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Mr.히치>:사랑의 기본원칙

연애지침서를 붙들고 사는 당신에게

by 시언


며칠 전 SNS에서 글 하나를 읽게 됐다. 저자는 '그녀의 마음을 겟(get)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깔끔한 옷차림과 세련된 애티튜드, 자신감 있는 말투와 첫 만남에 꺼내면 좋을 이야깃거리들이 열거되었다. 금기사항도 있었다. 과하게 뿌린 향수나 자기 자랑 위주의 대화방식이야말로 그녀들의 마음을 식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었다. 나열한 조건들을 모두 갖춘 사람을 저자 본인은 만나본 적이 있는 걸까 생각면서 나는 글을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내게 해당되는 항목이 있는지 무심결에 체크해 가면서.


현재 대형서점들은 연애 지침서들을 상단 책장에 배치하고 있으며 SNS에서는 하루에도 몇 편씩 연애 조언 칼럼을 읽을 수 있다. 호감이 있는 이성 앞에서 우물쭈물하거나 데이트 신청을 번번이 거절당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연애 고자'라는 말까지 생겼다. 이른바 정상적인 연애를 해온 사람들이야 이 같은 글을 킬링타임용 심심풀이로 웃어 넘길 것이다. 허나 자칭 연애고수들의 칼럼을 읽는 '연애 고자'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간절하니까.


"(여자를 유혹할 때) 기본 원칙 하나, 어떤 상황이든, 상대가 누구든, 여자를 사로잡을 기회는 충분합니다. 적당한 방법만 안다면요"


전설의 데이트 코치 '알렉스 히치(윌 스미스 분)'은 늘 자신만만하다. 방법만 제대로 안다면 세상 어떤 여자도 유혹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무슨 수를 쓰든 강한 첫인상을 남길 것, 한가해 보이지 않도록 첫 만남 전 시간 약속을 바꿀 것, 여자의 친구에게 인정받을 것, 어떤 경우에도 어버버 거리지 않을 것 등등... 자신감이 바닥을 기는 연애 고자들도 히치의 손만 거치면 매끈한 멋쟁이로 변신해 그녀와의 데이트를 쟁취해 낸다.


고객만족도 100%를 자랑하는 그는 여자들의 속성을 잘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데이트 성사 여부를 가른다고 믿는다. '여자들'은 늘 감상적이고, 분위기에 약하고, 로맨틱한 것에 끌리기 마련이다. 자신이 모르는 여자들의 성격은 없다고 확신하는 그의 앞에 당돌한 그녀, '사라(에바 멘데스 분)'가 나타난다.


연애 지침서들의 문장 대부분은 '여자들(혹은 남자들)'이란 보통명사를 주어로 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작업'의 대상이 되는 상대를 특정하지 않으면 문장 자체가 성립될 수 없으니까. '여자들'이라는 보통명사와, '감상적이다', '분위기에 약하다'는 등의 선입견을 통해야만 불특정 다수에 대한 연애 지침은 성립될 수 있다. 좀 더 섬세한 조언자는 여성들의 성격을 몇 가지 유형으로 세분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자들'이'얼음공주형'이 아닌 ''라는 것이다.

"언젠가 난 아...알고 있었어요. 내가 여..여기 오리란 걸. 근데 막상 와보니... 정말 힘...힘드네요"
"원하는 게 뭐에요 히치?"
"당신이요.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모르겠어요. 정말 이상해요. 내 안 어딘가 깊은 곳에서, 그러니까 내가... 깊은 곳에서... 아 진짜 왜 이러지"


사라 앞에서 히치는 점점 바보가 되어간다. 그동안 그 잘난 데이트 기술로 날 속인거냐는 그녀의 비난에 어버버 거리며 변명하게 되고, 자신을 피하는 그녀의 집 앞으로 찾아가 애원하고, 급기야는 자신을 두고 떠나는 그녀의 차 지붕으로 뛰어들기까지 한다. 사랑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히치의 모습은 평소 자신이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내저었던 '연애 고자'의 전형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바보처럼 굴었던 기억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괜한 허세를 부리며 과음을 한다던지, 전화를 걸 껀덕지를 만들기 위해 1시간을 고민한다던지, 그토록 고대했던 그녀(혹은 그)와의 식사 자리에서 앞뒤 안 맞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던지하는 기억들. 어째서였을까. 연애 고수들은 그녀의 말을 경청하면서 리액션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왜 자꾸만 심장은 오그라들고 지금의 느낌, 감정 하나 제대로 표현이 안될까. 이유야 간단하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연애 지침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사랑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바보가 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래요. 그들은 날아올라요. 날 수 있길 바라면서. 떨어지는 내내 생각하겠죠.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 난 떨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날 날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당신 한 사람뿐이에요."


글로든, 동영상으로든 연애의 기본을 공부하려는 태도는 중요하다. 깔끔한 스타일과 나의 말을 경청하려는 태도를 싫어하는 사람 없기 때문이다. 확실히 연애 조언들은 '그녀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데 주효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


결국은 내가 가진 패를 낱낱이 내보여야 하는 순간이 온다. 어리숙하고 허둥대고 덤벙대는, 나의 본모습을 꺼내 보이는 과정은 연애 지침서 속의 매끈한 작업 과정과는 거리가 멀다. 나의 민낯을 드러낸 채 상대의 대답만을 기다려야 하는 연애의 시작 과정은 느리고 지난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한 가지 사실은, 이렇게 해서라도 가까워지고 싶은 누군가를 만났다는 사실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기어이 사라의 사랑을 얻어낸 히치는 말한다.


"(사랑을 얻는) 기본원칙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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