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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Oct 24. 2016

영화 <동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흑백의 시대를 살다


'너는 스물아홉에 영원이 되고

나는 어느새 일흔 고개에 올라섰구나

너는 나보다 여섯 달 먼저 낫지만

나한테는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중략)

예수보다 더 젊은 영원으로

동주야 난 결코 널 형으로 부르지 않을 것이니'

                                                                                                                      - 문익환 목사동주야」 중  


 나는 오랫동안 윤동주의 시를 싫어했다그의 시는 청춘의 시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이육사김춘수유치환김수영... 전국 각지에 위치한 시인들의 문학관을 순례하듯 돌면서도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은 끝내 찾지 않았다자유와 혁명을 노래해야 할 때 서정을 노래해선 안 되는 법이라고어린 시절의 나는 믿은 듯 보인다.


 나는 독립의 염원을'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이육사를 동경했다수감번호였던 '264'를 자신의 호 삼아 어두운 시대 속으로 육박해 들어가는 그의 시야말로 청춘에게 온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그에 비해 대부분의 시가 끝없는 부끄러움과 자학으로 귀결되는 윤동주의 시를 이해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성숙과 아픔이 필요했다.

*이육사의 시, '광야


 윤동주의 시가 가슴에 와 닿기 시작한 건 군대를 제대하고 1년 정도가 지난 즈음이었다사회에 나가기만 하면 온 세상을 씹어 삼키겠다던 말년 병장의 포부는 어느새 흐릿한 옛 추억이 된 지 오래였다전역복을 입고 나타난 내게 '너 군대 갔었냐?'라고 묻는 학교 선배처럼세상은 내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알아서 돌아가고 있었다나의 존재가 세상의 궤도에 조금의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자각은 쓸쓸했다존재할리 없다 믿었던 내 청춘의 한계들이 하나 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할 즈음나는 윤동주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속 ''을 '빼앗긴 조국'이라 가르치는 한국식 문학 교육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조국'이라 읽히길 바랐다면 굳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시어인 ''을 사용하진 않았을 것이다설사 한용운의 의도가 그랬다고 한들, ''을 '사랑하는 내 님'으로 읽는 독자에게 왈가왈부할 순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타인에게 나의 느낌을 강제하지 않는 한예술의 해석은 언제나 읽는 이의 고유 권한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윤동주를 비단 '일제 강점기'라는 문맥 안에서 읽으려 하지 않는다나는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라는 시구에서는 온전한 나 자신을 찾으며 방황하는 한 청년을 보고,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이란 시구에서는 자아 탐색을 훌륭히 완주한 자의 여유를 본다어쩌면 윤동주는 정말 그런 의미를 노래하는 시인이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그러나 세상은그를 그저 한 명의 시인으로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저 세상을 바꿀 용기가 없어서 문학 속으로 숨는 것 밖에 더 되니??"

 이준익 감독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흑백 화면을 고집한다어째서였을까흑백 사진 몇 장으로만 남아있는 그 시절 민중들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서라고 보기엔 색채감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연기 등 잃는 것이 너무도 많다.


 흑백 화면은 '(어두움)'과 '(밝음)'의 명암 차이만으로 장면을 구성한다. 푸른색누르스름한 색붉은색 등 미세하게 다른 생활 속 다양한 색채들이 <동주>에서는 흑과 백 두 색의 이분법 안으로 편입된다. 사물의 색이 원래 어떤 것이든지 관계없이 흑과 백 중 하나가 되어야만 하는 사태에서 나는일제의 조선 침탈에 협조하거나 이를 거부한 채 혁명을 부르짖어야만 했던 조선 청년들의 딜레마를 보았다흑과 백의 극명한 투쟁 가운데서정과 순수 예술이 설 자리는 좁기만 하다.


 조선 총독부는 1939대대적인 창씨개명 정책을 실시한다창씨개명을 거부한 자는 불온 분자로 분류되어 탄압받았고, 본인은 물론 그 자제의 학교 입학까지 금지되었다. 1942윤동주는 '히라누마 도쥬'로 이름을 개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윤동주의 참회록에는 그가 느낀 비통함과 자괴감이 핏방울처럼 맺혀있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

                                                                                                                                     -윤동주참회록」 


 부끄러움을 안고 산다는 건 힘든 일이다.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사람들은 '인지 부조화 상황(자신의 신념과 처한 현실이 불일치하는 상황)'에서 대부분 자신의 신념을 바꾸는 쪽을 선택한다자신의 신념을 바꾸는 것이 현실을 변혁하는 것보단 훨씬 손쉽기 때문이다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는 자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감에 매 순간 시달려야 한다.


  춘원 이광수를 비롯한 당시 조선 주요 인사들은 폭정과 억압의 현실에 굴복하고 자유와 혁명과 같은 이상들을 쉬이 버렸다그러나 윤동주는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는 자신의 비루함을 끝까지 직시하며 뚜벅뚜벅 걸었다그래서 윤동주에게 '부끄러움'이란 시어는 '잊지 않겠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이육사와 윤동주를 비교하지 않는다모두가 이육사처럼 독립투사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비판받아 마땅한 건 크고 작은 민중들의 꿈을 무참히 짓밟은그럼에도 지금까지 사죄의 기색이 없는 일제의 추악한 야욕일 것이다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시선은 항일 투사가 되라는 시대의 부름과 자신의 예술적 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젊은 시인을 향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너무 부끄럽고..."

 이런 시대에 시인이 되길 바란 자신이 한스럽다는 윤동주의 처절한 회한을 보면서 나는 시큰거리는 눈가를 만지작거렸다칠흑처럼 어두웠던 시대가 있었고그 시대 안에서 온 몸을 갈며 괴로워한 젊은 시인이 있었다고 영화는 진술하고 있었다영화가 끝나고고작 스물아홉의 나이에 영원이 되어 버린 한 시인의 일대기를 곱씹으며 나는 생각했다우린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잊은 채 살아온 건지도 모르겠다고.


P.S : 제가 처음에 인용한 동주야를 쓴 문익환 목사는 독립운동가 송몽규와 함께 윤동주 시인의 절친한 고향 친구였습니다또한 <동주>에서 정지용 시인 역을 맡은 문성근 배우의 부친이기도 합니다영화 초반부에 짧게나마 언급되는 분이시니 영화를 볼 때 참고하고 보시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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