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인생이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겠지

우린 살아간다 = 소설을 쓴다

by 시언

저자 : 김연수

출판사 : 문학동네


소설가 윤대녕 선생은 소설 쓰기에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삶에는 천재가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소설도 그러하다.'


윤대녕 작가의 말에는 숨겨진 전제가 있다. '소설과 삶은 닮아있다'라는 전제가 그것이다. 그의 전제대로 소설과 삶이 닮아 있다면, 소설 쓰기를 '살아감'에 비유하는 것 역시 타당할 것이다. 소설 쓰기는 허구적 사실들을 토대로 생의 진실에 다가서는 작업이니까.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은 소설 쓰기라는 독특한 확대경을 통해 바라본 생의 특정한 지점들이다.


'첫 번째 플롯 포인트를 가리켜 '돌아갈 수 없는 다리', 혹은 '불타는 다리'라고도 부른다. 1막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은 어떤 사건을 경험하는데, 그러고 나면 다시는 예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 <소설가의 일>, 108p

소설 작품 속 모든 주인공들은 사건(사고)을 겪게 된다. 일어나 보니 커다란 벌레로 변해버렸을 수도(프란츠 카프카 <변신>)있고, 식기 건조대에서 난 덜커덕 소리(김영하 <당신의 나무>)일 수도 있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분리시키는 순간이라면 무엇이든 '사건'이 될 수 있다. 맞이하고자 해서 오는것이 아니고, 피하고자 해서 피해지는 것도 아니다. 사건은 그저 일어날 뿐이다.



내 경우에는 군대에서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를 필사했던 일이 그랬다. 군대의 경직된 조직 문화와 각종 부조리 앞에 '이곳에서 삶의 의미나 보람을 찾겠다' 같은 이등병의 소망은 번번이 바스러졌다. 모두가 잠든 새벽, 조각나 버린 버킷 리스트 위에 빨간 줄을 치면서 나는 숨죽여 흐느꼈다. 무수한 환멸과 희망함이 교차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칼의 노래>를 필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차거나 유쾌함과 정반대에 있는 소설을 왜 필사하고 싶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렇게 하면 내 안의 뭔가가 달라질 것 같은 흐릿한 예감만을 믿었을 뿐이다.


그 후로 나는 선임들이 낮잠을 잘 때를 기다려 <칼의 노래>를 필사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본디 위로란 없음을 나는 알았다',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따위의 문장들을 노트에 새기면서 나는 무용한 희망들을 하나하나 내려놓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라고, 때로는 묵묵히 통과해야 하는 시간도 있는 법이라고, <칼의 노래> 속 이순신은 말하고 있었다. 필사가 끝 나갈 즈음 난 조금 덜 희망하되, 조금 더 행동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생의 한 시기가 '그 시절'이라 명명된다는 건,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로부터 멀리 걸어왔음을 의미한다.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리 떠나온, <칼의 노래>를 필사할 때의 나를 떠올려 본다. 살아갈 날만큼이나 무수한 희망들이 종종 버거웠지만 그만큼 세상이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던 그때 그 시절. 소중히 품어온 희망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어른이 되어가던 그때 시절.




'종려가지 흔들며 반기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예루살렘에 발 들여놓기 전 예수에게 제자 하나가 물었다

"가르치신 온갖 비유와 우화를 한마디로 하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하라!"'

- 황동규 시인, <두 문답>


'아무리 멋진 소재를 안다고 해도, 남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험을 경험했다고 해도, 아무도 모르는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해도, 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생각하지 말자. 구상하지 말라. 플롯을 짜지 말자. 일단 한 문장이라도 쓰자.'

- <소설가의 일>, 239p


난 달리기를 싫어한다. 전에 내가 했던 표현을 빌리자면 '달린다는 행위에 동반되는 정신적, 육체적 반응 하나하나를 전부' 싫어했다. 솜뭉치를 쑤셔 넣는 듯 뻐근한 옆구리도, 쩍쩍 갈라지는 목구멍도, 2초에 한 번씩 비속어가 반짝이는 머릿속까지 전부. 그랬던 내가 매일같이 헬스장에 출근해 트레드밀 위를 질주하게 되리라고는 꿈속의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허나 어느새 달리기는 엄연한 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비결은 결국 '일단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엔 나도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30분에 걸쳐 가까스로 3km 정도를 뛰고 나면 근력 운동은커녕 땀에 절은 옷을 벗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뿐인가. 어지럼증 때문에 씻지도 못한 채 반 기절하다시피 침대 위에서 잠든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달리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건, '그냥 한다'라는 생각을 제외한 모든 잡음들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습관을 들일 땐 누구나 일정 정도의 저항 기간을 겪는다. 여기서 저항 기간이란 신경, 근육 회로에 새로운 행동 패턴을 새기는 과정에서 겪는 일련의 거부감 혹은 피로감을 말한다. 이 저항 기간을 견디고 새로운 행동 패턴을 지속하면 해당 행위에 드는 에너지가 눈에 띄게 감소하는 순간이 온다.


바꿔 말해, 어떤 행위든 충분히 시도해보기 전까지는 그 가치를 판별할 수 없다. 모든 행동은 습관이 되기 전까지는 일정 정도의 거부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 행동 혹은 취미가 나와 맞는지 알아보는 방법은 '일단 해보는 것'것, 그리고 '충분히 지속하는 것' 뿐이다.


'아는 사람은 쓰지 못하고, 쓰는 사람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느끼려고 할 뿐. 더 많이 느끼고 싶다면, 늘 허기지게, 늘 바보처럼 굴어야 한다.'

- <소설가의 일>, 270p


'Stay hungry, Stay foolish'

- 스티브 잡스, 2005612일 스탠퍼드대 연설 중

<출처=Boredpanda>


우리의 지식이 갖는 역설 중 하나는 지식의 양이 행동력과 반비례한다는 점이다. 사전 지식이 많은 사람일수록 실행력은 감소한다. 너무 많은 생각과 우려들이 그를 가로막는 까닭이다. 지식의 축적을 선택한 이들은 결국 히말라야 여행기를 몇 권 읽고는 자신이 히말라야에 대해 통달했다고 착각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현재 우리는 SNS 등을 통해 직접 몸으로 부딪히지 않아도 여러 간접적인 경험들을 누릴 수 있는 시대를 살고있다. 정교하게 제작된 동영상과 이미지들은 실제 경험못지 않은 생생한 체감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러나 개념화된 간접 경험은 엄밀히 말해 '경험'이라고 부를 수 없다. 자기 몸을 통해 쟁취한 경험들, 부지런히 다리를 부려 직접 보고 만져 본 것들만이 온전한 내 것이다. 저자를 비롯한 사회 명사들이 입을 모아 '몸으로 부딪혀 얻은 경험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것도 같은 맥락 이리라. 생각을 멈추고, 지금 당장 자신만의 소설쓰기를 시작하라. 그것만이 좀 더 좋은 삶을 살아내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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