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이사를 왔다
친정 집 근처 아파트로 여고 시절 친한 친구, 금*가 이사를 왔다. 영어학원 원장인 친구는 조금 떨어진 시내로 통근을 하는데, 일중독일 정도로 바쁘게 열심히 일에 집중해서 지낸다. 내게 이런저런 인생 선배처럼 조언을 주고 안내를 해주는 언니 같은 절친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고마운 친구다.
사실 나는 이 친구가 이사를 오기 전에는 편하게 나가서 커피 마시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나의 시골 친구 재* 씨를 제외하곤 말이다.
시골 전원에서 북카페를 지키며, 정원을 돌보는 나의 일상에는 종종 나를 찾아와 내게 벗이 되어주던 재* 씨를 제외하곤 별다른 친구가 없었다.
오랜 해외생활을 마치고 기대와 설레는 마음으로 귀국해서 정착한 한국 생활은 내게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하고, 한국 물정도 몰라서 많이 헤매고 어리숙하게 생활에 적응해 가며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모두 멀리 있었고, 만날 수도 없었다. 때론 고독하고, 때론 그리움과 싸우며, 시골 전원생활을 배우고 익혀나갔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남편과 딸아이, 그리고 반려견들, 토끼들과 닭들까지 뒤섞여서 말이다. 거기에다 온갖 꽃들과 장미, 식물과 야채들을 돌보며 그들을 친구 삼아 지내곤 했다. 서로 인사 나누는 이웃들이 있어 감사했지만, 나는 친구를 그리워했다. 매일 아침 딸아이를 등교시키고는 혼자 커피를 마시며, 반려견 꽃순이와 백설이, 퍼지가 거니는 나만의 공간에서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나의 결핍을 채우곤 했으니까.
그러던 중에 남양주에서 동백까지 출퇴근을 하던 친구가 마침내 나와 30분 거리인 근거리로 이사를 왔으니 내가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주일 예배가 끝난 오후 집으로 오려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은경아~ 나 지금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고 있어. 올래?"
"응, 지금 갈게. 기다려."
지나가다가 생각나서, 커피 마시다가 떠올라서, 친정에 들렀다가 보고 싶어서, 쉬는 날이라서, 연휴라서, 시간이 나서, 이런저런 이유가 우리를 만나게 했다.
처음 스타벅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를 보았을 때, 내 마음이 얼마나 뛰었는지 모른다. 감사하고 감격했다. 이런 작은 만남이 나를 이리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나 너무 좋아. 세상에 그냥 지나가다가 너를 스타벅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니. 나는 꿈만 같아. 너무 좋다. 이사 와서 고마워."
관계 흉년 속에 있었던 걸까? 나는 왜 그리도 감사하고 감동하며, 가슴 벅찬 행복을 느꼈을까? 지나가다가 길을 걷다가 생각나서 전화하고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살다 보니 별 거 아닌 소소한 작은 일상에 행복을 느낀다. 때론 그 작은 일상을 쉽게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 버려서일까? 큰 욕심 없이 작은 우정을 나누고, 머그잔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잔잔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행복을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 앞에서 나를 맞이하는 반려견 백설이의 과격한 아침 인사도.
부스스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고 나오는 딸아이의 모습도.
들어가서 쉬라며 저녁 설거지를 담당해 주는 남편의 부드러운 말씨와 손길도.
창밖으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철마다 바뀌는 정원 풍경과 꽃들을 바라보는 것도.
파란 하늘과 나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그 순간도.
매일매일 달라지는 저녁노을 풍경을 바라보는 나, 아주 강렬한 노을이 지면 어서 사진을 찍으라고 성화하는 흥분 가득한 딸아이의 발랄함도.
꽃들과 채소들에게 물을 주고, 물호스로 반려견 꽃순이와 백설이에게 물장난을 하는 것도.
저녁 조용한 밤에 홀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순간에도.
같이 글 쓰며 서로를 격려하고 기도하는 친구와의 소통 시간에도.
무엇보다 매일 말씀을 듣고 읽으며 감동과 깨달음을 얻는 그 소중한 시간에도.
예배당에서 목소리를 높여 찬양하며, 때때로 눈시울을 적시는 뜨거운 은혜를 느낄 때도.
부모님과 통화하다가 짖꿎은 농담으로 낄낄거리며 웃는 그 모든 시간에.
나는 작은 행복을 누린다. 가라앉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축 처진 어깨에 힘을 주고, 활기와 웃음을 주는 그 소소한 모든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