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집

일상을 다져요, 언젠가 무너질 테니

달리기의 이유

by 시언
픽사베이

비유는 유용한 동시에 위험하다. 적확한 비유는 마치 세계관처럼 나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관통하는 비유와 맞닥뜨렸을 때, 거기서 빠져나오기란 개명한 이름을 주변에 각인시키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다 잊었다고 생각해도 누군가는 자꾸만 호명하는 옛 이름처럼.


나를 지배하는 비유 중 하나는 “인생이란 확률의 화살비 사이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언급했던 비유로 기억한다. 이 비유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몇 년 전 자전거에 탄 채 차에 받혀 나뒹굴었던 날을 떠올렸다. ‘다행히’ 운전자가 조심성 있는 사람이었고, ‘다행히’ 나도 손을 브레이크에 두고 있었기에 부상은 크지 않았다. 안 좋은 버릇임을 알지만 이 ‘다행히’의 확률이 제외된 상황을 자꾸만 상상하고 만다는 점에서 나는 비관주의자였다. 허벅지를 스치는데 그쳤던 그날의 화살이 ‘우연히’ 다른 곳을 향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https://picjumbo.com


얼마 전 만난 동아리 후배가 건넨 첫 인사는 “형 달리기에 미쳐 산다며?” 였다. 딱히 부정할 순 없어 그저 웃었다. 지난 4년 간 족저근막염, 정강이 피로골절 등 생소한 병명들을 페이스 메이커 삼아 달렸다. 어떤 날은 통증을 무시한 채 10km를 완주한 후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 50살부터 지팡이를 짚네 잔소리를 늘어놓는 후배를 보며 나도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왜 달리는 걸까.


나의 첫 달리기는 스포츠 브랜드 광고 속 세련된 현대인의 자기 관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단 한 번의 공황이 모든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갔고, 눈 떠 있는 모든 순간 동안 그날의 고통이 재림할까 피가 나도록 손톱을 물어뜯으며 불안에 떨었다. 원룸 건물 벽 너머로 들려오는 세탁기 소리를 들으며 공황이 오는 소리는 아닐지 염려하는 불면의 밤들이 늘어갔다.


남들이 볼 땐 미친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행동을 멈추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바드득 어금니를 갈았다. 다시는 보통의 일상이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 미련 많은 나답게 마지막까지 발악하리라. 달리기가 심장 두근거림과 불안감 해소에 효과가 있다는 글을 본 순간, 나는 낡은 운동화를 신고 동네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땐 알지 못했다. 그 순간이 향후 4년 넘게 이어질 내 러닝 인생의 시작이었음을.


달리기를 시작한 지 2년, 나는 공황을 이겼다. 공황발작도, 공황이 언제 습격해 올지 모른다는 공포에 가까운 불안도 좌판을 접고 떠났다. (겁이 많아서였지만) 전문적인 치료나 약물의 도움도 받지 않았기에 기적에 가까웠다. 나를 상담했던 학교 상담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상담 마지막 세션을 마쳤다. “정말 맷집이 좋은 분인 거 같아요. 그렇게 얻어맞은 와중에도 매일 운동을 했으니.. 이제 우린 안 봐도 될 것 같아요. 행운을 빌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어린애처럼 흐느꼈다.


긴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나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역시 삶은 지난한 것이어서 내 별 것 없는 일상은 수시로 겁박 받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옥죌 때면 나는 러닝화를 찾아신고 밖으로 나갔다. 한 걸음을 내딛고 다음 걸음을 옮길 때, 내 거친 숨소리만 가득한 장엄한 적막이 편안했다. 나는 아직 내 삶을 통제하고 있구나. 달리는 한 나는 포기한 게 아니다. 달리기를 마친 후 턱밑을 맴도는 땀방울을 훔치며 나는 그리 믿었다.




나를 지배하는 비유는 여전하다. 우리는 자신을 파멸로 이끌지도 모를 확률의 화살 사이를 위태롭게 걷고 있으며, “영 좋지 못한 곳”에 직격당하는 순간 일상은 박살날 것이라는 예감. 다소 우울해 보여도 할 수 없다. 자의로 비관주의자가 되는 인간은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달리기를 하면서 한 가지는 달라졌다. 다른 곳에서 얻어맞고 짓밟혀도 ‘달리는 나’가 맷집 좋은 버팀목이 돼줄 거라는 안도감이 그것이다. 다른 게 전부 무너져도, 아직 달리는 한 내 일상은 완전히 무너진 게 아니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때론 도망치고자, 때때론 가닿고자 나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이 글을 쓰기 앞서 지금도 공황장애와 투쟁하고 있는 작가들의 글을 읽어봤다. 평온했던 일상을 되찾기 위한 저마다의 투쟁이 눈물겨웠다. 당신들의 꿈자리가 평온하길, 각자의 달리기만은 멈추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는 인생을 달리는 러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쉽게 평가당하지 말아요 part.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