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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Oct 08. 2021

내 친구 경진이를 그리워하며

경진이에게 바치는 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8반 중에 2학년 4반, 67명 중에 내 뒤에 앉아 쉬지 않고 공부만 하던 아이가 있었다.

나는 말썽을 피우지 않는 모범생이었고,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지만, 공부에 목숨을 걸지 않았었다. 그런 내게 경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특별해 보였다. 조용하면서도 속이 깊어 보이던 경진이와 나의 공통점은 큰 딸이라는 거 말고는 딱히 없었지만(그 당시 수학을 좋아했던 나는 수학을 정말 잘하는 경진이를 우러러봤을지도 모른다.)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


내 뒤에 앉은 경진이와 같이 도시락을 먹으려고 나는 점심시간마다 뒤로 돌아 앉아 함께 도시락 뚜껑을 열어 반찬을 나눠 먹었다. 매번 도시락을 먹기 전에 기도하던 나를 보며 교회에 다니지 않던 경진이도 나와 함께 기도를 할 때도 있었고, 나는 경진이를 전도하기 위해 꽤나 애를 쓰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회에 다니자'라고 졸라댔다. 하지만 경진이는 공부에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친구끼리 딱 붙어 다니는 성격이 아니었던 경진이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같이 다니던 친구는 아니었다. 경진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꽤 독립적인 편이었다.

자전거가 있는 풍경

그렇게 세월이 흘러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다시 만났다. 여전히 경진이는 여중 시절과 마찬가지로 1등 자리를 놓고 앞을 향해 달음박질을 힘껏 하고 있었다. 그래도 우린 변함없이 서로에게 좋은 친구였다.

여고 2학년에 올라가면서 나도 경진이도 이과를 선택했었다.  얼마 후, 나는 진로를 고민하다가 문과로 전향을 했고, 경진이와 나는 서로 다른 길을 찾아 인생의 방향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깊어진 우정은 서로를 붙들어 주었다. 힘든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을 알리는 멜로디 '엘리제를 위하여'가 울려 퍼질 때는 꽃 편지지나 하얀 메모지에 쪽지 편지를 써서 경진이 교실로 가서 경진이가 없는 틈에 쪽지를 책 속에 넣어두고 오면, 다음 쉬는 시간에 답장이 오곤 했다.

'백골이 진토가 될 때까지 변하지 말자.'

나는 이 쪽지 편지를 꽤 오랫동안 간직했었다.

쉬어가는 여행길

세월이 흐른 후, 경진이는 결혼을 하지 않고 한의사로서 열심히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교회에 같이 가자고 졸라댔어도 여전히 교회와 거리가 멀어 보이던 경진이가 병원 동료를 따라갔던 동안 교회 송구영신예배에서 마음에 큰 변화를 경험하고는 마침내 내가 바라던 대로 크리스천이 되었다.

"널 내 곁에 두시고 그렇게 날 기다리셨던 주를 이제야 믿게 되었어. 고마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기적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영국으로 떠날 즈음에 경진이는 막내 여동생의 암투병을 간호하기 위해 병원을 그만두었다. 결국 여동생은 갓난아이를 두고 하늘나라로 가면서 유언으로 딸아이를 큰 이모인 경진이에게 맡겼지만, 아이는 아빠를 따라 가버렸다. 얼마나 상심이 컸던지 나도 가슴이 아파서 어떠한 말로도 위로를 건넬 수 없었다. 일상으로 속히 가능한 한 빨리 돌아가자고 서로 격려하면서 경진이는 다시 병원으로, 나는 영국으로 향했다.

무르익는 가는 가을

다시 내가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 경진이는 내게 많이 아프다고 했다. 내가 영국에 있는 동안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던 경진이는 척추암 진단을 받았다.

기도하며 경진이를 살려달라고 부르짖으며 울며 매달렸다.  기대와 소망을 놓을 수 없었다. 경진이가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으며, 있을 수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내가 인도로 떠나기 전에 경진이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갔다. 샤이니와 함께 경진이는 병원 공원 벤치에 앉아서 깔깔거리기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복수가 차올라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할 수가 없었다. 떠나기 전 우리는 다시, 마지막으로 경진이를 만나고는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나야만 했다. 종종 인도에서도 보이스톡으로 경진이와 통화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했다.

델리의 하늘

델리에서 어느 늦은 오후, 샤이니와 함께 있다가 문득 경진이의 카톡 프로필 메시지를 보았다. 나는 경진이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 같다.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도 혹여라도 경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비상상황을 대비해서 경진이 여동생 경희의 연락처를 갖고 있어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언니가 주님 품으로 갔어요. 제가 언니 프로필에 올렸어요..."

"......."


그날, 나는 아랫 배속 깊은 창자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통곡을 막을 수가 없었다.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닦을 힘조차 내게는 없었다.  나 자신을 통제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내 친구 경진이는 내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  나는 미처 작별인사도 건네지 못했다.  


돌아보면 성인이 되어 경진이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다.

'더 잘해줄 걸...'

신앙서적이 읽고 싶다고 해서 몇 번 책을 보내주곤 했지만, 그게 다였다.

'더 부지런히 만나러 갈 걸..'

'더 많이 이야기하고, 함께 기도할 걸...'


후회가 남는다.

지금 내 곁에 있다면 더 살뜰히 잘 챙겨줄 텐데...

보고 싶다.

그리운 경진이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솟구쳐 오르는 경진이를 향한 그리움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나의 학창 시절 소중한 친구가 되어줘서 너무 고마운 내 친구 경진이를 기억하며 이 글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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