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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꿈

계속 꿈꾼다

by 샨띠정

어린 소녀의 꿈은 넘치도록 많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되고 싶은 것도 손가락으로 꼽을 수가 없을 만큼 다양했다.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그림을 정식으로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고, 더군다나 아빠는 예술 쪽으로 나가는 길을 못마땅해하셨다.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은 소망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무용도 했었고, 노래도 곧잘 했으며, 피아노도 배웠기에 음악성도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거울을 보면서 혼자 연기 연습을 몰래 하기도 했으니 뮤지컬 배우에 대한 꿈을 꽤 진지하게 품었었다.

하지만 예능은 하나의 취미나 교회에서 봉사로 달란트로 사용되는 정도로만 허락되었다.


화가 나 뮤지컬 배우는 내가 이루지 못한 채 가만히 내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


섬마을 여교사가 되고 싶기도 했다. 당시 바다와는 아주 먼 내륙 중심에 살고 있었던 내게 섬마을은 미지의 세계였다.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섬마을에 나 자신을 맡기고 그곳의 작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같이 성장하기 원했다.


나는 그 당시 심훈의 상록수에 등장하는 채영신이라는 여자 주인공의 영향을 꽤나 받았다. 농촌 계몽 운동에 앞장서며 용감하게 살았던 그녀의 삶이 어쩌면 내게 인생의 모델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심지어 나는 채 씨 성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여 딸을 얻어 채송화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했으니까.


기자도 되고 싶었다. 신문이나 뉴스에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취재하여 기록하고 전하는 그 직업은 내게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가슴은 뜨거웠지만 왠지 내 성격과는 맞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기자가 되려면 적어도 나보다도 더 똑똑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부담이 도전조차 해보지 못한 채로 쪼그라들었다. 교회 선배 오빠가 MBC 기자가 되어 텔레비전에 나오는 걸 보면서 저 정도는 되어야 기자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모든 어린 시절의 꿈은 성인이 되어 선교사라는 꿈으로 모아졌다. 오지에 있는 교육받지 못한 이들을 돕고 싶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망이 나를 이끌었다. 젊은 청년 시절, 선교사로 헌신하고 결국 선교지로 나가 해외에서 맡겨진 일을 감당하며, 세상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어찌 보면 선교 헌신과 상록수의 채영신이 내 삶을 이끌어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주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나를 이끌고 부르셨음이 분명하지만.


기자가 되고 싶었던 꿈은 내가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기사를 기고하면서 이루게 되었다.

물론 선교단체에서 편집부 기자로 회보를 기획하며 편집하는 일을 했으니, 그 또한 꿈을 이룬 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난 지금도 기자의 꿈은 내려놓지 않고, 조금씩 이루어가고 싶다.


지난여름에 출간한 '김치가 바라본 카레세상 인디아'라는 책도 어찌 보면 기자의 눈으로 바라본 다른 세상을 글로 기록한 책이기도 하다. 인도에 살면서 보고 느끼며 기록한 삶의 현장 이야기니까.


이루지 못한 꿈도 여럿 있지만, 그리 미련이 남지는 않는다. 살면서 새로운 꿈이 계속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또 다른 꿈을 꾼다.

소설가 정은경이 되는 꿈을.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나만의 어른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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