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뭐다 뭐다 이미 수식어 레드오션’
- 동방신기, < 미로틱 > 중
세상에 사랑이란 단어만큼 다양한 정의를 지닌 단어가 또 있을까. ‘사랑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부터 ‘사랑은 없다’까지. 사랑에 대한 정의와 담론들은 제각기 천차만별이다.
사랑에 관한 수많은 논쟁 중에서도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운명론’과 ‘우연론’ 간의 논쟁이다. 전자가 ‘우린 이렇게 사랑할 인연이었어.’라고 말한다면 후자는 ‘스쳐가다 잠깐 마주친 사이일 뿐’이라 주장한다. 어떤 것이 옳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애초에 ‘사랑’이란 단어의 정의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 질리 없기 때문이다.
허나 사람들은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논쟁들을 질리지도 않는다는 듯 이어가고 또 이어나간다. 그만큼, 사랑은 우리에게 중요한 무언가 인 모양이다.
오늘의 영화, <500일의 썸머>는 운명론과 우연론의 사이에서 사랑의 위치를 탐색해가는 그 지난한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썸머] “우린 친구잖아. 널 좋아하지만, 심각한 관계는 싫어.”
[톰] “내 얘기도 들어봐야 하잖아! 우리 커플 맞아! 젠장.”
같은 사무실에서 우연히 만나 첫 눈에 서로에게 매료된 썸머와 톰. 모든 연애의 시작이 그러하듯 마치 블랙홀처럼 서로를 집어삼키지만, 극과 극을 달리는 연애관은 결국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이별한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 썸머 없는 일상 안에서 톰은 조금씩 허물어져 간다. 그는 마치 썸머가 보고 있기라도 한 듯 이틀 밤을 술로 지새우고, 사장이 동석한 회사 회의에서 막말을 퍼부으며 자신을 망치기 시작한다.
몰락해가는 자가 다시 솟구치기 위해선 먼저 바닥을 쳐야 한다 했던가. 바닥 없는 절망의 무저갱 속으로 침잠해 가던 톰은 돌연,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자신의 오랜 꿈인 건축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여기서 톰이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전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건 결과적으로 썸머와의 분리 과정을 마무리 짓는 애도 의식이라 볼 수 있다.
‘다시 살아봐야겠다’라는 생각은 충분히 비통해 한 자의 가슴에만 깃드는 법. 소중했던 사랑인 만큼 누구보다 깊이 아파하고 절망한 그는 그녀와의 추억이 가득한 회사를 떠남으로써 이름처럼 뜨겁게 사랑한 그녀 썸머를 놓는다.
영화 전반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톰이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썸머와 재회하는 장면이다.
운명론의 대변자였던 톰은 썸머와의 운명적 사랑을 꿈꾸었던 둘만의 벤치에서 자신이 염세적 우연론자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헌데 썸머는 톰에게 상상도 못한 의외의 대답을 내놓는다.
그렇다. 그 누구보다 우연적 스쳐감을 강조했던 썸머는 이제 '남편과 나는 만날 운명이었다'고 말하는 전형적인 필연론자가 되어 버렸다. 바로 이 장면에서 썸머는 많은 관람객들에게 '사람 맘 가지고 노는 나쁜 년'으로 등극하고 만다. 하지만, 정말 썸머는 나쁜 년에 불과할까?
사랑은,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를 너란 이름의 '필연'으로 믿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우리도 스쳐가는 인연 중 하나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곁에 있어도 그리운 그대'와의 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것이 사랑에 빠진 이의 일관된 정서다.
톰은 썸머를 사랑했고, 썸머는 톰을 조금 덜 사랑했을 뿐이다. 그뿐이다. 쓰라리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썸머를 '나쁜 년'이라며 돌을 던질 수 있는 건 오직 톰뿐이라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적지 않은 인연들에게 우연을 들먹여 왔다. 그들에겐 나 역시 '나쁜 놈'일 것을 생각하면서, 난 썸머에게 던지려던 돌을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 바로 곳곳에 들어있는 실험적 연출기법들이다.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다 헤어졌다'는 지극히 전형적인 스토리를 보완하기 위해 감독은 온갖 재기 발랄한 연출 기법을 동원해 관람객들의 지루함을 쫓는다. 아래는 그 예로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썸머와의 첫날밤을 가진 톰의 다음날 출근길을 묘사한 부분이다.
어깨가 치솟다 못해 관자놀이에 닿기 직전인 톰의 곁으로 행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축하인사를 건네더니 나중에는 아예 떼로 모여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렇다. 인도 발리우드 산 영화의 상징, 뮤지컬 장면이다. 춤을 추다 추다 야구 방망이를 들고 홈런을 때리는 장면에서 웃지 않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연출법은 바로 동시간대 화면 분할 기법이다.
이별 후 우연히 기차에서 썸머를 마주친 톰은 그녀의 집에 열리는 옥상 파티에 초대받는다. 이별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던 톰은 파티 당일, 부푼 마음으로 썸머의 집으로 드러 선다. 여기부터 감독은 화면을 '기대'와 '현실' 두 개로 분할해 톰의 머릿속 환상과 그가 마주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덕분에 관람객은 톰이 홀대받을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눈으로는 정신없이 두 개의 화면을 비교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참신의 끝을 달리는 감독의 연출력과 진지함과 웃음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배우들의 연기에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가슴속에 '사랑'이라는 화두가 내려앉는 영화 <500일의 썸머>를 사랑이 어렵기만 한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