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팩트 하나. 21세기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이 점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으리라 믿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에서 거의 모든 가치는 창출해 낼 수 있는 부의 양에 비례해 매겨집니다. 우린 그걸 ‘실용성’이라고 부르죠. 실용(實用)적이지 않으면 무용(無用)하다. 슬프게도 이 명제 역시 얼마안가 ‘팩트’의 지위를 차지할 것임을 우리는 예감하고 있습니다.
실용성이 모든 가치 판단의 제왕으로 군림하면서 대학가에는 전에 없던 신인류가 등장합니다. ‘휴학하지 않는 대학생’이 바로 그들이죠. 이들은 입학과 동시에 취업 동아리나 공모전 모임 등에 들어가 다가올 취업 전쟁에 예비합니다. 경쟁률은 10대 1을 우습게 넘기는 게 요새 취업 동아리라지만 신인류는 끈질깁니다. 교내 동아리가 막히면 연합 동아리로, 그것도 안되면 소모임으로 둥지를 옮기며 기민하게 움직이죠.
놀랍게도 이 신인류들 중에서도 학기를 휴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휴학생(休學生)이라고 분류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토익 학원을 다니기 위해, 해외 봉사를 위해 휴학이라는 제도를 전략적으로 택했을 뿐, ‘학습을 멈춘다’는 본래의 뜻을 선택한 게 아니니까요. 모 기업의 면접에서 ‘휴학을 했던데 한 게 아무것도 없네요?’라는 지적을 받고 불합격 했다는 한 취준생의 유명한 증언을 떠올려 보면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낭비에 용기가 필요해진 시대인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건, 젊음과 힘처럼 청춘에게 풍족한 것을 낭비할 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가' 같은 평생의 질문에 좀더 가까이 다가선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미팅과 소개팅을 전전하며 사랑을 찾아 헤맬 것이요, 또 다른 누군가는 여행 출발부터 귀환까지 ‘먹부림’으로 꽉찬 무쓸모 힐링 여행을 떠날 겁니다. 취업 준비에 밤낮없이 매진하는 당신이 시대의 자화상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에 가진 바를 아낌없이 투자하고 낭비하는 당신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입니다.
그러니 한번쯤 낭비합시다. 너무 쓸모없어서 이력서에도 넣을 수 없지만, 당신 자신에게만은 중요한 뭔가에 말입니다. 예쁘기만 할 뿐 쓸데라곤 없는 한송이 장미를 사는데 당신이 가진 젊음을 아낌없이 탕진하십시오. 시인 로버트 헤릭의 경고처럼 “while ye may(할 수 있을 때)” 말이죠.
- 2019년 5월 17일 코리아텍 신문 기고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