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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Feb 06. 2018

영화 <12 솔저스> : “집(home)”을 지킨다는것


"야, 넌 며칠 남았냐?"


 제설 작전 중 잠시 생긴 휴식 시간. 삼삼오오 모여 담뱃불을 붙이고 첫 모금을 내뿜으면 으레 서로의 숫자를 묻고 답하는 시간이 왔다. 누구는 216일, 누구는 132일... 간신히 하루씩 가까워지는 “집에 가는 날”을, 다들 참 소상히도 외우고 다녔다. 나라고 그렇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나는 “며칠 남았냐?”는 질문에 “안 보입니다!”라고 답하도록 정해져 있었을 뿐이다. 요즘 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였달까.    

 

 늘 궁금했다. 병역 이행을 뜻하는 단어 중 가장 널리 통용되던 것은 전역과 제대였다. 전자는 ‘현역에서 예비역으로의 전환’을, 후자는 ‘현역에서 해제됨’을 칭한다. 내가 그러했듯 선임들 역시 입대 전까지는 앞의 두 단어로 병역 이행을 지칭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대 배치 후 만난 선임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집에 가는 날”이라는 표현을 고집했다. 왜 하필 “집”이었을까.     




출처= 영화 <12 솔져스> 스틸컷 사진


“크리스 햄스워스는 이번엔 전쟁의 신으로 변신, 세계의 평화를 위해 싸우는 군인으로 강렬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 MBC, <출발 비디오 여행> 중    

 

 미국은 이른바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여러 분쟁 지역에 개입해 왔다. 일례로, 사담 후세인과의 전쟁을 선포할 때 미국이 든 주효한 논거는 ‘대량살상 무기’였다. ‘대량살상 무기는 세계 평화를 해친다 -> 미국은 세계 평화를 수호한다 -> 미국은 대량살상 무기를 지닌(것으로 추정되는) 국가를 제압한다’는 식의 논증이다.      


 세계 평화를 수호한다는 미국의 명분은 이른바 ‘미국식 국뽕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선량한 세계 시민을 위협하는 악당들의 존재와, 분연히 그들과 맞서는 미군과 미 첩보원들. 우리가 있기에 시민들은 테러 걱정 없이 출근할 수 있다 믿는 그들의 표정이 결연하다. 영화 제작자 입장에선 악당을 제압하고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영웅 이야기는 실패하지 않는 투자였을 테다. 평화, 세계,조국 같은 단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출처= 영화 <12 솔져스> 스틸컷 사진


“100% sir. We are coming home. (우리는 반드시 귀환합니다)”
- 영화 <12 솔저스>     


  2011년 9월 11일. 19명의 알카에다 대원들은 민간 여객기를 납치, 미국 국방부 건물을 비롯한 주요 거점에 충돌했다. 테러 직후 미 정부는 탈레반의 주요 거점을 타격하는 특수 작전을 설계하는데, 이때 선발된 부대가 바로 미치 넬슨(크리스 햄스워스 분) 대위를 비롯한 12명의 대원들이다.    

  

 영화 <12 솔저스>는 실화다. 단 12명의 미 특수 부대원들이 황량한 사막으로 파견된 것, 이들이 상대해야 했던 탈레반 군대의 수가 50,000여 명이었던 것, (포스터에서처럼) 부대원들이 말을 타고 싸웠던 것 전부가 사실이다. 대원들은 말을 탄 채 전장을 누비며 탈레반군의 전차와 맞섰고, 기어이 승리했다. 제작을 맡은 제리 브룩하이머는 ‘미스터 블록버스터’라는 칭호에 걸맞은 감각으로 긴장감 넘치는 그날의 전투를 재현해 냈다.   

  

 그러나 <12 솔저스>에서 내 이목을 끈 건 화려한 전투 장면이 아니었다. 내가 주목한 건 바로 “Coming Home”이라는 배우들의 대사다. 제대라는 표현을 두고 끈질기게 “집에 가는 날”을 고집하던 나의 선임들처럼, 배우들은 ‘임무 완수와 귀환’을 칭할 때 고집스레 “coming home”이라 말한다. 왜 하필 “집”으로의 귀환인 걸까. 답은 간단하다. 50,000명의 적군과 맞서는 그들이 지키는 건 국가나 세계가 아닌 자신들의 “집(home)”이기 때문이다.     


출처 = MBC <출발 비디오 여행> 캡처


 물론 영어 단어 ‘home’에는 조국이라는 뜻도 있으므로 “coming home”이라는 대사를 ‘조국으로의 귀환’이라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영화는 9.11 테러 사실을 접하고 미치 넬슨과 부대원들이 가족들과 이별하는 장면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서운함, 야속함, 불안감.. 각자의 방식으로 혼란에 빠진 가족들을 뒤로한 채 그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 가지 않으면 가족들이 위험해질 거라는 예감이 그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이다. 영화에서 “our country” 따위의 표현 대신 “home”이 강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도 “집에 가는 날”을 손꼽아 세고 있을 국군 장병들 역시 마찬가지다. 집을 지키기 위해 떠난 자들이 돌아와 안길 품은 조국의 것도, 세계의 것도 아닌 가족(home)의 품일 테니까.     


 결국, 미치 넬슨 대위가 "세계 평화를 위해" 싸운다던 <출발 세계여행>의 내레이션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그들이 싸운 이유는 집과 가족들의 안녕을 위해서였다. 다만 그뿐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 ‘국기에 대한 맹세’ 전문 (2007년 이후)


 나는 21개월간의 군 생활 중,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복무한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한국은 징병제를 채택한 나라였고, 나는 태어나보니 신체 건강한 남성이었을 뿐이다. “군대 끌려왔냐?”는 조교와 간부들의 질책에는 “끌려왔지 그럼”이라 답하고 싶었다. 한쪽에선 애국심도 없는 몰상식한 놈이라고 비난할 테지만 어쩔 수 없다. 조국이니 평화니 하는 단어들은 너무 거대했고, 거대한 것은 결국 관념이어서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간부들이 나태해진 병사들에게 “집에서 가족들이 편히 잘 수 있겠냐”며 훈계할 때는 찬물을 얻어맞은 듯 정신이 또렷해졌다. 풀린 허벅지가 다시 움직였고 우 경계총을 한 팔에 힘이 들어찼다. 집을 지키는데 필요하다면 뭐든 거뜬해졌다. 전역일을 세는 건 허망했지만 “집에 가는 날(coming home)”을 기다리는 건 늘 설렜다.  매캐한 담배 연기를 뿜으며 "집에 가는 날"을 세던 선임들도 그러했을리라.    


“100% sir. we are coming home (우린 반드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 영화 <12 솔저스> 중     


 내게 ‘home’은 언제나 집과 가족이었지, “자유롭고 정의로운” 조국이 아니었다. 50,000명의 적군과 마주한 미치 넬슨 대위와 부대원들에게도 그랬을 것이라 헤아려 보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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