해. 만나서 반가웠어. 고맙고."
자스민(가비)에게 작별 인사를 나눴다.
"가을에 여기 밤이 엄청 많아요. 밤 주우러 또 오세요. 와서 줍기만 하면 되니까요. 밤 떨어질 때쯤 연락드릴게요."
"정말요? 가을에 다시 와야겠네요. 감사합니다."
퇴직하시고 3년 전에 이곳에 터를 잡고 집을 지어 자연인으로 생활하시는 주인아저씨를 가비가 무척이나 따르며 좋아했다. 얼마나 보기에 좋았는지 모른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텃밭에서 수확하신 야채들을 정성껏 담아 주셨다. 한 박스 가득 트렁크에 싣고 가비에게 작별을 고했다. 아니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혹시 우리 차를 따라가면 어떡하냐고 걱정하셨던 우려와 달리 '가비'는 그곳에서 '가비'로 가슴 따스한 두 보호자와 함께 서서 우리를 바라봤다.
이제 자스민이라고 부르면 안 될 거 같다. 그저 내 마음속 깊이 자스민으로 간직한 채, 나도 가비라 부르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다. 각자의 환경과 공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살아가는 반려견들의 삶을 보는 것도 꽤 감동적인 경험이다.
마음 아플 것도 속상해할 필요도 없고, 각자의 삶을 축복하며 인정해 주기로 하자. 어찌 보면 우리 가비는 자연 속에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이런 기분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도 내 인생길에 기쁨이 된다. 때론 활력소가 되고 위로가 되기도 한다. 자스민(가비)를 통해 연결된 특별한 만남에 감사한다.
오늘도 메시지를 받았다.
"예쁜 가비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답장을 남겼다.
"예쁘게 키워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저도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