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왕녀를 위한 파반느>:세상모든 그녀들에게 바칩니다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한 사람들

by 시언


장-레옹 제롬, 「배심원 앞의 프리네」, 1861


AD 4세기, 고대 그리스의 고급 창부였던 '프리네'는 배심원들로 가득한 법정에 선다. '신비극'이라는 연극 도중 대중 앞에서 알몸을 드러내 신성을 모독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신성모독은 사형에 처해질만한 중범죄였다.


변론가이자 프리네 옛 애인 히페리데스는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에 호소하기로 결심하고 변론 도중 그녀의 나신을 노출시킨다. 배심원들은 그녀의 나신이 뿜어내는 신적인 아름다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윽고 배심원들은 '이토록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소유자가 죄를 저질렀을 리 없다'며 프리네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출중한 미(美)는 신적인 것, 즉 훌륭한 인격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예쁘면 다 용서된다'는 요새의 농담에도 나름의 기원이 있는 셈이다.

수년만에 펼쳐 든 미술사 책에서 이 그림을 다시 보았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이것이었다.


'아름다운 여성이 추앙받아 마땅하다면, 추한 여자는?'


질문의 황당함에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이 무슨 고대 그리스도 아니고... 나도 참 별 생각을 다 한다고 중얼거리면서 나는 책을 덮었다.



"웃지 마, 웃으면 더 이상해. 면전에서 그런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면 누구라도 웃을 수 없을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한 여자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눈에 띄게 추한 얼굴로 살아온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던지는 경멸과 조소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새삼스럽지 않은 것과 익숙해지는 것은 다르다. 쉽게 익숙해질 수 없는 성질의 것들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나를 향한 경멸에 익숙해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설령 있다 해도, 그는 속으로 울고 있을 뿐이다.


내다 꽂히는 혐오의 시선들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을 놓아 버린다. 희망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을 거라고 그녀는 믿어야 했다.


'저는 오래전에... 마음속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도려낸 여자입니다. 이젠 어쩔 수가 없구나... 마음의 단두대에 올라 스스로를 절단한 것입니다...(중략).. 그것이 제가 택한 진통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런 여자를...도대체 누가 사랑해 줄 수 있겠어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73P


인간은 누구나 타인을 꿈꾼다. 나조차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안의 그림자들까지도 온전히 이해하고 끌어안아줄 누군가를 희망하는 것이 인간이다. 설령 그 희망에 아무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아도 끝내 놓을 수 없는 게 인간이다. 그 얄팍한 희망마저도 포기해 버린 인간을 나는 상상해 본 적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그녀의 짐을 말없이 대신 들어주는 '나'는 존재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다. 학대당해온 강아지가 사람을 피하듯 그녀는 '나'를 밀쳐내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향하는 시선을 멈출 수 없다.


'아버지는 끝끝내,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한 인간이었다'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한 '나'의 아버지는 억척스럽고 투박한 아내를 버리고 집을 떠났다. 생계를 위해 지방으로 내려간 어머니와도 격리된 '나'는 백화점 주차 안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특별하다 싶을 정도로 못생긴' 그녀를 만난다.


찾는 친구 하나 없이 백화점과 호프집만을 전전하는 '나'는 이상하게 그녀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한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이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허나 중요한 건 지독하게 추한 여자와, 그런 여자를 사랑하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가 놀랍도록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놀랍도록, 이라는 단어를 타이핑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 사랑한다. 이 진부한 이야기의 대체 어느 부분이 나는 놀라웠던 걸까.


'주변의 나무처럼 차가운 그녀의 몸을 나는 힘껏 껴안았다. 그녀를...아니... 그 속의 그녀와, 그 속의 그녀... 또 그 속의 나이테처럼 굳어 있는 모든 그녀들을 나는 안아주고 싶었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60P



나도 참 시시한 인간이구나. 소설을 덮고 난 후 내가 한 첫 번째 생각이었다. 나도 결국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한 인간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예감은 씁쓸했다. '나'처럼 한 인간으로서의 그녀만을 바라봐 줄 자신도 없으면서, 나는 자신을 '내적인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인간'이라 포장해 온 걸까. 이런저런 상념들은 소설을 덮은 후에도 한동안 내 주위를 맴돌았다.

이 소설은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는, 뻔하디 뻔한 사랑 노래가 되는데 실패한 작품이다. 그녀가 아름답지 않은 여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여자를 사랑한 남자가 있었기 때문에, '나'와 '그녀'의 사랑은 끝내 평범해질 수 없었다. 이 소설에게 '흔해빠진 소재'라는 비판을 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좋았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는 프리네에게 무죄를 선고한 그리스 법정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걸어왔을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속의 '그녀'와, 우리 사회의 수많은 '그녀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무엇이라 대답할까.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P.S : 전설에 따르면 히페리데스가 노출시킨 건 프리네의 전신이 아닌 가슴이었다. 글 초입의 그림은 작가인 제롬이 새로이 각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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