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검사실에서
나는 가운으로 갈아입고 검사를 기다렸다. 검사 전에 미리 설명서를 읽고는 사인을 마쳤다. 안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더니 중앙에 커다란 기계가 나를 맞이했다. 기계 가운데 길쭉한 곳에 올라가서 누우라는 간호사의 지시를 따라 나는 그 차가운 물체 위로 기어 들어가 누웠다. 조영제를 맞아야 한다고, 주삿바늘이 다른 바늘에 비해 두껍고 크다고 했다. 간호사가 내 혈관을 찾기 시작하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혈관이 특이해요. 혈관이 아주 깊고 잘 안 보여요."
"제가 검진받고 채혈할 때마다 사실 어려움이 많았어요. 혈관 찾기가 어렵다는 얘길 줄곧 들었거든요. 많이 애를 먹으시더라고요."
"그러실 거예요. 이 주삿바늘은 더 커서 많이 아프고, 잘해야 하거든요."
"네, 잘 부탁드려요."
"아... 엇... 으... 하아...." 간호사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내 입에서는 "앗, 악, 윽..."신음 소리가 터졌다.
"혈관이 정말 특이해서 아프시면 안 되겠어요. 이 전에 링거는 어디에 맞으셨어요?"
"사실 제가 병원에 진짜 안 왔어요. 병원에서 링거를 맞은 적도 없어요. 이런 날이 올 줄도 몰랐네요."
"제가 정말 처음 봐요. 역대급 최고예요."
간호사가 내게 역대급이라는 표현을 쓰더니 결국 다른 간호사를 불렀다. 나를 주무르고, 때리고, 혈관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라고 해서 나는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몇 번의 시도를 했지만 주삿바늘이 중간에 꺾여 버려서 모두 실패로 돌아가 버렸다. 양손과 팔, 팔목에서 찾을 수 없다고 하더니 급기야 발에서 혈관을 찾겠다고 했다. 결국 양말을 벗고 발과 종아리에 노란 고무줄을 묶고는 한참을 애쓰다가 발에서도 혈관을 찾을 수 없다고 포기를 선언하고 말았다.
혈관을 찾는 데만 30분이 흘렀다. 여기저기를 찌르는 주삿바늘은 너무나 아팠고,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가 왜 여기 누워서 복부 CT 검사를 받아야 하는 걸까? 그동안 건강하다고 자부했던 나 자신이, 그렇게 방심했던 자신이 한스러웠다. 좀 더 건강을 잘 챙기고 운동도 하면서 조심했어야 했는데, 게을렀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다. 왜 내 몸은 혈관을 찾기 어렵게 만들어졌을까? 아프면 안 된다고 하는데, 나는 어쩌면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럼 나는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그 모든 과정을 이겨낼 수 있을까? 가능하기는 할까? 두려움이 몰려왔다.
간호사 둘이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일단 병실로 가서 좀 따뜻하게 누워서 몸을 데우자고 했다. 나를 데리고 내려간 곳에는 따뜻한 침대와 이불이 준비되어 있었다. 다른 선임 간호사까지 합세해서 내 몸이 혈관을 찾기에 적합한 상태가 되도록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이미 실패로 남은 주삿바늘에 찔린 양 손등과 왼쪽 팔꿈치 안쪽에서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기도 부탁을 해야 해. 이대로 못하면 안 되니까.'
나는 아픈 손을 움직여 친정 가족 단톡방과 친구와 남편에게 급히 기도 부탁을 했다. 간호사가 오더니 내게 두 손을 어서 이불속에 넣으라고 야단을 쳤다.
"기도 부탁하려고요. 죄송해요."
누워있는 얼굴 양옆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번에도 두 명의 간호사가 양옆에서 내 양손을 하나씩 붙잡고 혈관 찾기 씨름을 시작하며 사투를 벌였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다행히도 처음부터 시도하던 간호사가 혈관 찾기에 성공을 이뤘다. 본인들도 너무 기뻐서 흥분하며 나와 함께 큰 과업을 이룬 마냥 좋아했다. 나도 덩달아 내가 마치 큰일을 성취한 것만 같았다. 날 위해 기도해 주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유나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복부 CT 검사를 마치고, 갑상선과 유방 초음파 검사를 준비했다. 어두컴컴한 방의 작은 침대 위에 누워서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울었다. 괜스레 눈물이 났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 순간 환자가 된 나 자신이 두려웠다. 만약에 내가 잘못된다면 어떡하지? 갑자기 딸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차피 천국에 가는 거니까, 조금 일찍 갈 수도 있고, 더 오래 머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마음은 그렇지만, 막상 딸아이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친정 아빠의 바로 위 누나, 옥순이 고모를 떠나보내 드렸다. 이별의 슬픔과 아쉬움이 몰려왔다. 이제 아버지와 그 아래 순임이 고모, 그리고 막내 삼촌만이 남으셨다. 위로 큰 아버지와 고모들은 이제 모두 생을 마감하고 이 땅에 계시지 않고 흙으로 돌아가셨다. 그냥 이별도 슬픈데, 영영 볼 수 없는 이별은 얼마나 더 큰 아픔과 고통을 주는지 우리는 안다.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서서히 떠나가시는 걸 보며, 언젠가 우리 부모님과 이별해야 하는 그날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날이기에. 난 죽음을 초월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내가 없는 세상에 딸아이를 남겨 둔다는 생각은 아찔하기만 하다. 아이에게 입힐 크나큰 상처와 그걸 바라봐야 하는 나 자신을 감당하는 것은 마치 커다란 바위 아래에 깔리는 고통보다도 더 큰 통증으로 다가온다.
불빛이 없는 어두운 방에서 진중하게 내 몸을 끈적끈적한 약물로 칠하고는 초음파로 검사하는 의사 선생님 곁에서 나는 죽음을 생각했다. 그리고 울었다. 물론 의사 선생님은 캄캄한 방에서 내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지도 못하고, 울고 있는 나를 눈치채지도 못하셨으리라. 혹시라도 알았더라고 그런 사람을 한두 사람 보셨을까? 그 작은 침대에 누워 어두컴컴하고 으슥한 그곳에서 온갖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혀 눈물짓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겠는가?
오늘 나는 두려움과 마주하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제 방심하지 말자고. 조금 더 신경 써서 몸을 잘 관리하자고. 적어도 딸아이가 건장한 성인이 되어 홀로 설 수 있는 그날까지는 건강하게 잘 버텨내자고. 나 자신과 약속했다. 나는 딸아이와도 그 약속을 꼭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