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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Nov 07. 2016

영화 <위대한 개츠비>; 그래봤자 사랑, 그럼에도 사랑

그래도 나를 사랑할 건가요?



 수컷 공작새는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커다란 꼬리를 활짝 펴 암컷을 유혹한다. 이토록 커다란 꼬리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건강함을 과시하는 것이다. 동물원을 찾은 관광객들은 수컷 공작새의 꼬리 깃털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그러나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는 진화론적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비합리적인 기관 중 하나다.


 먹이사슬 중하층부에 속하는 공작새가 야생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 요소는 '은신 용이성''도주 용이성'이다. 일단 포식자들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고, 눈에 띄었다면 재빨리 도망칠 수 있어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수컷 공작새의 크고 화려한 꼬리는 은신과 도주 두 가지 모두를 어렵게 한다. 목숨을 건 유혹이랄까.


 인간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연애는 어른들의 장래희망'이라는 한 미팅 업체의 모토처럼, 사람들은 이성에게 호소하기 위해 지난한 노력들을 마다하지 않는다. 공들여 화장을 하고, 고급 브랜드의 시계나 넥타이를 구입하고, 바지런히 소개팅이나 미팅 자리를 쫓아다닌다. 기업들은  '남자 친구가 환장하는 ~'이나 '가을 여친룩' 같은 문구들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한다.


 타인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있긴 하지만, 나 역시 보통 남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 운동을 하고, 여동생의 옷 스타일 조언에 귀 기울이며, '여자들이 선호하는~'이라는 문구의 광고에는 눈길이 좀 더 가는 편이다. 기업 입장에선 손쉬운(?) 고객인 셈이다.


"누가 그러는데 그 사람, 살인혐의를 받고 있다는군요"

전율이 우리 모두를 스쳐 지나갔다. 세 명의 멈블도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열심히 들었다.

"그랬을 것 같지는 않은데, 독일 스파이였다는 말이 더 그럴듯해"

                                                                                                                     -소설 『위대한 개츠비』, 53P


 개츠비의 성에서는 매 주말마다 성대한 파티가 열린다. 의회 의원, 주지사, 조직 폭력배, 도박꾼, 고등학교 중퇴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 만화경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인파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 개츠비를 직접 만나본 이는 아무도 없다.


  매주 성대한 파티를 베푸는 얼굴 없는 갑부 J. 개츠비에 대한 소문은 점차 무성해진다. 파티에 온 사람 중 유일하게 정식으로 파티에 초청받은 '닉 캐러웨이' 역시 개츠비에 대한 현란한 소문들에 현혹되어 간다. 바로 그때, 파티의 주인공 개츠비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호감과 매력이 흘러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닉 앞에 나타난 개츠비는 호화 만찬, 수상 제트기 탑승 등 사치스러운 호의를 베푼다. 마치 자신이 곧 하게 될 부탁이 너의 한쪽 안구가 필요하다는 정도는 되는 것처럼.


 그러나 개츠비가 닉에게 주저하며 털어놓은 부탁은 단 하나, 닉의 사촌 데이지와 자신을 동시에 티(tea) 파티에 초대해 달라는 것이다. 훗날 닉은 개츠비와 데이지가 수년 전 결혼을 맹세한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신흥 대부호의 소박한 희망은 고작 '사랑'이다. 


 이미 자신의 친구이자 대부호인 톰 뷰캐넌과 결혼한 데이지를 개츠비와 한 곳에 초대한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림에도, 닉은 흔쾌히 개츠비의 부탁을 수락한다.


 

 개츠비는 이 날의 재회를 위해 몇 년간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세계 대전에 참전해 전쟁 영웅의 명예를 쟁취했고,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절 밀주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위험천만한 도전들을 그가 묵묵히 통과해온 이유는 오직 단 하나, 놓쳐버린 자신의 첫사랑 데이지와의 재회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개츠비가 그토록 갈망했던 데이지는 사랑받을 법한 인간상과는 거리가 멀다. 허영심의 화신인 데이지는 '자기 얼굴의 예쁜 생김새를 직접 느껴보겠다는 듯' 얼굴을 감싸기를 즐기는 여자이며, 모든 순간이 극적이고 화려해야만 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꽃과는 거리가 먼 닉에게 '너를 보면 완벽한 장미가 생각나'라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가난뱅이였던 자신을 버리고 톰의 진주 목걸이를 택한 그녀에 대한 갈망을 개츠비는 멈출 수가 없다.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본능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꼬리를 펼치고야 마는 수컷 공작새처럼, 그는 매주 성대한 파티를 열며 데이지가 그곳에 오길 기다렸다.


'will you still love me, when i'm no longer young and beautiful?

[내가 더 이상 젊고 아름답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 줄 건가요?]

will you still love me, when i' got nothing but my aching soul?'

[내게 남은 건 상처 입은 영혼뿐 일 때도 나를 사랑해 줄 건가요?]

                                                                                                - Lana del lay, young and beautiful 위대한 개츠비 ost


 개그맨 정형돈의 방송 하차 선언 때 가면 증후군이라는 심리 용어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가면 증후군은 자신의 성취 요인을 자신의 노력이 아닌 운과 같은 외부요인 덕분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현상을 말한다. 가면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타인들이 사랑하고 인정하는 것은 자기 본모습이 아닌 자신의 가면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도... 나를 사랑할 건가요?"

 잠깐일지언정 자신에게 마음을 연 데이지에 대한 개츠비의 희망을 바즈 루어만 감독은 OST로 절묘하게 대변했다. 자신의 가면인 돈과 명예 대신 인간 개츠비를 사랑해 줄 수 있냐는 개츠비의 물음은 다급한 동시에 비극적이다. 지금의 젊음과 돈도 영원할 수는 없음을, 가면이 벗겨지는 날 데이지는 자신을 떠나리라는 사실을 그는 예감한 듯 보인다. 그 끝이 파멸뿐이라는 사실을 예감하면서도 가질 수 없는 사랑을 향해 곧장 달려갔다는 점에서 개츠비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에 합당한 인간이 된다. 그래서인지 <위대한 개츠비>'위대한'이라는 표현에는 어딘가 쓸쓸한 정한이 묻어난다.




 모든 좋은 예술이 그러하듯, <위대한 개츠비> 역시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해석 말고도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상류층 출신인 데이지에 대한 사랑은 기존 상류층 사회(올드 머니)에 대한 신흥 부호(뉴머니)의 갈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개츠비의 파멸을 기성 상류층 사회에게 거부당한 뉴머니의 절망과 몰락으로 읽는 것 역시 합당하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뒤로 물러가고 있는 황홀한 미래를 믿었다'

                                                                                                 - 소설 『위대한 개츠비』, 213P


 그러나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 볼 때마다 나를 사로잡는 건, 데이지라는 여자를 항한 한 남자의 지독한 사랑이다. 불가능한 자신의 사랑이 사는 집에서 빛나는 희미한 빛을 향해 개츠비는 손을 뻗었다. 그렇게 하면 불빛이 손에 잡히기라도 할 것처럼. 실현 가능한 사랑, 위험하지 않은 사랑만 희망해 온 나는 문득 부끄러워졌다. 언제부턴가 내게 사랑은 이해타산의 영역에 속하는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가질 수 없는 대상을 향한 집요하고도 다급한 사랑, 그 끝엔 몰락만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예감하면서도 그 욕망에 온 몸을 내맡긴 한 남자의 일대기는 내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너는 모든 걸 걸고 사랑을 희망해 본 적이 있느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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