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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Oct 24. 2024

인생의 봄

봄이 있는 삶

어려서는 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3월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었다. 첫 등굣길은 추웠고 떨리는 긴장감을 더 부추기에 충분했다. 차가운 꽃샘추위는 얄밉도록 추웠다. 겨울옷을 입을 수도, 그렇다고 가벼운 봄옷을 입기에도 어중간하여 내 몸은 항상 추웠던 느낌을 기억한다.


거기에다 낯선 교실과 새로운 사람들, 어색한 환경에 적응해 가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봄은 별로였다. 한 번도 좋아하는 계절을 봄이라 했던 적이 없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은 내게 주어진 너무나 큰 과업이었다. 피할 수 있다면 당장 피하고 싶었던 3월이다. 몸도 마음도 미처 해동되지 못한 봄의 시작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 되어버렸다.


그런 내가 봄을 좋아하게 된 것은 영국에서 생활했을 때이다. 음산하고 춥고 으스스한 영국의 겨울을 보내고 나서 맞이했던 영국의 봄은 희망 그 자체였다. 따사로운 햇살과 땅속에서 솟아 올라오는 울긋불긋한 크로커스와 노란 수선화들을 바라보는 순간, 겨울 동안의 모든 악몽이 스르르 사라지곤 했다.


봄이 기다리고 있기에, 길고 길었던 쓸쓸하고 차가운 짙푸른 겨울밤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봄은 희망이었다. 겨울을 이기어낼 수 있는 힘이었다.


그러다가 인도 델리로 건너갔을 때는 봄을 잃어버렸다. 인도의 계절에는 봄이 빠져있었다.

길고 긴 여름을 지나다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기온에 겨울을 알아차렸다. 어제는 에어컨을 틀던 여름이었다가, 오늘은 히터를 켜야 하는 차가운 겨울이 된다. 그러다가 다시 오늘은 추워서 히터로 몸을 녹이다가, 내일은 에어컨을 켜야 하는 여름날이 되어버린다.


그때, 인도에서 봄을 그리워했다. 아니 봄의 소중함을 더 깨달았다. 봄을 사모하며 좋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봄은 없었다. 가질 수 없는 봄의 정취를 갈구했다.

희망으로 가슴을 이끌어주던 봄을.


시골 마을에 살면서 다시 봄을 찾았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봄의 능력, almighty, 전능함을 더 숭배하게 되었다. 얼어붙은 땅을 녹이고, 죽은 것처럼 보이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싹이 나고, 꽃을 피우는 봄의 힘은 희망이었다.


죽은 듯하나 죽지 않은 겨울 세상.

모든 생명체들이 다시 살아나는 봄.

그런 봄을 기다린다.

겨우내 겨울을 견디며 봄을 기다려왔다.


봄이 있는 삶에 감사하다.

희망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열매를 위한 씨를 뿌릴 수 있어 가슴 벅차다.

흙더미 속에서 솟아오를 새싹들을 기다리며, 죽은 나뭇가지에서 싹 틔울 연둣빛 여린 싹을 어서 보고 싶다.


때론 우리 인생에도 겨울이 오겠지만,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는 봄이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내 인생에도 다시 봄이 있는 삶이 시작되고 있다. 그렇게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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