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그 아름다운 날의 추억
고요하고 거룩한 그 성탄절
온 세상이 얼어붙은 영하 19 도의 추운 날씨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온 식구가 교회로 향했다.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다 같이 드리는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나서, 2 부로 차세대 아이들과 청년들의 성탄 찬양과 워쉽 댄스를 다시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문득 오래전 어린 시절 우리의 따뜻한 성탄절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톱밥 난로가 있던 교회의 교육관에서 성탄 연습을 하며 간식으로 귤을 까먹고, 난로 위에서 모락모락 김을 내며 끓고 있던 생강차를 마시던 추억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셨던 엄마를 따라 매일 교회에 가서 성탄 율동을 연습하며, 알록달록 예쁜 옷을 맞춰 입고 무대 위에 올랐던 아이가 눈에 아른거렸다. 성탄 뮤지컬에서 천사 역을 맡아 노래를 불러야 했던 그 순간의 긴장감과 떨림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 노래를 제대로 불렀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크리스마스이브의 검보랏빛 밤은 성스럽고 환상으로 가득했다. 작디작은 불빛마저 아름다웠다.
집으로 찾아와 마당에서 불러주던 새벽송을 듣고, 준비한 성탄 선물을 전해드리려고, 졸리는 눈꺼풀을 부릅뜨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깜박 잠이 든 그 순간에 이미 따나 버린 새벽송을 놓치고 나서 억울해했던 아이.
운이 좋아서 곤히 자다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새벽에 울려 퍼지는 잔잔하고 은은한 새벽송을 들으며 준비한 선물을 부끄럽게 전해주던 아이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청소년이 되었을 때는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에 새벽송을 돌리 위해 교회에서 모여 떡국을 나눠 먹었다. 두꺼운 옷을 단단히 차려입고는 호호 거리며 어른들을 따라 종종 거리며 따라다녔다. 스스로 가슴 뿌듯해하며 성탄 캐럴을 숨죽여 조용히 부르던 그 새벽의 차갑고도 따스한 기온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그저 이런 성탄의 추억을 가슴 한편에 담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 후.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다.
코로나로 성탄절에 교회에도 갈 수 없었던 작년보다는 성탄 예배를 드릴 수 있음에 그저 감사했다.
무대에 오른 이들의 얼굴엔 마스크가 덮여 있고,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약간은 탁한 찬양 소리조차도 감사했다.
얼굴을 다 보여줄 수 없기에 눈으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말해야 했던 성탄절.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마스크에 가려진 입술에서 많은 말을 걸러내야 하는 성탄절.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밖에 부를 수 없는 성탄 노래를 부를 때조차도 마스크 때문에 더 목청을 높여야 하는 성탄절을 보냈다.
그렇게 코로나라는 험난한 산을 넘어 이제 얼굴을 드러내고 입을 벌리며 캐럴을 부를 수 있게 된 것이 꿈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