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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with 김영하, 카프카)

by 시언


얼마 전, ‘서울대생 도서관 책 대출 5년 새 30% 급감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비단 서울대만의 현상일까.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 지하철이나 버스를 기다리며 책을 읽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간혹 책을 읽는 이가 있다고 해도 에세이집이나 심리서적을 읽는 경우가 대다수인 반면 문학책을 읽는 사람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저런 상념을 오가던 중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왜 책을, 그것도 유달리 소설을 좋아하는 걸까.


난 초등학생 때부터 참 많은 책들을 읽어왔다. <파우스트>, <위대한 개츠비>, <백 년 동안의 고독>, <설국> 등 이해는커녕 눈알 굴리기에 급급한 독서였다. 이해도 못할 고전들을 초등학생이던 내가 붙잡고 있던 이유는 딱 하나, ‘인정받을 수 있어서였다. 고전을 읽고 있으면 어른들은 대견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또래 아이들은 질투와 선망이 반반씩 섞인 눈빛을 보내왔다. 남다른 특기 하나 없던 내가 주목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었달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사회적으로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책은 고상한 취미라는 카테고리에서 별종들의 취미카테고리로 이행되기 시작했다. 술자리에서 어제 읽은 책의 소감을 말하려면 오글거린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책이 아닌 남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 거리를 따로 개발해야 했다. 그럼에도 난 오늘도 책을, 그중에서도 소설을 꾸역꾸역 읽어 내려간다.


독서는 왜 하는가? 세상에는 많은 답이 나와 있습니다. 저 역시 여러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과의 투쟁일 겁니다.’

-By. 김영하, <읽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 모습인 자아상을 지니고 있고 이 자아상을 토대로 라는 존재를 자각한다. 문제는 이 자아상이 본인의 실제 존재와 불일치한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던 중 자신이 갖고 있던 자아상에 포착되지 않는 전혀 새로운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됐을 때,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드라마를 보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시고는 본인이 더 화들짝 놀라시는 우리 아버님들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쉬우리라.) 이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소설이다. 참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내면과 행동을 소설에서 읽고, 그중 한 등장인물이 느끼는 낯설지만 낯설지만은 않은 감정에 공감할 때, 기존의 나의 자아상은 보다 넓게 확장된다. 즉 독서를 통해 나의 실제 존재에 조금 더 가까운, 새로운 자아상을 개척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얻는 이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저녁시간 뉴스를 보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괴물들이 등장한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부모님 뻘 되는 경비원의 뺨을 때리는 사람부터 여성에게 무시당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한 이른바 묻지마 살해범까지. 여기서 질문 하나,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범죄형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잠재적 범죄자였을까? 내 대답은 NO. 그들은 다만 오만했을 뿐이다. 난 꽤 괜찮은 퍼스널리티로 구성된 주체이며 그런 나의 행위는 전적으로 옳다는 오만.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으리라. 두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옳으니까.


그들이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소설은 온갖 괴물들의 내면을 가장 안전하게 탐사하고, 그들의 내적 논리에 일부 공감하는 독자 자신을 발견하게 함으로써 나 역시 타인에게 괴물이 될 수 있겠다.’라는 자각에 이르도록 돕는다. 괴물이 되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 ‘나도 얼마든지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명제를 가슴속에 새기고 사는 것일 테니 말이다. 주변을 돌아보라. 천인공노할 범죄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지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는 옳다는 자기 확신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다.


사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수만큼이나 각양각색 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그저 폼으로 소설을 읽을 수도, 단순한 지적 호기심으로 소설을 읽을 수도 있다. 무엇하나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한 가지는,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의 자아상은 끊임없이 확장하며 존재에 가까워 진다는 점이다.


한 권의 책, 그것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하네.”

- By. 프란츠 카프카,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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